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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 공소 이야기: 대전교구 중장공소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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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7-21 ㅣ No.1171

[공소 이야기] 아홉 번째 - 대전교구 중장공소를 가다


“공동체 선배 열정 본받으며 주님 사랑의 불 놓겠습니다”

 

 

- 1987년 당시 중장공소.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하대리 지역에는 구한말 박해가 끝날 무렵 복음이 전래됐다. 하대 3리의 점촌 마을 신자 10여 명이 김성구씨 집에 모여 신앙생활을 지속했고, 이후 1946년 고(故) 고기득(요한)씨가 하대리 2구로 이주하면서 활발한 전교가 이뤄졌다. 신실한 신앙으로 하느님을 알리려 애썼던 고씨의 열정은 신자 증가로 이어졌다. 신자 수가 늘어나자 1949년 당시 공주중동본당 주임 지베드로 신부가 공동체를 방문해서 공소를 설정했다. 이름은 ‘하대리공소’ 였다. 현재 대전교구 공주중동본당(주임 박요순 신부) 중장공소(회장 소영섭)의 전신이다. 고씨는 초대 공소회장으로 임명됐고 이후 30여 년 동안 회장을 맡아 공소의 기틀을 놓았다. 

 

현재 공소 마당 한편에는 고 회장을 기리는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주님 사랑 불 지르시며 골고타 가시밭 길을 웃음으로 사뿐히 가신 님이여!” 비석 뒷면에 새겨진 글귀처럼 이런 초대 회장의 노력과 선교열은 지금껏 공소를 지켜내며 지역 안에, 공동체 안에 주님 사랑의 불을 놓고자 하는 공소 공동체의 또 다른 열의로 이어지고 있다.

 

7월 14일 주일미사 봉헌 후 대전교구 중장공소 신자들이 공주중동본당 박요순 주임신부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지역 복음화의 못자리

 

하대리공소에서 중장공소로 이름이 바뀐 것은 1956년이다. 공소가 계룡저수지로 인해 수몰 위기에 처하자 본당에서 중장리 지역 민가(民家) 한 채를 구입해 고기득 회장이 살도록 하면서다. 이후 민가 형태가 아닌 제대로 된 공소 건립을 원했던 신자들은 제2대 소재걸(바오로·87)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특별헌금과 모금운동을 펼쳐 1979년 지금의 건물을 마련했다. 1987년에는 청소년들을 위해 165㎡ 규모로 피정의 집을 건립했다. 이때는 공소 건물 전체가 피정 장소로 제공되기도 했다. 

 

소 회장은 제2대와 제6대 두 차례에 걸쳐 20여 년 동안 회장으로 일하며 공소 활성화에 힘썼다. 신자 배가 운동을 전개해 한때 134명까지 신자 수가 늘어났다. 냉담교우들을 찾아 나서고 예비신자들은 직접 교리를 가르쳐 가며 교회로 인도했다. 공소계를 조직해 친목에도 힘썼다.

 

7월 14일 주일미사 봉헌 후 다과회를 열고 담소를 나누고 있는 중장공소 신자들.

 

 

이런 손때 묻은 역사 안에서 공동체가 지닌 공소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은 남다르다.

 

 

우리의 공소 

 

매월 둘째 주일은 본당 주임신부가 방문해서 주일미사를 봉헌하는 날이다. 이 날이 되면 중장공소는 집안 잔치 분위기가 된다. 아무래도 공소예절을 할 때 보다 참례 신자 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둘째 주일이던 14일. 정오가 되기 전부터 소영섭(요셉·64) 회장을 비롯한 신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후 2시30분 봉헌되는 미사 준비를 위해서다. 이들은 청소를 시작으로 전례 준비와 미사 후 다과 차림까지, 성가대 등 주임 신부와 함께 방문할 본당 식구들 맞을 채비에 분주했다. 공소예절이 진행되는 다른 주일에도 신자들은 조를 나눠 예절 전에 공소 청소를 한다. 이날 미사 참례자는 29명이었다. 이들은 미사를 마치고 본당에서 온 신자들과 떡과 수박을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챙겼다. 

