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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세상에 열린 공동체: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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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7-29 ㅣ No.624

[세상에 열린 공동체]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


연민의 예언자, 여성 수도자들

 

 

“한국 사회의 여러 환경 파괴 현장과 인권이 유린되는 현장에서 하느님의 창조 질서 보전과 인간애를 지키는 사도직을 용감히 수행해 왔다.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 기지 건설로 말미암은 자연 파괴와 인권 유린의 현장에서, 밀양과 청도의 송전탑 건설 현장에서, 탈핵 운동의 현장에서 그 누구보다도 헌신적으로 함께하며 창조 세계와 그 안에 기대어 사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하는 삶을 보여 주었다.”

 

2014년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원회에서 ‘제9회 가톨릭 환경상’ 대상 수상자로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이하 장상연) 생명평화분과(위원회)를 선정하면서 밝힌 사유다.

 

당시 분과장 김영미 엘리사벳 수녀(천주섭리수녀회)의 수상 소감은 생명평화분과의 소명과 활동을 잘 말해 준다.

 

“수도원 안에서는 현장에서 울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현장에 나오면 울고 있는 사람의 체감 온도가 느껴집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가장 고통받는 이들에게 찾아가 희망과 위로가 되어 주는 것, 가난한 이들의 곁을 지키고 힘겨운 사람들과 함께 아파하는 것이 우리 수도자들의 몫입니다. 저희들의 활동이 옳은 일이었음을 인정받게 되어 기쁘고 더욱 열심히 고통받는 이들과 연대하겠습니다.”

 

 

정의 평화 창조 질서 보전

 

장상연 생명평화분과는 전 지구적 차원의 사회 · 자연 생태 환경이 파괴되고, 생명 공동체 지구가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시대적 요구’에 응답하고, ‘사회 복음화의 사명’(「복음의 기쁨」, 20항)실천으로 생명 평화 문화를 확산함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 연대하고자 설립되었다.

 

1968년 사회사업분과, 1998년 노동 빈민 사목 수녀들을 주축으로 ‘사회 · 사목분과’로 활동하다가 2012년 정의(인권), 평화, 환경 등의 사안에 대한 사회적, 국제적인 요청에 따라 ‘생명평화분과’로 통폐합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각 수도회 수도자들의 정의 평화 창조 질서 보전(JPIC, Justice, Peace and the Integrity of Creation) 연대를 촉진하는 촉진자요 사회, 가톨릭 단체들과 연대하면서 사회 교리를 실천하는 실천자로서의 소명을 충실하게 수행하여 왔다.

 

또한 산하에 후쿠시마 핵 사고를 계기로 탈핵 · 대체 에너지에 관한 세미나, 탈핵 홍보 등 탈핵 관련 활동을 하는 탈핵자연에너지팀과, 인신매매 문제에 대응하고자 만든 국제적 네트워크인 탈리타쿰코리아가 설립되어 활동하고 있다.

 

 

가장 고통받는 이들의 곁으로

 

“수도회의  카리스마에  충실하면서 JPIC를 통합할 수 있을까? 시대의 징표를 읽으며 어떻게 증거자로 살 것인가? 어떻게 세상을 일깨울 수 있을 것인가? 생명평화분과는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분과장 임미정 살루스 수녀(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의 말처럼 수녀들은 4대강과 제주 강정, 밀양과 성주, 세월호 미사가 열리는 광화문과 일본군 위안부 수요 시위가 열리는 일본 대사관 앞, 그리고 쌍용차와 콜트콜텍, 파인텍 노조의 농성장까지 환경이 파괴되고 인권이 유린되는 한국 사회의 현장에 있었다.

 

한미 군 당국의 기습적인 사드 장비 반입에 반대하며 주한 미국 대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기도 했고, 백남기 농민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거리 미사에도 참여했다.

