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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당 이야기2: 카롤루스 대제가 그의 성당을 짓다, 아헨 왕궁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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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6-11 ㅣ No.645

[성당 이야기] (2) 카롤루스 대제가 그의 성당을 짓다, 아헨 왕궁 성당

 

 

아헨 왕궁 성당(Palatine Chapel, Aachen)으로 ‘성당 이야기’의 첫 장을 엽니다. 아마도 ‘그러면 로마네스크 시대부터 이야기를 하겠다는 말이군’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맞습니다. 2천 년 전 유다인들의 축제인 오순절에 성령께서 내려오시고, 베드로 사도는 예루살렘에서 멋지게 오순절 설교를 합니다(사도 2장). 그 설교로 삼천 명가량이 세례를 받고 교회가 그 사명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때 그들에게 우선 필요했던 것 중의 하나가 신자들이 모일 장소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에는 복음이 닿는 곳마다 성당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성당 이야기를 그 처음부터 하지 않고 800~900년이 지난 후인 로마네스크 시대부터 해볼까 합니다. 우리 눈에 익숙한 성당들부터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습니다. 물론 처음의 성당들에 대해서도 나중에 이야기할 것입니다.

 

아헨 왕궁 성당은 당시 유럽을 한 손에 거머쥔 카롤루스 대제(샤를마뉴, 768~814 재위)의 작품입니다. 성당은 792년경 카롤루스 대제가 아헨에 자신의 왕궁을 건축하면서 함께 짓기 시작한 것으로, 805년 교황 레오 3세에 의해 성모 마리아께 봉헌되었습니다. 카롤루스 대제가 유럽의 패권을 쥐게 된 것은 그의 할아버지 카롤루스 마르텔이 732년 투르-프아티에 전투에서 이슬람 군대에 대승을 거둔 사건에서 시작됩니다. 이후 카롤링거 가문은 프랑크 왕국에서 가장 유력한 귀족이 되었고, 결국 그의 아버지 피핀 3세가 751년에 메로빙거 왕조를 무너뜨리고 카롤링거 왕조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피핀이 전장에서 죽자 768년 카롤루스 대제가 그 뒤를 이어 프랑크 왕국을 통치하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성당이 봉헌되기 5년 전인 800년 성탄절에 카롤루스 대제는 로마에서 레오 3세 교황의 주례로 서로마 제국의 황제 대관식을 갖습니다. 따라서 아헨 왕궁 성당은 카롤루스 대제의 권위가 절정에 이른 시기에 건축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카롤루스 대제의 통치에서 중요한 요소는 그가 종교로서만이 아니라 국가 운영 시스템으로 가톨릭교회를 선택하였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그의 정복지에는 언제나 성당이 지어졌고 주교가 파견되었으며, 프랑크 왕국의 국민이 되는 것은 곧 가톨릭교회의 신자가 되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동시에 그는 국가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최고의 지위에 있고자 하였습니다. 아헨 왕궁 성당은 그런 그의 정치적 종교적 위상을 위풍당당하게 드러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독일의 아헨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카롤루스 대제 당시의 왕궁과 성당은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왕궁은 남아 있지 않고, 성당은 보존되어 있지만 예전 그대로가 아닌 현재 아헨 주교좌 성당의 중앙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음 회에는 아헨 왕궁 성당의 건축적인 특징을 함께 나누어보겠습니다.

 

[2019년 5월 26일 부활 제6주일(청소년 주일) 의정부주보 7면, 강한수 가롤로 신부(민락동 성당 주임, 건축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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