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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사목] 집에서 떠나는 하늘 소풍: 가정 호스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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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7-16 ㅣ No.1018

[집에서 떠나는 하늘 소풍] (상) 아름다운 이별, 가정 호스피스


생의 마지막 나날들… 집에서 보낼 수 있을까

 

 

1시간에 35명, 1년에 27만 명. 우리나라에서는 2분마다 1명씩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삶을 마무리하는 모습은 저마다 다르다. 죽음을 앞둔 사람 중엔 중환자실에서 약물과 씨름하다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 편안하게 눈을 감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고 있을까.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8월부터 시행된다. 이에 가장 익숙한 공간인 집에서 임종을 맞는 ‘가정 호스피스’를 살펴보는 기획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8월 시행되면 호스피스 대상이 기존의 암 환자 외에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간경화로 확대된다. 병원과 가정에서 암 외에 3가지 질환 환자들도 호스피스를 받을 수 있다. 그래픽=문채현.

 

 

임종자들의 벗, 가정 호스피스

6월 5일 경기도 포천 모현센터의원 유리라(젬마,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가 김길순(82) 할머니 집을 방문했다. 위암 말기인 김 할머니는 앞으로 살날이 두 달 정도 남은 말기 환자다. 가정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인 유 수녀는 5월부터 할머니의 집으로 호스피스 방문을 하고 있다.

김 할머니 집은 모현센터의원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다. 할머니는 햇살이 잘 드는 거실에 누워 지낸다. 집안에는 할머니 눈길이 닿는 곳마다 자녀와 손주들 사진이 붙여져 있다. 할머니가 자녀들을 보고 싶을 때 언제든 볼 수 있도록 유 수녀가 제안해서다.

유 수녀는 김 할머니 건강 상태부터 확인했다. “혈압은 지난번이랑 같아요. 밥은 얼마만큼 드셨어요?”

밥은 얼마나 먹었는지, 잠은 얼마나 잤는지 확인하는 것은 말기 환자에게 중요한 일이다. 혈압이나 혈당 체크부터 상처 치료, 통증 조절 등 호스피스 병원에서 이뤄지는 일들이 모두 환자의 집에서 이뤄진다.

살갑게 자신을 돌봐주는 유 수녀에게 김 할머니가 빵이 있는 곳을 손으로 가리킨다. “저기 빵 있으니까 잡숴.” 괜찮다는 유 수녀와 그래도 뭐라도 먹이려는 김 할머니 사이에 잠시 정겨운 실랑이가 벌어졌다. 유 수녀는 “손님이 아니니 빵 같은 거 안 주셔도 된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김 할머니는 “우리 집에 오면 모두가 손님”이라며 연신 빵을 권한다. 가정 호스피스에선 환자가 집에서 의료진을 맞게 되니 의료진은 ‘우리 집’에 온 ‘손님’이 된다.

유 수녀는 김 할머니 몸 상태만 챙기는 게 아니다. 할머니 마음과 기분까지 살뜰히 살핀다. 김 할머니가 가장 아끼는 막내아들이 다음날 온다는 것을 안 유 수녀는 막내아들 이야기를 꺼내며 물었다. “아드님 오시면 무슨 얘기 해주실 거예요?” 김 할머니는 “사랑한다고 해주겠다”고 했다. 유 수녀가 “우리 아들 자랑스럽다 이런 얘기도 해주셔야죠”라고 한껏 부추기자 주름진 김 할머니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가족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하기’는 유 수녀가 지난 방문 때 김 할머니에게 내준 숙제다.

호스피스 의료진은 환자와 가족이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돕는다. 서로 사랑을 표현하고 가슴에 맺혔던 응어리는 풀면서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모현센터의원 정극규 의료원장은 “호스피스는 ‘편안한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인간답게’ 살다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중에서도 가정 호스피스는 집에서 임종을 맞도록 돕고 있기에 환자와 가족들은 심리적으로 더 안정될 수 있다. 내가 마지막까지 ‘나’로 있을 수 있는 곳은 바로 내 집이기 때문이다. 김 할머니는 가족들과 25년 동안 살았던 집에서 가족의 보살핌과 의료진 방문을 받으며 임종을 준비하고 있다.

