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0일 (토)
(녹)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예수님께서는 예언을 이루시려고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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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하느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 부르시는 주님과 응답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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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5-22 ㅣ No.1292

[경향 돋보기 - 하느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 부르시는 주님과 응답하는 인간

 

 

성경 이야기는 대부분 하느님의 부르심과 이에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방식으로 응답하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창세기부터 요한 묵시록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부르시는 하느님의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들려온다.

 

성경을 들여다보면, 하느님의 부르심은 당신의 구원 사업에 참여하도록 누군가에게 소명을 맡기시는 대화로 시작된다. 그런데 부르심을 받은 성경 속 인물들의 유형을 보면 놀랍게도 특출하거나 뛰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들보다는 우리 가운데의 한 사람처럼 평범한 이들일 경우가 훨씬 많다.

 

또한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시는 하느님의 방법과, 이에 응답하는 인간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다. 더우기 하느님의 부르심은 그분께서 한 번만 부르시고 끝나 버리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지금도 여전히 우리 모두가 각자의 고유한 삶의 현장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부르시는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낼 지도자나, 당시 시대를 비판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예언자로 부르셨다. 정든 곳을 떠나 하느님께서 보여 주시는 약속의 땅으로 떠나라고 한 아브라함을,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해 내려고 모세와 여호수아를 부르셨다. 또한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 눈에 거슬리는 짓을 하자, 주님은 이들을 미디안족에게 넘겨 곤궁에 빠트리시고, 그들이 다시 주님께 부르짖자 이스라엘을 다시 미디안의 손아귀에서 구원하라며 기드온을 부르셨다.

 

니네베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도록 쓴소리를 담당한 요나를, 성소에서 이스라엘의 예언자로 부른 사무엘을, 정치, 사회, 종교 등 모든 분야가 부패한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비참한 시기에 이들에게 멸망을 경고하라고 예레미야를 선택하여 부르셨다.

 

하느님께서 이들을 쓰시고자 부르시는 시기와 방법은 저마다 다양하다. 이집트 궁중에서 40여 년, 미디안 땅에서 40여 년을 산 나이 여든이 다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해 내라는 사명을 주시기도 하셨다.

 

 

부르심의 공통적 특성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복음 선포 사명에 참여하도록 협력자를 부르시는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공통된 특성이 나타난다.

 

먼저, 예수님의 시선이 누군가에게 머물고 그를 부르시면, 무명의 한 인간이 고유한 이름과 얼굴을 지닌 모습으로 역사의 무대에 우뚝 선다.

 

두 번째 특성은, 주님께서 누군가를 당신의 협력자로 부르실 때는 많은 경우, 그가 살아가는 일상 삶의 터전 안으로 들어가시어 부르신다.

 

세 번째 특성은, 이 부르심이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운명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르심에 대한 이야기들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성들을 통해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다. 구체적인 일상 삶의 상황 안으로 들어가시어 무명의 누군가를 바라보시고 부르시는 주님의 초대는 그늘에 가려 존재감 없이 살아가던 인물에게 인격적 권리와 사명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주체적인 인격체로 살아가게 한다.

 

그리고 이 부르심은 어떤 특정한 시대의 특별한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된다. 현재 삶의 자리에서 깨어있음으로써 각자를 고유하게 부르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열쇠가 인간의 자유 의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온다.

 

 

응답하는 인간

 

이러한 부르심에 응답하는 인물들의 모습도 제각각이다. 구약 성경의 이사야와 아모스와 아브라함에게서 그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자 여러 사람을 부르시는데, 그 과정에서 하느님은 말씀만 하실 뿐만 아니라 부름 받는 사람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무언가를 보여 주시거나 겪게 하신다.

