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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발칸: 세르비아 정교회 수도원에 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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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의 빛과 그림자 속으로] 세르비아 정교회 수도원에 가다
지차(Zica) 수도원의 붉은색과 흰색은 강렬하고 순정해 보였다. 붉은색은 초기 교회 순교자들의 피를 상징하는 아토스 산 수도원의 전통에 따른 것으로, 바로 그 붉은 순교자들의 피 위에 그리스도교가 세워졌다.
세르비아의 작은 도시 크랄레보에서 하루를 묵은 ‘호텔 크리스털’은 아주 작았다. 한 가족으로 보이는 호텔 직원들은 얼굴 가득 진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번쩍번쩍 가방을 들어 옮기던 길쭉한 청년들도 그랬고, 현관에서 인사하던 젊은 처자도 그랬다.
소박하지만 마음으로 환대하는 듯한 그들의 자세에 너무도 부실한 아침식사조차 모두 용서가 될 정도였다. 크랄레보의 붉은 지붕 위로 일출이 참 좋은 아침이었다.
가을이 깊은 세르비아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이바르 강줄기를 따라 구불구불 좁은 골짜기가 이어지는 길에 노란 꽃이 피고 단풍이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불가리아 사람들에게 릴라 수도원이 그렇듯 세르비아인들에게 영화로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스투데니차 수도원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사바 성인의 아버지이자 네마냐 왕조(1168-1371년)를 연 스테판 네마냐는 자신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성당을 지어 성모님께 봉헌하고자 했다. 1196년 그가 왕좌를 떠나 아토스 산의 수도승이 된 뒤 부칸 왕자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성당을 짓고 대대로 네마냐 왕조의 왕들이 안치되었다. 말하자면 스투데니차 수도원은 세르비아의 종묘이자 엘 에스코리알(El Escorial), 그들의 거룩한 무덤이었다. 골리야 산자락 한적한 들판에 자리 잡은 수도원은 성벽처럼 투박하고 단순한 외벽과는 달리 무척 다정다감한 공간이었다. 지금은 ‘성모 성당’과 ‘왕의 성당’만 호젓하게 남아있지만 과거에는 13개의 성당이 있을 만큼 대단한 위용이다고 한다. 수도원에는 정교회 순례자들이 많이 보였다. 스카프를 두르고 긴 치마에 기다란 외투를 걸친 젊은 처자들과 지긋한 연배의 아주머니들이 초를 사들고 귀가하고 있었다.
역시 왕의 묘지로 지어진 소포차니 수도원 성당 입구에는 나무로 만든 러시아 정교회 십자가가 오후의 빛을 받고 있었다. 1689년 오스만 투르크군의 방화로 수도원이 불탔다. 수도원은 서서히 폐허가 되어갔다. 우로슈 1세가 부모와 함께 안식을 취하던 지하 납골당은 파묻혔고, 돔은 무너져 내렸다. 돌무더기와 흙으로 덮여있던 수도원은 20세기가 되어서야 복원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성당 안 프레스코화 사진을 단 한 장도 찍지 못했다. 완전히 작전 실패였다. 인적 없는 수도원의 풍경을 찍은 다음 성당 안으로 들어가 찍으려고 했는데, 내가 들어서는 순간 수도승이 나타나 원천 봉쇄를 하였다. 전혀 여지가 없었다.
보는 순간 깊이 있는 색과 서늘한 눈빛에 금세 매료되고만 판토크라토르, 그 예수님도 꼭 담고 싶었는데, 정말 낭패였다. 하지만 낙엽지는 수도원 뒤뜰에서 가을의 충만함을 보았고, 폐허로부터 또다시 시작되고 있는 어떤 시간들의 흔적을 보았고, 돌담 아래 어여쁘게 피어난 장미꽃을 보았으니 다행이다(고 애써 생각했다). 0 2,430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