 

 

호스피스 돌봄 늘어나야

국민건강보험공단 조사 결과 우리나라에서 치료비가 급증하는 시기는 ‘사망 직전’이다. 환자는 더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데도 CT, MRI 등 각종 검사와 심폐소생술 등을 받게 된다. 치료 효과 없이 투병 기간만을 연장하는 ‘불균형적’ 의료 행위는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부담만 지울 뿐이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고통을 줄이면서 남은 시간 동안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가 바로 ‘호스피스’다. ‘균형적’인 의료 처치와 함께 통합적 돌봄을 제공한다. 우리나라에서는 78개 의료기관에서 호스피스를 제공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암 환자 중에서는 15%만이 호스피스 돌봄을 받고 세상을 떠난다.

보건복지부 공공정책관 권준욱 국장은 “우리나라는 의료 패러다임 변화를 겪고 있다”면서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환자’ 그 자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어 “통합적 돌봄이 이뤄지는 호스피스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려면, 의대 교육부터 병원 문화까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호스피스 제도는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상태다. 새 법이 시행됨에 따라 8월 4일부터 호스피스 대상이 암 환자 이외에도 만성질환(후천성 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간경화) 환자로 확대된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서울 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이용주(요한 세례자) 교수는 “호스피스는 인간의 기본 권리”라며 “죽음 앞에서 누구나 편안하고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말기 상태에서 치료를 받을지, 호스피스를 받을지 선택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지만 불필요한 검사나 치료를 줄이고 일상생활을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제도와 인식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7월 16일, 김유리 기자]

 

 

“집에서도 하늘나라 소풍 갈 수 있어요”


모현센터의원 유리라 수녀, 가정 임종의 걸림돌 ‘두려움’ 극복할 수 있어

 

 

“집에서도 하늘나라 소풍 갈 수 있어요”

“소풍 가기 전날에 설레서 잠을 못 자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말기 환자들이 집에서 편안하게 계시다가 임종하시는 게 저희의 바람이에요.”

모현센터의원에서 가정 호스피스 전문간호사로 근무하는 유리라 수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임종을 마주한다. 수많은 죽음을 경험하면서 유 수녀는 확신하게 됐다. 집에서도 충분히 임종을 준비할 수 있다고 말이다.

“말기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집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분들이 참 많아요. 그런데 가족들이 부담을 느끼고 불안하니 환자를 병원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죠.”

유 수녀는 암 환자의 경우 가족들에게 임종 전 증상을 충분히 설명하고 대처법을 교육하면 집에서도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집에서 임종을 맞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간호 인력이나 전문지식이 아니라 바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그는 가정방문 때마다 환자뿐 아니라 가족들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

“임종을 앞둔 분들이 하늘나라 가기를 기다리면서 ‘정말 후회 없이 잘 살다 간다’고 말씀하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불편해 하지 않고, 불안해 하지 않고, 편안하게 가실 수 있도록요.”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7월 16일, 김유리 기자]

 

 

[집에서 떠나는 하늘 소풍] (중) '죽음의 질' 아시아 1위, 대만의 비결


의료진과 환자, 가족들의 이야기 소리 넘치는 삶의 종착역

 

 

- 맥케이 기념 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죽음을 말하기를 금기시하는 아시아 문화권에서도 호스피스가 잘 정착된 나라가 있다. 2015년 영국 이코노미스트 연구소(EIU)가 발표한 ‘죽음의 질’(Quality of Death) 조사에서 아시아 1위, 전 세계 6위를 차지한 대만이다. 대만 사람들은 삶의 마지막 시간을 편안하고 품위 있게 보낸다. 이는 호스피스 제도와 연결된다. 대만은 어떻게 호스피스를 정착시킬 수 있었을까. ‘죽음의 질’ 아시아 1위의 비결을 찾고자 대만 현지에 다녀왔다.

