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0일 (금)
(녹)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예수님과 함께 있던 여자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세상과 소통한 침묵의 관상가 토머스 머튼의 영성1: 제 삶은 지속적인 회개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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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6-22 ㅣ No.1295

[세상과 소통한 침묵의 관상가 토머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 (1) “제 삶은 지속적인 회개의 삶입니다”


토마스 머튼의 전 생애는 ‘회개를 향한 여정’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느님 안에 머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동시에 그 머무름으로 얻은 하느님의 은총을 세상 모든 피조물과 나눌 의무가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행동하는 관상가'이다.

 

트라피스트 수도승 토마스 머튼은 20세기를 대표하는 행동하는 관상가였다.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표방하는 '하느님 백성'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본보기이다. 실천하는 영성가가 되기 위해서는 하느님과의 일치가 중요함을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삶으로 보여준 토마스 머튼을 소개한다.

 

토마스 머튼을 연구해 캐나다 토론토대학 리지스 칼리지에서 영성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박재찬 신부가 '세상과 소통한 침묵의 관상가 토마스 머튼'을 연재한다.

 

- 토마스 머튼.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 사진) 신부는 미국 켄터키주에 있는 겟세마니 수도원의 트라피스트 수도승이었으며, 미국의 유명한 가톨릭 작가이자 신비가였다. 1941년 12월 10일 수도원에 입회하여, 1968년 12월 10일, 같은 날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하느님 품으로 되돌아가기까지 27년 동안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살면서, 관상과 수도생활부터 사회 운동과 종교 간 대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들로 저술활동을 했다. 60권이 넘는 책과 수백 편의 소 논문과 시(詩)를 썼다.

 

 

프란치스코 교황, 미국 대표 인물로 꼽아

 

새벽 3시에 일어나 하루에 일곱 번 성당에서 기도하고, 수도원 작업장에서 일하는 동안 이렇게 많은 저술을 남겼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을 정도다. 1960년대 머튼 신부의 저술 활동을 도와 비서 역할을 했던 패트릭 하트 수사는 머튼 신부가 마치 글쓰기에 중독된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국 의회에서 연설할 때에 미국을 대표하는 네 명의 인물 중 하나로 토마스 머튼을 꼽았으며 그를 관상적 대화자로 칭송할 정도였다. 같은 해, 필자가 머튼 탄생 100주년을 맞아 벨라르민 대학에서 개최된 학회에 참석했을 때, 전 세계에서 모여온 수 백여 명이 관상, 기도, 전례, 사회정의, 인종, 여성주의, 예술, 종교 간 대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머튼에 대해 발표와 나눔을 하는 것을 보고, 세계인들의 그에 대한 관심에 대해 새삼 놀랐던 기억이 난다. 

 

왜 오늘날 많은 사람, 특히 북미의 그리스도인들이 이토록 토마스 머튼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의 영성이 무엇이길래 그것을 배우려 하는 것일까?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술과 담배를 즐기고, 무책임하고 방탕한 삶을 살았고, 심지어 사생아의 아버지였다는 말도 있었던 머튼. 수도생활 중반기에는 아빠스와 수없이 마찰을 일으키며 갈등하였고, 50대에 접어들면서는 젊은 간호사와 사랑에 빠진 그를 왜 사람들은 존경하고 칭송하는 것일까?

 

 

우리와 큰 차이 없는 평범한 사람

 

그것은 무엇보다 많은 이들이 머튼의 삶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앞으로 보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또한 보게 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베네딕도회 수도승인 필자 역시 머튼의 삶의 이야기 안에서 자신의 미숙했던 수도생활의 여정과 앞으로의 새로운 영적 여정에 대한 비전을 보았으니 말이다. 토마스 머튼, 그는 우리와 큰 차이가 없는 평범한 사람, 즉 실수와 잘못을 하고 다시 뉘우치고, 고뇌와 갈등을 하는 중에 다시 일어나지만 또 쓰러져 버리고 마는, 그런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머튼은 자서전적 저서인 「칠층산」에서 자신의 삶의 이야기는 무신론으로부터 가톨릭으로의 회심을 향한 여정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이 여정은 하느님을 향한 인간 영의 지속적인 응답이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지 간에 성령의 인도에 따르는 것으로서, 자신의 자기-변형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제가 세례받은 날까지 저의 삶의 이야기는 단순한 저의 ‘회심’에 대한 이야기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저의 회심은 여전히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회심은 전(全) 삶의 과정에서 진행되는 것입니다.”

 

 

지속된 자기 - 변형의 삶에 주목해야

 

회개를 향한 이 여정에서 머튼은 더 깨어나고, 더 충만해짐으로써 하느님과 인간과 세상에 관한 그의 미숙한 견해가 더욱 성장해갔다.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듯한 그가 변화와 성장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하느님을 찾고자 했고, 하느님과 하나 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은총으로 주어진 하느님 체험들은 그를 새로운 인간으로 변화시켜 갔다. 우리가 토마스 머튼의 생애를 묵상할 때 바로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계곡과 정상, 다음 계곡과 더 높은 정상으로 이어지는 그의 지속된 자기-변형의 삶의 과정에 대해 살펴보아야 하며, 어떻게 그가 그러한 변화와 성숙에 도달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6월 23일, 박재찬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부산 분도 명상의 집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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