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일 (금)
(백) 모든 성인 대축일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강론자료

2018-06-24.....세례자요한의 탄생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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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8-06-23 ㅣ No.2242

세례자 요한탄생대축일 [0624]

이사야 49,1-6           사도 13,22-26         루카 1,57-66.80

2018. 6. 24. (주일),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진 일

오늘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2000년이 넘는 시간의 이전에 태어나신 분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로 계산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예수님보다 대략 6개월쯤 먼저 태어난 분으로 말하고 624일로 기념날짜를 정하지만, 그 날짜가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나 제가 사는 이 시대의 사람들이 중요한 가치로 인정하는 방법, 다시 말해서 세상에 흔적을 남기는 것을 기준으로 말하면, 오늘 기념하는 세례자 요한은 세상의 삶에는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의 후손을 이은 자녀도 없었고, 세상에서 중요한 것으로 생각할 돈을 모은 일도 없었으며, 세상에서 인정하는 높은 직책을 얻은 통치자도 아니었고, 당시에 살던 사람들이 놀랄 법한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일보다는 세상의 통치자와 사람들을 향하여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살아야 한다고 외쳤다는 죄목으로 천수(天壽)도 누리지 못하고 일찍 세상의 삶을 마친 분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신앙에서는 그를 가리켜 하느님의 뜻에 맞는 놀라운 일을 하신 성인(聖人)이라고 공경합니다. 세상의 일과는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우리는 어떻게 해석하겠습니까?

 

질문했으니, 대답을 찾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만나는 일을 사람의 논리로 가치를 확인하거나 과거의 사람들로부터 만들어진 지식을 기초로 하여 특별한 사람이 남긴 삶을 해석해도 그 의미가 완벽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봐야 할 초점을 정확히 기억하고, 볼 것을 잘 대해야 진실과 사실의 차이가 작을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을 성인이라 부르고, 세례자 요한을 성인이라 대할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이 한 행동을 전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오늘은 그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일이니, 세례자 요한이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한 일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태어나고 여드레째가 되어 할례식을 하는 날, 이름을 짓는 일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예수님보다 먼저 태어난 선구자, 요한은 이름이 지어지는 일도 하느님의 뜻이 적용된 일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온 내용입니다.

 

요한은 그의 아버지, 즈카르야가 성소에서 사제직무를 수행하고 있을 때, 천사의 발현으로 탄생이 예고되었는데, 아버지는 천사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아서 벙어리가 됩니다. 그리고 어머니 엘리사벳을 통하여 요한이 세상에 태어난 뒤, 아버지인 즈카르야가 부인인 엘리사벳이 먼저 말한 대로,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인정한 다음에 벙어리로 살았던 삶이 해결되는 기적을 체험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온 내용은 이 내용까지이지만, 우리는 이 일을 통해서 무엇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이사야예언서에 나오는 하느님의 종이 말하는 내용을 독서로 들었습니다만, 사람이 세상에서 이루려고 계획하는 개인적인 꿈은 누구에게나 큽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는 일은 다른 사람이나 다른 대상의 협조와 도움이 필요하지만, 사람은 그다지 여유를 두고 자신의 삶을 대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로 마음이 급하고, 실망하고, 때로는 하느님을 탓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진정으로 하느님은 내 삶에 어떤 계획을 세우셨을까 묻지도 않고, 대답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내가 알고, 내가 바라는 뜻이 실현되지 않으면 비관적으로 봅니다. 그런 사람이 삶의 자세를 바꿀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삶을 정확하게 본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오로사도의 복음선포에서 들은 얘기입니다만,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신발끈을 풀기에도 합당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도 세상의 삶을 통해서 요한이 보인 이러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그렇게 남다른 삶을 보이신 분이 바로 세례자 요한이기에, 우리 신앙에서는 주일인데도 그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로 기억합니다.

 

삶을 바라보는 자세에 따라, 신앙의 내용을 듣기만 하면, 하느님이 내게 무슨 일을 해주셨느냐고 고개를 가로젓고, 하느님을 인정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를 무시하는 삶이라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삶을 부정적으로 대하는 사람에게 신앙을 무슨 재주로 설명하겠습니까?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 우리는 그의 삶에서 무엇을 보고, 그가 남긴 삶에서 무엇을 따르겠습니까? 그 태도에 따라서 보는 일이 달라지고 대하는 내용이 달라지고 내 삶에 생기는 결과가 달라질 것입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이 탄생한 날로 기억하는 날, 우리의 삶에도 그분이 보이신 겸손한 모습이 실현되기를 청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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