 

 

맥케이 호스피스센터의 3가지 비결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의 외곽에 위치한 맥케이 기념 병원 호스피스ㆍ완화의료센터.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호스피스 병동이다. 5층짜리 건물이 오로지 말기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꾸며져 있다. 병실이 있는 층은 1층과 3층. 나머지 층은 환자들이 산책할 수 있는 정원이나 가족이 쉴 수 있는 공간이다.

 

병실 하나에 환자는 최대 두 명까지만 받는다. 베란다까지 딸린 널찍한 병실에는 햇빛이 가득 들어온다. 환자들이 답답하지 않도록 창을 최대한 크게 만들어서다. 병동 중앙에는 피아노와 소파, 책장이 있다. 

 

 맥케이 호스피스센터에는 3가지가 많다. 의료진과 푸른 정원, 그리고 이야기 소리다. 특히 호스피스 환자들이 머무는 3층은 병원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활기가 넘친다. 간호사와 환자 가족들은 친한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숙면을 취하는 방법이나 오늘 아침 식사 메뉴, 평소 취미까지 대화 주제도 다양하다.

 

맥케이 호스피스센터 수간호사인 짱스인씨는 “환자의 ‘질병’이 아닌 ‘사람’ 자체를 돌보는 게 맥케이 호스피스의 정신”이라고 강조한다. 병원과 의료진은 말기 환자들이 병의 고통을 덜고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환자와 가족에게 맞춘다.

 

맥케이 호스피스센터에서는 환자보다 의료진을 더 자주 마주친다. 병상 32개에 간호사 32명, 환자와 간호사의 비율이 1:1이다. 의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도 5명을 넘지 않는다. 사회복지사와 심리학자, 성직자까지 더하면 호스피스팀만 40명이 넘는다. 우리나라 현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현재 우리나라 규정에 따르면 호스피스 병동은 병상 20개에 의사 1명 이상이 있어야 한다. 

 

맥케이 센터에서는 타이베이 인근 120개 가정으로 호스피스 방문을 나간다. 가정 호스피스 돌봄을 받던 환자들은 상태가 안 좋아지면 병원에 입원했다가, 다시 집으로 가기를 반복한다. 장소가 어디든 환자들은 호스피스팀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는다.

 

 

대만 호스피스 현황

 

대만에서는 암 환자 중 56%가 호스피스 돌봄을 받고 세상을 떠난다. 2000년만 해도 7%에 불과했던 암 환자의 호스피스 이용률이 8배가 늘었다. 대만은 2015년 기준으로 53개 호스피스 의료기관에서 718개의 병상을 운영하고 있다. 암을 비롯해 루게릭, 노인성 치매, 뇌 저하, 심부전, 만성 폐쇄성 폐질환, 기타 폐질환, 만성 간경화 환자도 호스피스 대상이다. 8개 질환 환자는 호스피스 비용이 모두 무료다. 이 외의 환자들은 병원에 입원하면 전체 의료비의 10%, 가정에서 호스피스를 받으면 5%의 비용만 부담하면 된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7월 23일, 글 · 사진=김유리 기자]

 

 

“임종 앞둔 이들 끝까지 좋은 삶 살다 가도록 도와야”

 

‘대만 호스피스의 어머니’ 차오크스 교수… 생명 관련 종사자 ‘좋은 죽음’ 알아야

 

 

‘대만 호스피스의 어머니’로 불리는 차오크스(70, 성공대학교 의학원) 명예교수를 대만 국립 성공대학교에서 만났다. 간호사인 그는 30년 전 대만에 호스피스를 도입해 정착시켰다. 당시 대만 사회에선 ‘호스피스’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그는 2000년 대만에 호스피스ㆍ완화의료법이 제정되는 데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고통 속에 죽어가는 환자들을 보면서 간호사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책과 논문을 뒤져서 ‘호스피스’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 결심했죠. 이것이 제가 평생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요.”

 

그는 비참하게 죽어가는 환자를 보면서 호스피스에 투신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차오크스 교수가 간호사로 근무하던 1980년 초반 대만에서는 말기 환자에게 과도한 의료 행위가 자주 이뤄졌다. 말기 암 환자가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다가 자살하는 일도 있었다.

