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5일 (목)
(자) 대림 제1주간 목요일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

성미술ㅣ교회건축

성당 이야기5: 바실리카 성당에 교회의 전례를 담다 - 생리퀴에 수도원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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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7-08 ㅣ No.654

[성당 이야기] (5) 바실리카 성당에 교회의 전례를 담다


생리퀴에 수도원 성당

 

 

지난 회에 고대에서 중세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과정을 간략히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중세의 문화가 움트기 시작한 프랑크 왕국의 이야기도 조금 했습니다. 오랫동안 침묵했던 성당 건축도 카롤링거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기지개를 피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이 중앙집중형의 아헨 왕궁 성당이었는데, 사실 그 시대 대부분의 성당들은 오히려 기다란 장방형의 모습을 하였습니다. 중앙집중형이 비잔틴 양식인 것에 비해서, 장방형은 로마제국 시대의 초기 그리스도교가 취했던 바실리카 양식입니다. 중세에 들어서 바실리카 양식의 성당이 주류를 이룬 것은 우선 로마 가톨릭교회의 전례와 관련이 있습니다.

 

가톨릭 전례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행렬(processio)입니다. 본당에서 성탄대축일이나 부활대축일 미사 때 사제가 복사단과 함께 긴 행렬로 입당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이미 나타난 전례 행렬은 카롤링거 왕조에서 계승되어 더욱 발전되었습니다. 당시의 궁정 신학자 알쿠인(Alcuin, 735?~804)은 전례 행렬을 교회 전례의 중심 요소로 정착시킨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교회는 성금요일을 비롯한 주님의 수난을 기념하는 날에 ‘십자가의 길’ 14처를 행렬하였고, 이러한 행렬은 점차 일상의 전례에까지 도입되었습니다. 전례 행렬이 본격적으로 실행된 곳으로 센툴라의 생리퀴에 수도원 성당(Abbey Church of Saint Riquier, Centula, France, 790~799년)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림에 나타난 것처럼 사제는 성인들의 유해나 성상을 모신 곳을 중심으로 전례 때 긴 행렬을 했습니다. 성당이 기다란 바실리카 양식을 필요로 했던 또 한 가지 요소는 전례 성가였습니다. 바실리카 성당의 긴 네이브(신자들이 머무는 공간)는 성가의 잔향이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머물게 해주었는데, 이는 신자들이 성가를 통해서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이끌어주었습니다.

 

프레-로마네스크 성당들이 바실리카 양식을 표준형으로 취한 이유가 이상과 같은 전례적 측면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로마’라는 동경의 대상이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바실리카 양식의 성당을 짓고 싶어하는 것은 로마제국 시대의 성당들이 바실리카 양식을 취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실리카는 로마제국의 공공건물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건축 양식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제국의 영광을 계승 재현하고 싶은 카롤링거 왕조에게 바실리카 양식의 성당은 선호도 일순위였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필요에 부응하여 ‘바실리카 양식’을 표준형으로 삼은 프레-로마네스크의 성당들은 이후로 지속적인 분화와 확장을 거듭하며 로마네스크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회에서는 이 성당들이 어떠한 분화의 단계를 거쳤는지 나누어보겠습니다.

 

[2019년 7월 7일 연중 제14주일 의정부주보 7면, 강한수 가롤로 신부(민락동 성당 주임, 건축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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