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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이스라엘 성지: 예수님 활동의 중심지 카파르나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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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7-05 ㅣ No.1772

[예수님의 생애를 따라가는 이스라엘 성지] 예수님 활동의 중심지 카파르나움

 

 

- 카파르나움.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가장 많이 바치는 묵주기도와 관련지어, 잊을 수 없는 이 시대의 교황이 있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재위 1978~2005)입니다. 묵주기도에 ‘빛의 신비’를 추가해 우리가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예수님의 생애 전체를 제대로 묵상할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빛의 신비 3단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심”을 묵상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당신의 공적 활동을 시작하신 곳은 어디일까요? 복음서들은 모두 “갈릴래아”라고 언급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마태 5,27; 마르 1,14-15 참조) 갈릴래아는 이스라엘 땅 북쪽에 있습니다. 동쪽으로는 갈릴래아 호수를, 서쪽으로는 지중해를 끼고 있지요. 또 남쪽으로는 사마리아 지방과 경계를 이룹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갈릴래아 지방을 활동 지역으로 삼으셨습니다만, 그 가운데서도 당신의 거처로 삼으신 중심 도시가 있었습니다. 카파르나움입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이렇게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래아로 물러가셨다.… 그리고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자리를 잡으셨다.”(마태 4,12-13)

 

 

생선을 파는 시장이 있던 항구도시 카파르나움

 

- 카파르나움 회당 유적.

 

 

갈릴래아 호수 북쪽 해변에 있는 카파르나움은 예수님 시대에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잡은 생선을 파는 시장이 있는 항구도시였습니다. 도시의 길이가 1㎞나 됐다고 하니 당시로서는 꽤 큰 도시였습니다. 게다가 멀리 아프리카에서 지중해 해안을 거쳐 메소포타미아에 이르는 ‘바다의 길’이라고 하는 교통로가 지나는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고 세관도 있었지요.(마태 8,5; 마르 2,13-14 참조). 그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첫 제자들, 곧 시몬 베드로와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신 곳이 카파르나움 해안이었습니다.(마르 1,16-20). 세리 마태오(레위)를 부르신 곳 또한 카파르나움입니다(마르 2,14; 마태 9,9)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을 활동의 중심지로 삼으신 데는 이 모든 요인이 함께 작용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에서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안식일이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더러운 영을 쫓아내셨고 많은 병자와 마귀 들린 이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시몬의 장모도 고쳐 주셨지요(루카 4,31-41). 사람들이 지붕을 뚫고 들것으로 내려 보낸 중풍병자를 고쳐 주신 곳도(마르 2,1-12), 백인대장의 종을 낫게 하신 곳도 카파르나움이었습니다(루카 7,1-10).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행하신 후 당신이 살아 있는 생명의 빵이라고 가르치셨는데, 그곳 또한 카파르나움 회당이었습니다(요한 6,22-59)

 

- 카파르나움 입구의 예수님의 집 팻말.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을 중심 거처로 삼아 하느님 나라에 관한 기쁜 소식을 선포하시고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만, 카파르나움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을 향해 이렇게 단죄하시지요.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 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마태 11,23)

 

예수님의 이 말씀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겠지만, 예수님 시대에 번성했던 도시 카파르나움은 이후 흔적만 남은 폐허로 변했습니다. 3세기의 한 기록에 의하면, 가난한 어부들의 집 일곱 가구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 후에 재건됐으나 다시 황폐화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옛 집터들과 회당 터는 그대로 남아 있어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에게 예수님 시대를 떠올리게 해줍니다.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가 관리하는 카파르나움 성지 대문과 담벼락에는 ‘예수님의 도시’라고 쓰여 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옛 도시 유적들과 함께 팔각형의 아름다운 현대식 성당이 보입니다. 성당은 폐허만 남은 집터 바로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성당 아래의 집터가 시몬 베드로의 집(또는 시몬의 장모의 집)으로 전해집니다. 발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집터에는 그리스어로 ‘베드로’라고 쓰인 팻말과 어선의 그림이 발견되었다고 하지요. 또 벽에는 그리스어로 예수를 주님이요 그리스도라고 표현한 글씨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1세기부터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베드로의 집에서 모여 함께 기도하고 성찬례를 거행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게 해줍니다. 베드로의 집이 경당 역할을 한 것이지요. 5세기쯤에는 그 위에 8각형 형태의 성당이 지어졌습니다. 하지만 614년 이슬람의 침입으로 성당이 폐허가 되면서 오랜 세월 그대로 방치됐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되새기며 우리 신앙을 성찰해야

 

- 베드로 집터 위의 베드로 기념 성당, 성당 바닥에서 본 집터.

 

 

옛 팔각형 성당을 본 딴 현재의 팔각형 성당은 1990년에 지어져 순례자들이 베드로의 집터 위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기도를 바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성당 중앙 바닥은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유리 바닥을 통해 옛 집터를 볼 수 있습니다. 집터를 내려다보면서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를 낫게 해주신 일, 사람들이 지붕을 뚫고 들것으로 내려 보낸 중풍병자를 치유하신 일들을 떠올리며 예수님의 현존을 더욱 실감나게 묵상할 수 있습니다.

 

성당에서 왼쪽으로 30m 남짓 떨어진 곳에는 가파르나움 회당 터가 있습니다. 회당 터를 자세히 살펴보면 벽이 두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일 아래에 있는 부분이 예수님 시대의 회당 터이고 윗부분은 4세기쯤에 증축 또는 재건된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현재의 모습은 옛 회당 터 주변에 흩어져 있던 자재들을 모아 20세기에 복원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 회당 터에서는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시던 모습들과 백인대장의 종을 고쳐 주신 일화 등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도시 카파르나움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우리 신앙을 성찰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입니다. 폐허가 된 카파르나움이 순례자들에게 소리 없이 외치는 듯합니다. “너 카파르나움아….” 누구를 위한 누구의 외침이겠습니까.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7월호, 이창훈 알퐁소(가톨릭평화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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