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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제주 4·3의 진실, 책임 그리고 화해, 유엔본부 인권 심포지엄 기조 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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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7-05 ㅣ No.1663

‘제주 4·3의 진실, 책임 그리고 화해’ 유엔본부 인권 심포지엄 기조 발제


민간인 3만 명 학살… 잊힌 역사에 관심과 공감 호소

 

 

- ‘제주 4·3의 진실, 책임 그리고 화해’를 주제로 개최된 UN본부 인권 심포지엄에서 강우일 주교(왼쪽에서 세 번째)가 기조 발제를 하고 있다. 제주 4·3평화재단 제공.

 

 

1948년 12월 10일 파리에서 열린 유엔총회는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했다. 그것은 모든 민족과 국가가 공통되게 추구해야 할 기준 같은 것이었다. 이 선언에는 보편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인간의 기본적 권리가 사상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한반도 남단 약 100㎞ 지점에 위치한 제주도에서 경찰과 군대가 민간인을 대량 학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1948년 4월 3일 좌익 무장단체가 제주도 해안가에 위치한 경찰지서 12곳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당시 점령군으로 남한을 통치하던 미군 지도부는 제주지역 군경에 봉기 진압을 명령했다.

 

 

미군 지도부, 제주지역 군경에 봉기 진압 명령

 

한국 정부가 사건에 대한 조사나 보고, 연구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90% 이상의 한국인은 이 비극에 대해 50년 가까이 모르고 지냈다. 2000년이 되어서야 정부는 제주 4ㆍ3 사건 진상규명위원회를 공식 발족했다. 희생자들과 생존자들은 공포에 질린 나머지 오랫동안 자신들이 겪은 사건을 언급할 수 없었다. 제주 4ㆍ3 희생자와 관련된 이들 중 상당수는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유엔에서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목적은 고통과 희생의 역사를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있다. 비인간적 재앙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호소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다. 세 번째로 우리는 학살당한 희생자들의 한 맺힌 절규를 전하고, 미군정과 한국 정부 당국이 저지른 부당행위를 국제사회에 명명백백히 밝힘으로써 궁극적으로 정의와 책임, 화해를 실현하고자 한다. 

 

제주 4ㆍ3은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망한 직후 한반도에서 철수하고 한국이 혼란을 겪던 전환기에 발생한 비극이었다. 한국 정부의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1948~1954년 제주에서는 경찰과 군대가 민간인 3만 명 이상을 학살했다. 체포 혹은 단기 구속 직후 모든 연령대의 시민이 죽임을 당했다. 수사나 재판 절차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다. 성폭행 역시 광범위하게 벌어졌다. 제주지방검찰청의 수감자 명단에 따르면 유죄 판결을 받은 수형인이 2530명에 달했다. 한국전쟁(1950~1953) 발발 직후 여러 형무소에서 수많은 수형인이 처형되었다. 후일 석방된 일부 생존자들은 평생 경찰의 감시하에 살아야 했다. 제주 4ㆍ3은 미국과 한국의 정부 당국이 저지른 인권과 인간 생명에 대한 범죄였다. 

 

일본이 항복했을 때만 해도, 한국인들은 자신들만의 나라를 꿈꾸며 열정에 불타올랐다. 많은 사람이 새로운 국가를 여는 준비 과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한국에 상륙한 미군은 자발적 운동을 용납하지 않았다. 미군정은 자체적인 임시 군정을 조직해 한국 국민에게 부과했다.

 

 

제주 4·3은 인권과 인간 생명에 대한 범죄

 

한국은 이미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에 임시 정부를 설립했고, 이후 임시 정부는 일제가 가한 온갖 억압을 견뎌냈다. 그러나 미군은 일본 경찰과 군대에 협조했던 한국인을 상당수 채용하기로 했고, 해방과 독립을 염원하던 이들은 엄청난 좌절감을 느꼈다. 이 결정은 한국에 깊은 분열의 씨앗을 심었다. 

 

2차 대전 후 미국 정부는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상황을 우려했다. 중국과 베트남에서 공산 진영이 내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군정은 좌익 세력의 영향력 확장에 대해 매우 불안해했으며 한국의 국내 치안 상황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미군정은 자유시장 제도를 도입했다. 질서 있는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경제정책은 수립하지 않았다. 이전의 경제 체제를 폐기함으로써 토지주들과 소수의 부유층이 시장을 마음대로 매점매석할 기회를 주었을 뿐이다. 이는 시장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제주도민들은 경제 위기를 겪어야 했다. 미군 관계자들은 일제 강점기에 식민지 공무원이었던 지도부의 경찰력에 모든 행정 권한을 위임했기에 도민들은 미 군정을 신뢰할 수 없었다.

