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3일 (수)
(녹)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수도 ㅣ 봉헌생활

유럽 수도원 기행: 쾨닉스뮌스터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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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7-29 ㅣ No.607

[유럽 수도원 기행] 쾨닉스뮌스터 수도원

 

 

낯선 북독일 정서를 느끼고자

 

독일 유학을 준비하며, 엘마르 신부에게 독일어를 배우던 중, 어디 출신이냐, 거기가 표준어를 쓰는 동네냐고 물었다가 엄청 혼이 났다. 독일어에 표준어 같은 건 없다고 하셨다. 나폴레옹 때문에 자기네 동네가 프랑켄 지역이 되었지만, 자기는 원래 대(大) 마인츠 사람이라며 독일은 독일이라는 한 나라로서의 자부심보다는 자기네 고장, 자기네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고 한다. 엘마르 신부에게는 자기 동네 말이 표준말이었다.

 

한국을 떠나 독일에서 산 지 5년, 이제 조금씩 바이에른 말(boarisch)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니 낯선 곳, 낯선 지역을 찾아보고픈 맘이 불쑥 든다. 작년 여름휴가를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보냈는데, 이 나라들만큼이나 바이에른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 주 사우어란트(Sauerland)의 쾨닉스뮌스터 수도원(Abtei Königsmünster in Meschede)에서 본국 휴가를 보내고 계시던 진문도 토마스 신부(Thomas Timpte, 晋聞道)께서 한 번 찾아오라고 연락을 주셨다.

 

메쉐데가 위치한 사우어란트는 사실 독일에서 아주 북쪽은 아니다. 중서부 혹은 중북부에 가까운데, 독일 내 아빠스좌 수도원 분포도를 놓고 말해보면, 게를레베 수도원(Abtei Gerleve)과 더불어 최북단에 위치한다. 맥주로 유명한 바이에른 연합회 수도원들은 그 이름대로 독일 동남부 바이에른에 몰려있고, 수도승다운 엄격함이나 전례와 학문에 두각을 보이는 보이론 연합회 수도원들은 독일 서쪽에 몰려있다. 우리 연합회 다른 수도원들(상트 오틸리엔, 뮌스터슈바르작, 슈바이클베르크)이 바이에른 주에 있는 반면에, 쾨닉스뮌스터 수도원은 독일 북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우주선 같은 수도원

 

“그 수도원은 무슨 우주선 같더라.”하는 로마노 수사의 말이 떠올랐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인터넷까지 검색해 봤는데도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에서 열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수도원에 도착해 성당을 보고나서야 이해가 갔다. 왜관 수도원처럼 기찻길 옆, 읍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수도원 성당은 마치 발사 직전의 우주선 같다. 수도원 내부 통로도 얼기설기 얽혀 있는데, 식당으로 가는 통로는 그야말로 비행기 타러 들어가는 통로 같다. 그 와중에 식당은 미래의 자연주의를 보여주는 듯 해, 아이러니하다. 절정은 수도원 성당 맞은편에 세워진 ‘침묵의 집’(Haus der Stille)인데, 노출 콘크리트 기법으로 세워진 이 건물은 너무나 삭막하다. 다행히도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김나지움과 젊은이들, 청소년들을 위한 ‘오아시스’(Oase)라는 건물은 깔끔하게 아주 잘 지어졌다.

 

보통 베네딕도회 수도원은 세워진 지역 이름을 수도원 이름으로 삼는데, 이 수도원은 지역 이름인 메쉐데가 아닌, ‘(그리스도) 왕 수도원’을 뜻하는 ‘쾨닉스뮌스터’(Königsmünster)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우리 연합회의 다른 수도원들과는 달리 수도원 설립 목적을 교육사업에 두고 있기는 하지만, 1925년에 비오 11세 교황이,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존재하는 모든 곳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제정한 ‘그리스도 왕 대축일’과 연관된 수도원 이름은 오딜리아 연합회의 선교 정신을 담고 있다.

 

 

 

 

본국 휴가 중인 토마스 신부

 

수도원에 도착해서 바로 토마스 신부께 인사를 드렸다. 본국 휴가를 와서도 토마스 신부는 짧은 개인 일정을 제외하고는 본원에 머물며 수도형제들과 어울렸다. 그래서 그런지 수도 공동체에서 받는 관심과 사랑이 남 다르다. 몇 년에 한 번씩 오기 때문에 서로 잘 모를법한 젊은 형제들도 진 신부 얘기를 하고, 어른들의 경우 옛 이야기까지 꺼내가며 칭찬한다. 물론 선교지에 파견되어 활동하는 형제가 드물어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이튿날, 토마스 신부와 함께 수도원 뒷산에 올랐다. 기도와 식사 시간에 맞추어 돌아오느라 산속 깊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꽤 오래 걸었고 덕분에 이런 저런 이야기도 많이 나눌 수 있었다. 그 가운데는 지역과 언어에 관련된 이야기도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토마스 신부 가족은 다른 지역으로 피난을 가서 한동안 지냈다. 당시 그 동네 꼬맹이들이 당신과 동생을 그렇게 괴롭히더란다. 자기네와 다른 말을 쓴다는 이유로. 심지어 동생은 돌멩이를 맞았다고 한다. 엘마르 신부에게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신학을 배울 때 일이다. 하루는 토마스 신부가 과일을 사러 갔는데 가게 주인이 토마스 신부의 억양을 듣고는 “이 프로이센 녀석, 썩 꺼져라.”하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사실 토마스 신부는 바이에른 말보다는 네덜란드 말을 알아듣기가 수월하다고 했다. 아마 ‘플랏뒤치’(plattdüütsch)라고 하는 북서쪽 독일어 지역 출신이라 그렇지 싶다.

