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3일 (월)
(백)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등불은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전례ㅣ교회음악

천상의 소리 지상의 음악가: 파스카 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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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4-22 ㅣ No.2633

[천상의 소리 지상의 음악가] 파스카 찬송

 

 

대부분의 복사단 아이들이 그러하겠지만 나 또한 어린 시절 복사를 서던 일은 꽤나 특별한 경험이었다.

 

첫영성체를 받고 복사를 시작했던 초등학교 3학년 때의 나는 전례에 담긴 의미를 속속들이 알기엔 너무 어렸다. 전례가 주는 장엄함과 숭고함을 체감할 뿐이었다.

 

 

그리스도 우리의 빛

 

파스카 성삼일 때 복사를 서는 일은 예행연습이 필요할 정도로 평소보다 몇 배 더 복잡했다. 하지만 이날의 예식은 주로 키 큰 몇몇 중학생 형들이 맡았기에 복사단에서 상당히 작은 축에 속했던 나로서는 이날 복사를 선다는 것을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새로 부임하신 주임 신부님께서 모든 것을 새롭게 바꾸셨다. 서른 명 남짓한 어린이 복사 전부를 파스카 성야 예식에 세우기로 하신 것이다. 한 번도 이 예식에 제대로 참여해 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하지만 파스카 성야 예식에서 복사로서 내 소임은 기대만큼 크지 않았다. 행렬할 때 앞장서는 것 말고는 여느 신자들과 다름없었다. 다만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에 이르시는 파스카 예식의 순간순간이 어린 내 눈앞에 드라마처럼 펼쳐졌다.

 

신자들이 문밖까지 서 있을 정도로 빼곡하게 들어찬 성당의 모든 불빛이 꺼지고 어둠 속에서 빛의 예식이 시작되었다.

 

“그리스도 우리의 빛.”

 

부제님이 파스카 초를 높이 들고 노래하자 어둠 속에서 모든 이가 노래로 응답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파스카 초에서 불을 댕기어 하나둘 촛불을 밝히기 시작한 신자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점차 빛으로 가득해져 가는 성당은 여느 때와는 달리 훨씬 더 아름다워 보였다.

 

 

파스카 찬송이 울려 퍼지다

 

모든 이가 빛을 밝힌 초를 들고 서 있는 가운데 독서대 앞에 선 부제님이 ‘파스카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용약하여라, 하늘 나라 천사들 무리.

환호하여라, 천상의 거룩한 영들아.”

 

찬송은 한참 동안 이어졌지만, 평소에 듣기 힘든 부제님의 노랫소리는 근사했다. 파스카 예식이 주는 장엄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당한 어린 나는 흥분한 상태로 부제님을 바라보았다. 지금도 그날의 파스카 찬송은 내 기억 속에 소중히 남아 있다.

 

부제가 없는 본당에서 파스카 찬송은 대부분 보좌 신부의 몫이다. 생각해 보면 신자들 앞에서 길고 긴 파스카 찬송을 반주 없이 혼자 노래하는 것은 부제나 사제에게나 큰 부담이다. 그것은 비전문가가 오페라 무대에 올라 많은 관객 앞에서 긴 아리아를 부를 때의 부담감과 맞먹지 않을까.

 

음악적 능력이 사람마다 다르고 예식을 집전하는 사제 또한 한 인간이기에, 파스카 찬송을 부를 때의 그 부담감은 듣는 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실제로 몇몇 신부님에게서 파스카 찬송을 할 때의 압박감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신자들에게도 파스카 찬송은 쉽지 않은데 말이다.

 

 

선법 음악과 정량 음악

 

예수님의 부활이 선포되는 이 파스카 찬송이 장엄하다 못해 구슬프게 느껴지는 이도 있을 테다. 보통 이런 생각은 파스카 찬송이 ‘선법 음악’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데에서 온다.

 

‘선법’(mode)은 음계를 음정 관계와 으뜸음의 위치, 음역 등에 따라 세분한 음의 순열 또는 그런 개념을 말한다. 중세와 르네상스 음악의 기초인 선법 음악이 주는 느낌은 서양의 공통적 관습 음악의 문법적 기초라 할 수 있는 ‘장조’(major)와 ‘단조’(minor)가 주는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보통 단조는 밝고 기쁜 느낌을 표현하기보다 슬픔의 정서를 환기하는 데 쓰인다. 하지만 선법 음악이 단조와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해서 모두 슬픈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일 수 있다. 파스카 찬송은 단조의 느낌을 주는 선법 음악이 영광과 기쁨을 표현할 수도 있는 도구라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평소에 부르는 성가는 음악의 문법적 내용이나 그것이 만들어진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서 파스카 찬송과 큰 차이가 있다. 그 간극은 모차르트의 음악과 오늘날의 아이돌 음악이 다른 것만큼이나 크다고 여겨진다.

 

파스카 찬송은 그레고리오 성가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선법으로 되어 있다는 점 말고도 여러 특징이 있다. 특히 길고 긴 파스카 찬송을 주의 깊게 들으면 무언가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사 한 구절을 도입하는 부분, 가사를 같은 음으로 낭송하는 부분, 구절을 마무리하는 부분이 계속 되풀이된다.

 

그레고리오 성가로 시편을 노래하는 방법에 익숙하다면 파스카 찬송도 시편을 노래하는 공식에 상당한 부분이 들어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파스카 찬송은 처음부터 끝까지 창작한 긴 노래라기보다는 시편을 노래하는 방식처럼 동일한 선율을 되풀이하여 부르는 ‘유절’ 노래에 가깝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특징

 

그레고리오 성가는 선법에 기반한다는 특징이 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는 ‘선법 이론’이 따로 존재할 만큼 선법은 본디 당대의 노래들을 분류하는 수단이었다. 선법의 수도 시대와 이론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선법에 따라 시편을 노래하는 선율 공식도 다르다. 르네상스에서 바로크 시대로 넘어가면서 선법에 임시표를 붙여 노래하는 관습이 일반화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점차 선법은 두 개로 좁혀져 결국엔 장조와 단조가 되었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또 다른 특징은 ‘정량 음악’(measured music), 곧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박자를 가진 음악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레고리오 성가에는 4분의 3박자, 4분의 4박자와 같은 박자표가 없다. 이것은 그레고리오 성가의 리듬이 마디(measure)로 쪼개질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가사가 가진 흐름대로 말하듯이 이어진다. 「로마 미사 경본」의 파스카 찬송 악보를 보면 낭송되는 모든 가사의 음표 길이가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파스카 찬송이 마치 기도하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노래하는 이가 자연스럽게 노래해야 함을 뜻한다. 오늘날의 래퍼가 모든 가사를 같은 길이로 랩을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그레고리오 성가는 가톨릭교회의 전통이자 보물과 같은 유산이다. 파스카 찬송은 그레고리오 성가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전해 준다. 곧 다가올 파스카 성야 때에도 예수님 부활의 영광과 기쁨을 노래하는 이 파스카 찬송이 빛과 함께 장엄하게 울려 퍼질 것이다.

 

* 정이은 안드레아 - 음악학자. 서울대학교에서 음악학을 가르치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홍콩대학교에서 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9년 4월호, 정이은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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