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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 공소의 재발견2: 신앙의 뿌리, 그리고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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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4-17 ㅣ No.1152

공소의 재발견 (2) 신앙의 뿌리, 그리고 열매


신앙과 삶 하나된 ‘생활 공동체’, 사도시대 초대교회 모습 드러내

 

 

“한국 초대교회의 모습은 공소교회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인의 정서와 심성에 맞는 나름대로의 신앙 갖추기 노력을 피로써 증거한 교우촌 공동체는 공소교회의 모태(母胎)가 된다.”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는 교구 사목국장 시절인 1993년 4월, 경향잡지에 기고한 ‘신앙과 생활 공동체의 모델–공소교회’라는 글에서 교우촌 공소 공동체가 한국교회의 토착화된, 이상적 신앙 공동체를 구현했다고 확신했다.

 

 

교우촌 공소, 이상적 신앙 공동체의 구현

 

“신앙으로 모인 교우촌 신앙 공동체는 함께 믿고 함께 살아가는 부락 공동체, 마을 공동체의 틀을 갖추기까지 한다. 한국 천주교회의 초대 신앙 공동체의 모습은 삶의 모든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함께 풀어 나가는 ‘생활 공동체’였다.”

 

권 주교는 이어 전국 곳곳에 산재한 수많은 공소들 중에서 여전히 이러한 ‘신앙-생활 공동체’의 맥을 이어나가는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26년 전인 1993년에 쓰인 글이지만 교우촌 공소의 아름다운 신앙 전통이 한국교회가 참으로 복음적인 공동체의 모습을 구현해 나가는 데 실마리가 될 것이라는 견해는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산하 순교영성연구소가 2016년 11월 19일 마련한 ‘병인박해 이후 평신도 신앙운동’ 심포지엄은 순교자 중심 교회사 연구에서 방향을 틀어 신앙 선조들의 투철한 삶에 눈길을 돌렸다. 

 

이 자리에서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조광(이냐시오) 교수는 병인박해 이후 개항기까지, 교우촌을 이루고 ‘살아남았던 신자들’에 주목해 “한국교회사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연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는 ‘병인년 박해 이후 평신도의 삶과 신앙’에 대해 발표하면서, 1791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교우촌이 박해의 칼날을 피한 신자들에게 중요한 삶의 못자리가 됐고, 이 공동체들이 종교의 자유를 얻으면서 공소와 본당으로 발전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 공소예절을 하고 있는 안동교구 안계본당 쌍호공소 신자들. 출처 「쌍호공소 200년 신앙의 뿌리」.

 

 

공소 공동체의 신앙과 삶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김혜경(세레나) 박사는 경기북부지역 공소 공동체 신자들에 대한 구술 연구를 바탕으로 한 ‘한국교회 소공동체의 뿌리로서 공소 공동체 연구’(2012년)를 통해 교우촌과 공소 공동체의 신앙과 삶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봤다. 

 

김혜경 박사는 한국교회 공소 공동체의 모습이 ‘사도시대 초대교회로부터 시작된 교회 공동체의 원형에 가장 걸맞은 조건을 갖춘 교회’라고 규정했다. 즉, 교우촌은 “신앙생활과 생존을 위한 경제적 삶이 통합돼 하나의 운명 공동체 성격을 띠게 됐다”며 “전 신자가 나눔과 섬김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지역사회에 빛과 누룩의 역할을 하며 성사적으로 살아 온 공동체”라는 것이다. 

 

교우촌 공소의 복음적 모습은 이미 19세기 선교사들의 편지를 통해서도 뚜렷하게 엿볼 수 있다. 전주 전동본당 초대 주임이었던 파리외방전교회 프랑수아 보두네 신부는 1889년 4월 22일 공소 방문 중 뮈텔 주교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보냈다.

 

“신입교우들의 협동심은 감탄스럽습니다. 그 중에서 뛰어난 미덕은 그들 서로가 사랑과 정성을 베푸는 일입니다. 현세의 재물이 궁핍하지만, 사람이나 신분의 차별 없이 조금 있는 재물을 가지고도 서로 나누며 살아갑니다. 공소를 돌아보노라면 마치 제가 초대교회에 와 있는 듯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그때의 신도들은 자기의 전 재산을 사도들에게 바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청빈과 형제적인 애찬(愛餐)을 함께 나누는 것 외에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이곳의 예비 신자들도 선배 형제들의 표양을 본받고 있습니다.”

 

2003년 8월 25일 「쌍호공소 200년 신앙의 뿌리」 출판 기념 미사에서 인사하고 있는 공소 출신 사제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소공동체 원형으로서의 공소

 

공소의 신앙 전통과 영성을 오늘에 되살리고자 하는 노력은 한국교회가 미래 사목의 대안으로 추진해 온 소공동체와 맞물린다. 1984년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의안’ 교회운영 68항은 이렇게 말했다. 

 

“본당 안에 작은 공동체 즉, 기초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크게 대두되고 있다. 오늘날의 교회는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서로 전례, 신앙,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본당은 신자수가 너무 많고 더구나 사제의 부족으로 본당 신부가 신자 개개인을 신앙인으로 성장시킬 수 없기 때문에 기초공동체가 필요하다.”

 

이후 한국교회는 본격적으로 작은 교회, 소공동체 교회를 지향하는 사목적인 과제를 추진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교회의 모태로서 공소 공동체가 소공동체 교회의 모델로 제시됐다. 

 

김진소 신부(호남교회사연구소 명예소장)는 2000년 ‘한국 천주교회의 소공동체 전통’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1990년부터 소공동체를 추진하면서 한국적 소공동체의 모델이 없어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고 하는 목소리가 있다”면서 “만약 한국교회가 온고지신의 정신을 가지고 신앙 유산에 관심을 두고 살아 왔다면 교우촌, 공소의 역사를 외면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교우촌과 공소를 한국적 소공동체의 모델로 확신했다. 

 

권혁주 주교는 앞서의 글에서 “인적 자원이 부족하고 생활 여건이 어려운 공소교회를 살리기란 생각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며 ‘공소 살리기’가 애당초 매우 어려운 과제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째 “소공동체 교회가 지향하는 공동체는 주체적인 동시에 보편성을 띠면서 신앙과 생활, 교회와 지역사회 사이에 틈이 없는 ‘신앙-생활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점, 둘째 “‘신앙-생활 공동체’의 못자리인 공소교회는 생활 조건으로나 지역 조건으로나 ‘소공동체 교회’가 자리 잡을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 되기 때문”에 공소는 소공동체 교회의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권 주교는 그렇게 “소공동체 교회의 모델이 하나 둘 생겨날 때, 한국적 소공동체 교회의 실현은 농촌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농촌으로 확산돼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가톨릭신문, 2019년 4월 7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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