 

1947년 3월 1일, 3만 명에 이르는 제주도민이 학교 운동장에 운집해 자신들이 처한 위기 상황에 불만을 표출했다. 많은 주민이 모였다는 점은 미군을 해방군이 아니라 또 다른 침입자로 여겼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1919년 3월 1일은 일제에 맞선 저항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미군은 섬 주민 전체를 소련과 연결된 빨갱이로 간주했다. 미군 지도부의 오해와 편견, 오판으로 도민 전체가 등을 돌렸고, 결국 민간인 학살로 이어졌다. 주민 대부분은 농민이었음에도 미군은 현지 주민들을 좌익으로만 취급했다. 미군 지도부는 제주의 모든 좌익 운동을 철저히 진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처형과 학살을 저지른 이들은 한국 경찰과 한국군이었지만, 정책을 수립하고 작전을 수행하도록 명령한 이들은 미군 지도부였다.

 

 

보편적 인권을 위한 국제사회의 연대 호소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 4·3 발생 후 55년 만에 제주를 찾아 제주도민들에게 공식으로 사과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4월 3일 제70주년 추념식에 참석하여 진심 어린 유감을 표명했다.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들, 희생자 유가족들, 제주도민 모두 이 역사의 최고 책임과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던 미국 당국이 책임에 합당한 입장을 표명해 주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 유엔의 다른 회원국들도 보편적 인권을 위한 연대의 표시로 이 잊힌 역사에 관심과 공감을 표명해 주길 바란다.

 

2019년 6월 20일 유엔본부 강우일 주교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6월 30일,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

 

 

제주 4ㆍ3은 미군정의 반인권 범죄… 미국 책임에 합당한 입장 표명 촉구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 유엔 ‘제주 4ㆍ3’ 심포지엄서 강조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가 20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 회의장에서 미국이 제주 4ㆍ3의 책임에 대한 합당한 입장을 표명해달라고 촉구했다. <사진>

 

강 주교는 ‘제주 4ㆍ3의 진실, 책임 그리고 화해’를 주제로 유엔본부에서 개최된 인권 심포지엄 기조 강연을 통해 “제주 4ㆍ3은 미국과 한국의 정부 당국이 저지른 인권과 인간 생명에 대한 대대적인 위반이자 범죄였다”면서 “4ㆍ3 생존자와 희생자 유가족, 모든 제주도민은 미국 당국이 어떤 식으로든 그 책임에 합당한 입장을 표명해주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제주 4ㆍ3의 고통과 희생의 역사를 국제사회에 공개적으로 알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 주교는 “주민 대부분은 정치 이념과 무관한 농민이었음에도 미군은 현지 주민들을 좌익으로만 취급했다”면서 “처형과 학살을 저지른 이들은 한국 경찰과 한국군이었지만, 정책을 수립하고 작전을 수행하도록 명령한 이들은 미군 지도부였다”고 지적했다. 

 

강 주교는 유엔에서 이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목적은 “(제주 4ㆍ3으로) 학살당한 희생자들의 한 맺힌 절규를 전하고, 미군정과 한국 정부 당국이 저지른 부당 행위를 국제사회에 밝힘으로써 궁극적으로 정의와 책임, 화해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심포지엄은 주유엔 대한민국 대표부(대사 조태열)가 주최하고, 제주특별자치도와 강창일 국회의원실, 제주 4ㆍ3평화재단이 공동 주관했다.

 

제주 4ㆍ3을 상징하는 빨간 동백꽃 배지를 가슴에 달고, 호소력 짙은 차분한 말투로 제주 4ㆍ3의 역사적 배경과 제주 4·3 이전의 사회 경제적 환경을 설명한 강 주교는 “유엔의 다른 회원국들도 보편적 인권을 위한 연대의 표시로 이 잊힌 역사에 대해 관심과 공감을 표명해달라”고 촉구했다. 

 

강 주교의 기조 발표 후 세계적 석학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한국 현대사 연구로 저명한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학교 석좌교수는 ‘제주 4·3과 미국의 책임’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미국인 대다수가 2차대전 종전 후의 한국 상황과 무관한 방관자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일제에 부역했던 한국인들을 지원하며 3년간 한국 군부와 군경을 이끌었다”면서 “미국의 실질적 책임은 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밖에 백태웅 하와이대학교 로스쿨 교수가 ‘제주 4·3과 국제인권법’을 발표했으며, 찰스 핸리 전 AP통신 편집부국장은 4·3 당시 미국 양대 언론인 AP통신과 뉴욕타임스의 보도 태도를 분석해 발표했다. 또 제주 4.3 북촌학살사건의 유족인 고완순 할머니가 일가족 6명의 피해 상황을 증언했다. 

 

이 심포지엄에는 유엔 외교관과 38개 국내외 협력단체 관계자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6월 30일,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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