 

중장공소의 교적상 신자 수는 94명이다. 그중 50대부터 90대가 62명이다. 공소예절이나 주일미사 평균 참례자 수는 30명 정도를 헤아린다. 농촌이라는 지역적 특수성과 고령화로 감소 추세를 피할 수 없다. 다행인 것은 외지에서 유입된 신자가 하나 둘 늘어나며, 결원이 생기는 만큼 신자가 채워지며 현상 유지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10년간 전입한 신자 비율은 25% 정도다. 그런 만큼 기존 공소 신자들과 새로 공소 식구가 된 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있다.

 

- 공소 마당에 세워진 故 고기득 초대 공소회장 공적비를 설명하고 있는 소재걸 전 공소회장.

 

 

가족 같은 신자들 

 

“편안하다”. “가족 같다”. 중장공소를 찾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내놓는 의견이다. 

 

5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온 최영자(발렌티나·82)씨는 지난해 주님 성탄 대축일 때 세례를 받았다. 오랜 개신교 신자였던 그는 집 근처 개신교회를 다니다가 공소 신자들의 화목한 모습에 이끌려 한 공동체가 됐다. 

 

청주에서 이주해 온 조성순(아나스타시아·55)씨도 “공소 신자들의 환대와 따뜻한 마음씨 덕분에 눌러앉게 됐다”고 했다. “처음 왔을 때 공소 건물도 허름하고 공소예절로 주일을 지내야 하는 점이 마음에 걸려 멀어도 본당에 나가려 했다”는 그는 “아마도 신자들의 애정과 관심이 아니었다면 공소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조씨는 총무를 맡아 공소 운영을 돕고 있다. 

 

외지인들을 공소로 이끄는 것은 ‘낯선’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도심과 달리 새로 지역에 나타난 이들이 쉽게 눈에 띄는 상황에서, 공소 사람들은 말을 건네며 ‘필요한 것이 없는지’, ‘도움 될 일이 없을지’ 살피고 이웃이 되어준다. 

매월 반모임을 이끌고 있는 구역장 서옥자(클라라·63)씨도 10여 년 전 서울에서 이사와 ‘공소 일꾼’이 된 사례다. 그는 “100원의 노력을 했는데, 200원의 칭찬이 되돌아오는 곳이었다”며 공소와의 첫인상을 밝혔다. 

 

서씨는 “중장공소는 ‘서로 마음을 읽어주는 공소’”라며 “신자들이 모일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의무인 만큼, 공소를 통해 신바람 나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도움이 되려 한다”고 말했다.

 

 

신앙을 사는 공동체

 

공주에서 남쪽으로 14㎞ 지점에 위치한 공소는 계룡산 국립공원과 이웃하고 있다. 

 

또 전방 100m에는 낚시터로 유명한 계룡저수지가 자리하고 있고, 동쪽 2㎞ 정도에 갑사가 있다. 이런 주변 자연환경은 휴양이나 전원생활을 하려는 이들에게 높은 관심의 대상이다. 외부에서 전입할 이들이 점차 늘어날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주일헌금으로 충당하는 재정 형편에 낡은 화장실과 좁은 진입로를 넓히는 문제 등은 숙제이지만 공동체는 그래도 신자가 줄어들지 않고 시설도 조금씩 하나하나 고쳐나가는 과정이 감사할 뿐이다. 

 

소영섭 회장은 “공동체의 화목이 우선”이라며 “우리의 행실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공소를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또 초대 회장님 등 선배들의 열정을 본받아 아름다운 공소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박요순 신부는 “본당과 떨어져 있는 가운데서도 공소를 통해 신앙을 지켜가는 자세에 늘 감사한 마음”이라며 “고령화로 신자가 줄면서 공소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자리를 지키는 이들을 위해서 본당은 늘 관심을 갖고 또 다른 배려를 해드리는 것이 사랑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톨릭신문, 2019년 7월 21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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