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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 공소 이야기: 원주교구 대안리공소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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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6-10 ㅣ No.1163

[공소 이야기] 다섯 번째 - 원주교구 대안리공소를 가다


신앙으로 일군 생명농업, 농촌과 도시를 잇다

 

 

- 5월 25일 대안리공소를 찾은 서울 응암동본당 어린이들을 환영하며 마을 주민들이 풍물을 연주하고 있다.

 

 

“공소에 처음 와서 신기해요! 자연환경도 너무 좋고, 옛날 신자들이 어떻게 미사를 하셨을까 생각했어요.”

 

5월 25일 강원 원주시 흥업면 승안동길 216.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고즈넉한 한옥건물. 조용하고 한적하기만 하던 이곳이 어린이들로 왁자지껄하다. 자기들끼리 재잘대며 떠드는 소리, 커다란 느티나무에 매달린 그네를 타며 깔깔대는 소리에 어린이들을 환영하는 마을 사람들의 흥겨운 풍물소리가 섞여 들어간다. 마을 전체가 들썩거린다. 어린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면서도 신기하고 재미있기만 하다. 원주교구 흥업본당 대안리공소는 서울에서는 보지 못했던 풍경, 소리,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가득한 공간이다.

 

해마다 봄이면 공소는 서울의 본당 어린이들을 초대해 풍년기원미사와 농촌체험을 진행한다. 올해는 서울 응암동본당 어린이들과 인솔자 90여 명이 방문했다. 대안리공소에서 봉헌되는 풍년기원미사에 어린이들의 성가소리가 울려 퍼졌다.

 

 

100년이 넘은 한옥 공소

 

1910년 11월 12일 당시 조선대목구장이던 뮈텔 주교는 자신의 일기에 이 공소를 방문한 일화를 기록하면서 “진짜 성당이기에 성당 축성 예절로 축성했다”고 말한다. 원주교구에서 100년이 넘은 공소 경당은 대안리공소가 유일하다. 이런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에는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서 등록문화재 140호로 지정됐다. 낡은 목조건물이기에 썩은 나무를 교체하고 보수하는 공사가 이뤄졌지만, 처음 지어진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과연 ‘진짜 성당’이라고 부를만한 건물이었다. 건물면적 76㎡에 이르는 공소에서는 40여 명이 함께 미사를 드릴 수 있다. 신자들은 공소 건물 축복식을 열기 4~9년 전에 완공했다고 한다. 시골의 공소라기엔 확실히 큰 규모다. 그만큼 이곳 공동체에 신자들이 많았다는 증거다.

 

공소가 설립된 것은 1892년, 그러나 당시 공소의 상황을 담은 기록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공소 축복식의 풍경을 그리는 뮈텔 주교의 일기 정도가 가장 정통한 기록이다. 그러나 공소 신자들의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보면 이미 1880년에도 대안리 지역에는 신자들이 모여살고 있었다.

 

첩첩 산으로 둘러싸인 원주는 박해시기 신앙선조들의 피신처였다. 부론면 손곡리에 자리하고 있는 서지 교우촌 등이 유명하다. 척박하고 깊은 산속에 숨어들었던 신자들이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으로 종교의 자유를 얻으면서, 이곳 대안리 지역으로 이주해 농사를 지으며 정착한 것이다. 

 

 

농사에 담은 신앙

 

공소 주변으로 옥수수, 감자 밭이며, 이제 막 모를 옮겨 심은 논들이 보였다. 신앙을 위해 생계였던 논밭마저 버리고 산으로 들어간 신자들이다. 깊은 산 속에서 척박한 환경을 견디다 신앙의 자유와 함께 찾은 농사는 후손들에게도 각별했다. 1976년 원주교구 가톨릭농민회가 공소에서 시작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공소의 선조들이 신앙을 위해 농사까지 버렸다면, 그 후손들은 되찾은 농사에 신앙을 담았다.

 

지금도 가톨릭농민회 본부가 공소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공소는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통해 창조질서에 해를 끼치지 않는 친환경 농업을 보급하고, 도시의 소비자들과 소통하면서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활동을 펼쳐왔다. 지난 2006년 6월에는 국내 최초로 GMO 프리존(유전자 조작 식품 자유지역)을 선포하고, 마을 앞에 이를 상징하는 장승을 세우기도 했다. 생명을 존중하는 농업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공소 신자들은 이를 실천했고, 널리 보급해 ‘운동’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GMO 프리존을 선포할 당시 공소회장을 역임했던 한종범(스테파노·65)씨는 “(공소의) 선조들도 ‘공소계추’라고 해서 가을에 쌀을 걷어서 빈민구휼에 사용하는 등 농사 안에서 신앙을 실천하셨다”면서 “지금의 공소가 하는 일도 선조들의 전통을 이어가는 일”이라고 말했다.

 

2017년 모내기 체험에 참가한 어린이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도농이 어우러지는 곳

 

공소에서 미사를 마친 응암동본당 어린이들은 떡 빚기, 창포물로 머리감기, 천연염색, 논 체험 등 다양한 체험을 진행했다. 공소가 농촌체험 자리를 마련한지도 벌써 15년이 넘었다. 해마다 봄에는 모내기와 풍년기원미사, 여름에는 김매기와 농민주일 행사, 가을에는 추수감사제를 열면서 서울의 신자들을 공소에 초대해왔다. 이 행사들은 서울에서 찾아오는 신자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특히 어린이들은 이곳에서 신앙선조들의 역사를 배우고, 창조질서의 보전을 몸으로 체험한다. 농사는 이제 공소와 본당, 농촌과 도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생명의 매개체가 됐다.

 

자녀와 함께 공소를 찾았다는 박진숙(요세피나·44)씨는 “서울은 어디나 성당뿐이지만, 이곳에 오면 아이들에게 공소를 설명해 줄 수 있다”면서 “모내기나 벼 베기를 하면서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기회가 될 때마다 오고 있다”고 말했다. 

 

공소에 3번째 방문한다는 이정원(엠마·13)양은 “쌀이 수확되기까지의 과정을 대안리공소에서 보고 체험했다”면서 “공소에 올 때마다 자연과 가까워지는 것 같아 좋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 공소는 서울 화곡본동본당과 자매결연하고 공소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본당과 직거래하고 있다. 가을에는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열리는 도농한마당에서 직접 판매활동을 하면서 친환경 먹거리를 전하고 있다.

 

공소 신자들은 이제 대부분이 60대 이상이다. 도농교류를 위한 여러 행사를 준비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공소는 도시 신자들과의 교류를 포기하지 않는다. 선조들에게 받은 신앙과 농사를 또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자하는 마음에서다.

 

공소회장 한종배(베드로·71)씨는 “젊은 세대가 공소를 떠나 이제 운영이 힘들기는 하지만, (도농교류는) 꾸준히 이어나갈 것”이라면서 “(도시와 농촌의)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니 공소에도 활기가 생겨 좋다”고 말했다.

 

[가톨릭신문, 2019년 6월 9일,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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