 

그리고 그 사람을 불러내실 때 그가 상대해야 할 사람들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음을 처음부터 알려 주신다. 그와 더불어 두려워하지 마라며 함께하시며 도와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사무엘처럼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사무 3,10) 하고 바로 수긍하기도 하지만, 모세는 몇 번이나 핑계를 댄다. ‘사람들이 저를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제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저는 말솜씨가 없는 사람입니다, 입이 안 떨어져 말을 못합니다.’ 그는 이렇게 몇 번이나 부르심에 대해 못하겠다는 핑계를 댄다.

 

그때마다 하느님께서는 그가 할 대답과 표징을 주시고, 아론을 대변인으로 세워 결국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시려는 당신의 계획을 완수하신다.

 

복음서에 나오는 베드로는 제자들의 대변자인 동시에 충실함과 불충실함의 양면성을 지닌 인물로 드러난다.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단순하게 곧바로 응답하기도 하지만 주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일관되지 못한 행동으로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주님을 배반하는 비겁함에 빠지지만, 곧바로 잘못을 뉘우치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맑은 양심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부르심에 응답하는 여정 안에서 넘어짐과 일어섬을 반복하는 베드로의 인간적인 모습에서 더디게 걸어가는 우리의 자화상을 본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베드로는 실패의 체험을 통해 진정한 내적 변화를 이루어 온 존재로 주님을 따른 참제자가 되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약함을 당신의 은총으로 채워 주시며 당신이 선택한 이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또 다시 부르신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 보는 부르심

 

요한이 잡힌 뒤, 예수님은 갈릴래아로 가셔서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4,17) 하고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첫 네 제자를 부르신 이야기(마태 4,18-22)는 예수님의 이 핵심적인 선포 말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회개는 주님의 제자가 되는 필수적인 조건으로써 주님을 따르는 삶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짓는 출발점이다. 지금 회개하라는 예수님의 요청은 사실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이며 각자의 삶의 방식 안에서 당신을 충실히 따르라는 초대이다.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던 예수님께서는 네 어부를 보시고 그들을 부르신다. 예수님의 부르심과 함께 무명의 네 어부는 시몬, 안드레아, 요한, 야고보라는 고유한 이름과 얼굴을 지닌 주체로 모습을 드러내고 예수님의 부르심에 결정적인 응답을 드리는 능동적인 인물로 소개된다.

 

어부들이 부르심을 받은 장소가 그들의 삶의 터전인 갈릴래아 호수로 분명히 제시되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일상 안으로 들어가시어 매우 명료하고 단순한 말씀으로 그들을 부르신다. “나를 따라오너라”(마태 4,19).

 

‘나를 따르라.’는 말씀으로 그들이 따라야 할 대상이 예수님 자신이심을 명료하게 밝히신다. 이 말씀에 부르심의 내용과 목적이 담겨 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아기 예수님이 헤로데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을 가셔야만 했던 지난날의 역사(마태 2,13-15 참조)가 암시해 주듯이, 세상의 권력에서 거부된 한 사람을 따르는 것임을 시사한다.

 

부르심을 받은 이가 모든 것을 ‘버리고’(4,20.22) 예수님의 뒤를 따른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메시아를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십자가는 이유 없는 고통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겪어야 할 고통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주님의 운명에 참여함으로써 은총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이가 가야 할 길은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목숨을 내어 주신 주님의 운명을 따르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당신을 따라야 하는지를 직접 일러 주신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이러한 하느님의 부르심은 지난날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끊임없이 다양한 상황 안에서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경 인물들의 삶의 변화를 통해, ‘내가 진정한 나’로 존재하고자 하는 근본 조건은 하느님과의 관계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배운다.

 

주님의 부르심은 무엇보다도 당신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게 하는 것으로서 내 삶의 목적과 존재 이유를 환히 밝혀 준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나의 응답은 전 생애 동안 온 존재로 지속해서 드리는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 민남현 엠마 - 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성서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경의 노래」와 「성경 속 하느님 생각」 등을 저술하였다.

 

[경향잡지, 2019년 5월호, 민남현 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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