 

차오크스 교수는 영국으로 건너가 현대 호스피스의 개념을 정립한 의사 시슬리 손더스(Cicely Saunders)에게 호스피스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대만으로 돌아와 대만 상황에 맞는 호스피스 체계를 만들었다. 현재까지도 대만의 호스피스 기관은 차오크스 교수가 만든 시스템을 기본으로 운영한다.

 

차오크스 교수는 “호스피스 정착을 위해선 의료진 교육과 대중 인식 개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만에서 매년 의사 600명, 간호사 1만 명이 배출되는데 이들은 의무적으로 호스피스ㆍ완화의료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새내기 의사와 간호사들은 80시간의 교육을 받고, 해마다 20시간씩 재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차오크스 교스는 죽음과 호스피스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지금도 강단에 서고 있다. 그는 “판사와 보험설계사 등 생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이들에게 ‘좋은 죽음’에 대해 강의한다”면서 “죽음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편안하게 떠나는 것이 좋은 죽음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를 낀 채 가족과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떠나는 죽음은 ‘나쁜 죽음’”이라고 했다. 

 

차오크스 교수는 지금까지 판사 1000여 명, 보험설계사 7만 명을 만났다. 1년 일정은 200건이 넘는 강의 일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호스피스는 죽음을 기다리는 게 아니다”고 거듭 강조했다. 

 

“호스피스는 삶을 마지막까지 잘 살 수 있게 도와주는 겁니다.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끝까지 좋은 삶을 살다 갈 수 있도록 함께 해주는 거지요.”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7월 23일, 김유리 기자]

 

 

[집에서 떠나는 하늘 소풍] (하) 가정 호스피스, 지역사회로 파고들어


호스피스 사각지대, 지역사회가 밝힌다

 


- 호스피스는 종합병원 중심의 인력 구조라 지방의 경우 호스피스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공공형 호스피스 등을 통한 사회 약자에 대한 돌봄 확산이 시급하다. 삽화=문채현.

 

 

가정 호스피스는 2016년부터 정부 시범사업으로 21개 의료기관에서 시행 중이다. 병원에 입원해서 받는 호스피스처럼 건강보험 적용을 받기 위해 시범 운영하고 있다. 의료기관에서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환자의 가정을 방문해 호스피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대도시가 아니면 가정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기가 어렵다. 종합병원을 중심으로 호스피스 인력이 구성돼있고, 의료기관에서 모든 지역을 방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가정 호스피스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가정 호스피스 정착을 위한 과제를 알아본다.

 

 

병원이 멀면 방문할 수 없어

경기도 포천 모현센터의원 유리라(젬마,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에게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말기 암 환자를 돌보고 있는 보호자 A씨였다. 일산에 사는 그는 포천에 있는 모현센터의원 의료진에게 가정 호스피스를 받을 수 있는지를 문의했다.

경기도 포천에서 일산까지는 편도로만 1시간 이상 걸린다. 길이 막히면 2시간이 훌쩍 넘는다. 유 수녀는 일산의 가정 호스피스 시범기관을 소개해 줬다. 그러나 A씨는 가정 호스피스를 받을 수 없었다. 유 수녀가 알려준 시범기관은 일산 시내만 방문할 수 있다면서 일산 외곽에 위치한 A씨네 방문을 고사했다.

가정 호스피스는 의료진이 환자의 집으로 방문해야 하기 때문에 해당 의료기관마다 ‘반경 몇㎞ 이내’, ‘소요 시간 몇 분 이내’ 식으로 기준을 세워둔다. 의료진이 부족한 상황에서 환자 한 명을 방문하는 데 온종일 시간을 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A씨는 “병원에서는 더 치료할 게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는데, 집에선 뭘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유 수녀는 “호스피스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면서 “지금처럼 호스피스 의료기관이 대도시에 집중된 상황에선 혜택을 못 받는 이들이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지역사회 호스피스 모델’은

A씨처럼 가정에서 호스피스를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지역에 호스피스 의료기관이 없거나 집에서 돌봐줄 가족이 없는 이들이다. 대안은 없을까. 부산광역시 호스피스완화케어센터(센터장 김숙남)에서는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환자들이 인간답게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보건소 중심의 공공형 호스피스를 통해서다.

