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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수녀원 창가에서: 봉쇄 수녀원이 궁금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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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1-22 ㅣ No.597

[수녀원 창가에서] 봉쇄 수녀원이 궁금하시죠

 

 

올해 첫 호에서는 저희 집에 대해 「경향잡지」 벗님들과 간단히 나누고 싶네요. 저희 수녀회는 원주교구 배론 산골에 있는 도미니코회 천주의 모친 봉쇄수도원입니다. 올해로 수도원 25주년, 말 그대로 은경축을 맞았지요. 함께 기뻐해 주시고 하느님과 함께하는 참된 행복의 삶에 많은 젊은이가 투신하도록 기도해 주세요. 봉쇄 수녀원은 말 그대로 ‘봉쇄’라서 허락 없이는 아무도 들어오거나 나갈 수 없는 곳이지요. 그렇지만 이렇게 「경향잡지」를 통해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수도원 안뜰에 들어서면

 

저희 집은 미음(ㅁ)자로 된 집을 생각하시면 돼요. 제가 어릴 때 살던 시골 동네에는 미음 자로 지은 집이 두어 채 있었지요. 가운데 뜨락에 포도나무가 있는 집이었고, 또 한 집은 그 뜨락에 작은 우물도 있었답니다.

 

미음 자 집에 익숙지 않으신 분들은 처음에는 좀 어지러우실 수도 있어요. 방향 감각이 약해지거나 약간의 상실을 초래하기도 하니까요. 저도 수도원에 입회한 지 얼마 안 되어 도무지 집 안의 전체 구조를 알 수가 없었던 시절도 있었답니다. 지금은 눈을 감고도 집 안 구석구석을 찾아갈 수 있을 정도지만요.

 

수도원의 안뜰에 들어서면 미음 자의 작고 소박한 정원을 만날 수 있지요. 그 뜨락의 한가운데에는 ‘믿음의 어머니’이신 우리의 어머니, 바로 성모님이 계십니다. 우리 신앙의 길이신 아기 예수님을 굳건하고 당당하게 지탱하고 계신 ‘신앙의 보루’이시지요.

 

이제 수도원 중앙 정원을 지나 아빠 하느님의 ‘에덴’ 동산인 수도원 성당을 함께 보실까요? 봉쇄 수도원의 특징에 따라서 이곳 성당은 신자들의 자리와 수녀들이 머무는 공간이 ‘창살’(격자)로 분리되어 있지요. 장소는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천장까지는 격자가 닿지 않아 열린 공간이지요. 이는 우리가 찬미하고 모시는 하느님은 신자들에게나 봉쇄 수녀들에게나 같은 분이시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저희 수도회 문장인데 도미니칸들의 사명, 곧 진리와 말씀의 설교라는 사명을 아주 잘 전해 줍니다. 전체는 직사각의 검은 철강으로 되어서 결코 꺾이지 않는 도미니칸의 ‘진리’를 위한 사명을 잘 보여 주지요. 그 안의 곡선으로 표현된 문장은 그 진리를 선포할 때 아빠 하느님의 부성적인 마음과 연민의 마음으로 선포해야 하는 사랑의 사명을 잘 드러내 준답니다.

 

이곳 수도원 성당에서는 하루에 일곱 번의 공적 기도, 곧 성무일도가 바쳐지지요. 이 찬미야말로 저희가 교회와 세상을 위해 살겠다고 약속한 첫 번째 ‘일’이지요. 저희 수도원을 방문하는 분들이 면회실에서 물어보시는 것 가운데 하나가 ‘수녀들이 무슨 일을 하는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희는 바로 ‘성무일도’, 곧 시간 전례로 ‘신적인 일’이라고 대답하지요. 정해진 시간에 맞춰 교회와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지요.