 

굴뚝 농성 노동자를 위해 밥을 나누고, 수십 년간 살아온 터전을 잃게 된 주민들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마치 죽음을 맞이한 예수 그리스도를 안고 눈물을 흘렸던 성모님의 모습처럼, 수녀들은 이웃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아픔을 함께하는 참된 신앙인들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힘겨운 일도 많이 겪었다. 공권력에 마주 선 대가로 의자째 들려 나오거나 들것에 실려 나오기도 했으며, 경찰의 물리적인 폭력 행사로 그리스도의 정배임을 상징하는 베일이 벗겨지기도 했다. 거리에 오가며 막말을 들은 건 부지기수였다. 같은 공동체 안에서도 현장 참여에 대한 의견이 달라 이해받지 못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소임 이외의 시간을 봉헌하여 다시 현장으로 향하는 것은 아픔과 고통을 당하는 걸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녀오면 수도자로서의 삶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현장에 있으면서 기도가 몸에 익고 복음도 생생하게 와닿기 때문이다. 누가 고통받는 그리스도이고 누가 이웃인지 명확하게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또 하느님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고통받는 이들의 입에서 주님의 기도가 나오고 하느님께서 진정 계신다는 외침을 들으며 하느님의 섭리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느님께 예언자 직분을 받았습니다. 불의에 침묵하는 것은 곧 불의에 동조하는 것이고 사회적 악의 시스템에 침묵하는 것은 악에 동조하는 것입니다. 잘못을 잘못이라 말하고, 기도와 함께 행동해야 합니다.

 

때로는 수도자들이 길거리 미사에 참여하고 기도하는 것을 데모하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수도자들이 현장에 가는 것은 복음 말씀(마태 25,35-40)과 교황 회칙 「새로운 사태」 이후 100여 년 간의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따른 것이고, 불의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고통받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된다면 언제라도 같이 해야 합니다.”

 

 

시대를 비추는 연민의 예언자들 

 

지난 6월 5일 제1390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 시위에도 어김없이 여성 수도자들이 참여했다. 수요 시위를 이끄는 정의기억연대의 윤미향 대표는 “수녀님들의 참여가 어마어마한 힘이 된다.”고 했다.

 

“수요 시위를 지속해 올 수 있는 것은 모두 수녀님들 덕분입니다. 평화의 율동은 늘 감동이었고, 수녀님들은 세상 사람들의 일에 눈감고 있지 않다는 것을 몸짓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늘 우리에게 격려와 희망을 주는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건물이나 교회 울타리안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다. 이 시대 변방은 사회적 아픔이 있는 곳이다. 하느님께서는 어렵고 힘든 이들 곁에 계신다. 여성 수도자들의 사회 참여는 복음적으로 예수님께서 아파하셨던 곳에 같이하려는 발걸음이다. 어둠의 현실에서 예수님과 같은 방식으로 현존하려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의 모든 것이 되고, 하느님께 순명하며 가난해지고, 불의에 맞서 고난을 감수하는 것, 누군가 아파할 때 같이 아파해 주고 그들 곁에 함께 있어 주는 것 말이다.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약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1코린 12,22). 몸의 중심, 세상의 중심은 가장 ‘약한 부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성구입니다.  창조  때의  온전함(integrity)을 회복하려면 가장 약한 부분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사회 교리의 핵심은 ‘가난한 이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 ‘우선성’에 방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수도자가 할 수 있는 고유의 방식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지는 여전히 고민거리라고 임미정 수녀는 고백한다.

 

“지금은 시대 안에서, 동시에 교계 구조의 밖에서 예언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수도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답을 찾아가는 여정인 것 같아요. 작은 물꼬를 틔우고 실금이라도 내려면 계속 깨어 고민하고 주체적으로 나서야 할 것 같아요.”

 

2014년 수도자들은 시국 미사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의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외침을 악의에 찬 왜곡과 편향된 이념의 시각으로 우리의 신앙을 박해한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정의를 위해서 두려움 없이 기쁜 마음으로 순교하겠습니다. 우리 수도자들은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것을 한없는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수도자는 청빈, 정결, 순명의 복음적 권고를 통해 오직 하느님께만 소유된 사람들, 하느님만을 섬기며 우리 가운데 와 계신 그분의 나라가 성취되는 참된 행복의 증거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다.

 

예언적 희망의 씨앗을 심고, 물을 주며 보살피는 소명을 실천하는 현장의 여성 수도자들에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데 주저하지 않을 용기와 희망, 믿음을 더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경향잡지, 2019년 7월호, 글 · 사진 김민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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