김숙남 센터장은 “보건소에서 파악하고 있는 저소득층이나 홀몸노인 중 암을 앓고 있는 가정에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를 파견한다”며 “지역 기반의 방문 호스피스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시내 16개 보건소에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를 파견해 취약계층을 우선으로 돌보는 것이다.

부산 호스피스완화케어센터가 시행하는 보건소 중심의 공공형 호스피스는 세 가지 측면에서 차별점을 두고 있다. 첫째, 보건소를 중심으로 하다 보니 자연스레 지역사회 중심으로 이뤄진다. 김 센터장은 “보건소는 지역적인 편중이 없고, 지역 주민들이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이라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정 지역에 몰려 있지 않기 때문에 돌봄이 필요한 환자들을 촘촘하게 보살필 수 있다.

둘째, 사회적 약자를 먼저 배려한다.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돌봐줄 가족이 없는 환자들을 우선적으로 챙긴다. 호스피스 간호사들은 환자 가정을 방문하면서 병원에 혼자 가기 힘든 환자는 병원에 데려다 주고, 약은 잘 챙겨 먹는지 당장 생계에는 문제가 없는지를 지속해서 살핀다. 먹고 사는 문제부터 고통을 줄이는 방법, 죽음을 받아들이는 문제까지 전방위적인 돌봄을 제공한다.

셋째, 말기 암 환자로 국한된 호스피스 돌봄 대상자의 폭을 더 넓혔다. 초기 암환자들도 돌보는 것이다. 환자 상태가 악화하면 병원에 입원하도록 하고, 다시 좋아지면 집에 돌아올 수 있도록 환자 한 명 한 명을 돌볼 수 있도록 했다. 죽음이 너무 임박해서 호스피스 병동을 찾을 경우엔, 호스피스 돌봄을 충분히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지방자치단체가 가정 호스피스 사업을 지원하는 사례도 있다. 대전광역시는 올해부터 충남대학교병원에 가정 호스피스 전문 인력을 보조하고 있다. 덕분에 충남대병원은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 2명과 사회복지사 1명을 충원했다. 병원이 가정 호스피스에 예산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 시에서 이를 지원한 것. 자치단체 예산으로 가정 호스피스 사업을 지원한 것은 대전시가 최초다. 대전광역시 보건정책과 박미정 주무관은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많은데, 병원에서는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 가정 호스피스에 손을 못 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병원에 호스피스 전문가와 사회복지사 비용을 지원하는 방법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취재를 마치며

호스피스 취재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방문한 곳은 병원이다. 어쩌면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은지 취재를 갈 때마다 놀라곤 했다. 팔이나 다리 하나가 아픈 정도가 아니라,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환자들이 이렇게 많다는 게 놀라웠다.

호스피스 병동에 오기까지 환자들은 여러 병원을 거친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이 운영하는 병원, 종양내과가 가장 유명한 병원, 말기 암 환자가 기적적으로 치유된 병원…. 환자들은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각종 검사와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이들이 호스피스 병동에 와서 후회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어떻게 해야 살 수 있는지만 고민했지, 어떻게 죽을 것인지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정 호스피스 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항암 치료를 받던 병원에서 ‘집에 돌아가라’는 말을 들은 환자는 마치 그것이 사형 선고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병을 치료하지 않는 것은 마치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죽음을 두려워할까. 취재하면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대한민국에서는 2분마다 1명씩 세상을 떠난다. 이처럼 죽음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 누구나 겪게 되는 죽음, 그리고 당연히 슬플 수밖에 없는 죽음이지만 평소에 미리 생각하고 준비해 둔다면, 죽음도 ‘아름다운 이별’이 될 수 있다. 죽음이 어느 날 닥치는 ‘재앙’이 될지, 아니면 삶을 완성하는 ‘선물’이 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7월 30일, 김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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