 

 

좋기도 좋을시고 아기자기한지고

 

우리 수도원의 중심인 성당과 함께 아주 중요한 장소인 ‘공동방’이 있습니다. 이 공동방에서 저희는 레크리에이션이나 수업, 여러 작업에 함께하지요. 레크리에이션 시간은 공동체 모두가 동그랗게 모여 앉아 진진한 삶의 체험과 하느님의 말씀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또한 세상 형제들의 기쁨과 고통, 기도 지향을 나누는 ‘코이노니아’(친교)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곳을 소개하자면, 저희 수녀들의 ‘노동’ 장소인 ‘제병 작업방’입니다. 이곳에서 저희는 여러 본당으로 보낼 제병을 구슬땀을 흘리며 정성을 다해 굽고 자르며 포장합니다. 책임 수녀님들이 준비해 놓은 시간표에 따라 온 공동체가 사랑의 침묵 속에 조화롭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답니다. 많을 때는 일고여덟 명이 함께 일해도 침묵과 잠심 속에서 사랑으로 고동치는 심장의 소리만이 감지되지요.

 

이 공동 작업장에 들어서면 기계 소음 속에서도 인간의 침묵, 오직 정배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대화인 그 깊은 침묵의 장관 앞에 경이감이 느껴진답니다.

 

제병 작업실의 문을 나서면 ‘배구장’이 있습니다, 혹시라도 봉쇄 수도원이 따분한 곳이라거나 지루하거나 심심한 곳일 거라고 조금이라도 생각하신 벗님이 계신다면 지금 그 생각을 온통 지워 버리시기를 부탁드려요.

 

이 배구장은 우리의 ‘웃음 치료실’이고, 수도원의 ‘명소’입니다. 레크리에이션 시간마다 하는 배구 경기에서는 때론 넘어지고, 심지어 안경까지 부러지는 불상사도 벌어질 정도랍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기쁨의 대향연이지요. 때때로 스파이크와 ‘시간차 공격’(?)까지도 연출된답니다. 정말이지, 저희 배구 경기의 ‘실황 중계’를 해 드릴 수 없어서 안타까울 정도예요. 봉쇄 수도원의 특성을 이해해 주세요.

 

 

함께 안에서 홀로 머물기

 

저희 집 주방도 함께 보실까요? 저희는 모든 수녀가 주방장이랍니다. 무슨 이야기냐고 물으시겠지요. 저희는 한 주간씩 돌아가며 주방 봉사를 합니다. 매주 주방 봉사자가 바뀌어서 주방 일을 하기 때문에 각각의 손맛이 다르지요.

 

그렇지만 모두가 사랑으로 조리하고 맛을 내어 음식을 장만한답니다. 평소에는 한두 사람이 준비하지만 추석이나 설 같은 우리 고유의 명절이거나 교회 전례력에 따른 대축일이면 온 공동체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주방으로 모여들지요.

 

아침을 먹은 뒤 다 같이 설거지하고 나서는 어떤 이는 야채를 다듬고 어떤 이는 파를 썰지요. 전도 부치고, 나물도 무치며, 국도 끓이고요. 모두 눈에 선하시죠?

 

북적북적한 이런 날은 대침묵도 관면이 되고 소곤거림과 웃음으로 함께하지요. “좋기도 좋을시고 아기자기한지고, 형제들이 오손도손 한데 모여 사는 것!”

 

저희는 모든 것을 될 수 있는 대로 함께 나누고 공유하며 지내지요. 물론 홀로 일할 때가 대부분이지만요. 그러나 ‘함께’ 안에서 의 ‘홀로’랍니다. ‘홀로’ 있지만 늘 ‘함께’ 홀로 있습니다.

 

이제 벗님들과 작별 인사를 해야 할 시간이네요. 이 인사로 새해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아빠 하느님 품에 꼬옥 안긴 강아지처럼 행복한 개띠 해 되세요. 사족이지만 ‘도미니칸’을 라틴어로 하면 ‘Domini’(주님의)와 ‘canes’(개), 곧 ‘주님의 개’라는 뜻이랍니다. 벗님들 모두 ‘도미니칸’으로 죽기까지 주님께 충성을 다하는 ‘주님의 개’로 사시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경향잡지, 2018년 1월호, 양미혜 마리아 에반젤리나(도미니코회 천주의 모친 봉쇄수도원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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