 

 

수도원의 볼거리

 

쾨닉스뮌스터 수도원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28년에 지방정부에게 학교 운영을 위탁받은 오딜리아 연합회 수도자들이 수도공동체를 세웠다. 수도원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폐쇄되었다가, 1956년에 아빠스좌 수도원으로 승격되었다. 초대 아빠스 재임기간 중 성당이 지어졌다. 수도원 성당은 1964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 25주년에 맞추어 ‘평화로 나아갈 수 없는 세상에 평화의 성당’으로 축성되었다. 토마스 신부와 산책을 다녀오는데 마침 새 학기를 맞은 김나지움 학생들이 조별로 수도원 관련 질문지를 들고 수도원 건물 곳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우리에게 라틴어로 쓰인 비석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질문지를 들여다 보니 성당 내부에 평화를 기원하며 세계 곳곳에서 가져와 붙인 돌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토마스 신부의 말로는 한국에서 가져 온 돌도 있다는데 찾지 못했다.

 

수도원 안 정원 한쪽에는 오래된 장미나무가 한 그루 있다. 힐데스하임(Hildesheim)의 천 년 묵은 장미나무 한 가지를 잘라와 심은 건데, 재래종이라 우리가 아는 개량종 장미보다 훨씬 소박한 꽃을 피워낸다. 우주선 통로 옆에 있는 천 년 된 장미나무와 통로 끝에 있는 녹색의 자연주의 식당이라. 뭔가 조합이 참 재미있다. 수도원의 일터로는 학교와 침묵의 집, 젊은이들을 위한 ‘오아시스’ 집 말고도, 원장인 아브라함 피셔(Abraham Fischer) 신부가 주축이 된 철공소와 알렉산더 아우스트(Alexander Aust) 수사가 베틀로 옷감을 직접 짜서 제의, 영대, 제대포 등을 만드는 공방이 있다. 이 두 공방은 다른 어떤 수도원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의 공예품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집의 분위기는 확실히 바이에른 지방과는 다르게 꽤 엄격한 분위기가 묻어났다. 북쪽답게 식사 때 나오는 ‘모스트’(Most)가 같은 단어라도 ‘사과주’가 아닌 ‘사과주스’였고, 수도원 전체가 수련소 수준의 침묵을 유지한다. 수사들도 바이에른 지방처럼 낯선 손님에게 다가와 이것저것 묻지 않고, 조용히 인사만 하고 스쳐지나갔다. 왜관을 방문한 적이 있는 몇몇 형제들만 모종의 책임감을 느낀다는 듯이 꽤 친절하게 이것저것 설명해 주고 안내해 주었다.

 

 

 

 

수도원을 빛낸 인물

 

전임 아빠스인 도미니쿠스 마이어(Dominikus Meier)가 임기를 마치고 파더본(Paderborn) 대교구의 보좌주교로 선임되어 봉사하고 있다. 재미있는 건 도미니쿠스 주교를 아빠스로 뽑을 당시에 공동체 형제들이 임기를 12년으로 제한했다는 점이다. 베네딕도회는 전통적으로 종신서원 형제들이 투표권을 행사해서 공동체 장상을 뽑는데, 오딜리아 연합회는 아빠스 임기를 종신제 또는 12년제로 할지 수도공동체에서 미리 정하도록 규정한다. 도미니쿠스 아빠스는 12년 임기를 마친 후 은퇴하였다가 주교로 임명되었다. 이밖에 이 집에 미햐엘 헤르메스(Michael Hermes) 신부가 중요한 분인데, 김나지움에서 생물과 종교과목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데트몰트 음악대학에서 그레고리오 성가를 가르쳤다. 상 갈렌 도서관의 381번 사본을 연구해서, 입당송과 영성체송에 어울리는 시편 구절을 복원한 분이다. 새로 발행된 ‘그라두알레 노붐(Graduale novum)’은 과거 솔렘의 시편 구절 멜로디가 아닌 헤르메스 신부가 복원한 멜로디를 채택했다.

 

수도원을 떠나는 날, 토마스 신부께서 기차역까지 배웅을 나와주셨다. 역까지 같이 걸으며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음식이나 언어 등 생활하는 데 힘든 점이 없냐고 물으셨다. 아직까진 특별히 힘든 점이 없고, 독일 친구들하고도 잘 지낸다고 하니 다행이라 하셨다. 예전에 이곳에서 유학을 하며 힘들어했던 한 형제가 있었다며 토마스 신부는 그 형제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들을 들려주셨다. 그 형제가 우리 앞에서 독일 얘기를 할 때는 늘 상처받은 일만 꺼냈는데, 그 와중에도 나름 재미가 있었던 모양이다. 남쪽과 북쪽이 이렇게 다른데, 하물며 한국과 독일이야. 멀리서 와서 말도 못하는데, 힘든 기억만 콕콕 박혀 오랫동안 상처가 아물지 않는 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혹시나 나처럼 바이에른에서 지냈더라면 재미있게 지냈을까.

 

* 쾨닉스뮌스터 수도원 누리집 http://www.koenigsmuenster.de/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7년 가을호(Vol. 39), 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 사진 제공 쾨닉스뮌스터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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