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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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토마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6: 책 속에서 찾은 하느님의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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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7-28 ㅣ No.1302

[세상과 소통한 침묵의 관상가 토마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 (6) 책 속에서 찾은 하느님의 진리


블레이크, 머튼의 영혼에 믿음과 사랑을 심다

 

 

우연히 집어 든 책을 놓지 못하고 그 속에 파고들어 그 책으로 인해 인생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필자가 고등학생 시절, 우연히 「침묵 속에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당시 교구 사제의 길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본당 수녀님의 안내로 성 베네딕도 수도원을 방문하게 되었고, 성소자들을 위한 방에 이 책이 놓여 있었다. 그리 두꺼운 책도 아니고, 삽화와 사진도 많이 있었기 때문에 단번에 그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내용 가운데, 창세기 18장에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의인 10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대목을 인용하면서 저자는 수도승은 바로 세상의 구원을 위한 10명의 의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 대목이 사제의 삶을 살고자 하는 18살 고등학생에게는 온몸에 전율이 일어날 만큼 아주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교구 사제가 아니라 수도 사제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필자는 이 책의 저자가 25년 후 자신의 인생을 또 한 번 더 바꾸어 놓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책의 저자는 바로 토마스 머튼이었다.

 

 

책을 통해 가톨릭 신학의 이성적인 진면모 확인

 

머튼이 읽었던 책 역시 그의 영적인 변화와 성장에 큰 영향을 주었다. 독서를 좋아한 머튼이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많은 책들 속에서 당신 말씀을 건네주신 듯하다. 우선 그는 에티엔 질송(tienne Gilson)의 「중세철학의 정신(The Spirit of Medieval Philosophy)」을 읽음으로써 하느님에 대해 전반적인 새로운 개념을 갖게 되었다. 머튼이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된 과정은 매우 흥미로워 그 일화를 소개한다.

 

1937년 2월 어느 날, 그는 주머니에 있는 5~10달러 정도 되는 동전이 귀찮아 아무렇게나 써 버릴 심산으로 스크리브너 서점에 들르게 된다. 그리고 진열장에서 「중세철학의 정신」이라는 책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는 책의 내용보다는 저자인 에티엔 질송에 대해 알고 싶어 이 책을 구입했다. 그런데 롱아일랜드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책을 펴든 순간 그 첫 장에 ‘오류 없음… 교회 인가’라는 작은 라틴어 활자를 보고는 그 책을 산 것을 극도로 후회했다. 그는 ‘속았다는 분노가 명치에 칼을 꽂는 것 같았다. 사기를 당한 것만 같았다!’라고 생각하며 이 책을 차창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그는 당시 가톨릭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라틴어를 사용해 교회의 인가를 기록한 그 첫 페이지를 보고, 과거 가톨릭의 종교 재판을 떠올리며 혐오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내가 이 책을 버리기는커녕 실제로 읽었다는 것은 확실히 은총이었다”고 고백한다. 사실 이 책을 통해, 그는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이해가 미신적이거나 비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지적이고 이성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의 지적인 마음이 자극을 받았고, 그는 가톨릭 신학의 이성적인 진면모를 알게 되었다.

 

 

한 분이시며 살아 계신 하느님 간접적으로 만나

 

이 책이 머튼에게 지적인 면에서 하느님에 대해 새로운 개념을 발견하도록 도왔으나, 그의 내면은 여전히 하느님께 개인적인 응답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중 금욕주의와 신비주의에 관한 동양의 원천들에 관한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사상을 접하게 되었고 그의 마음은 서서히 움직여 영적인 눈이 열리게 되었다. 헉슬리의 책 「목적과 수단(Ends and Means)」은 신비주의에 대한 머튼의 열정에 불을 지폈고, 동방의 신비주의와 금욕주의에 관해 기록된 도서관의 책들을 샅샅이 뒤져 읽게 했다. 그 당시 아시아 텍스트들에 대한 독서는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독서를 통해 축적된 그의 생각들은 신비적 체험을 향한 갈망을 증진시켰고, 아시아 전통이 이러한 갈망을 채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했다.

 

머튼은 그의 영혼에 믿음과 사랑을 확고하게 해준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에 관한 석사 논문을 작성하였다. 머튼은 “윌리엄 블레이크를 향한 저의 사랑은 하느님의 은총과 같았다고 생각합니다…. 블레이크를 통해 저는 어느 날 유일한 참된 교회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이신 살아 계신 하느님을 간접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라고 언급했다. 블레이크의 신비적 은총들과 심미적 감각의 종합은 머튼에게 합리성을 초월하고 신비를 직관하게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블레이크처럼 머튼 역시 시인이고 예언자이자 신비가였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7월 28일, 박재찬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부산 분도 명상의 집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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