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강론자료

사순 3 주간 화요일.....2006.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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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6-03-21 ㅣ No.690

 

사순 3 주간 화요일           

              다니엘 3,25.34-43  마태 18,21-35

      2006. 3. 21. 무악재

주제 :

신앙인은 저마다 기도 합니다.  이 자리에서 기도가 무엇인지 이론으로 설명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이론으로 설명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 이야기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저마다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아무도 말릴 수 없지만, 우리는 오늘 다니엘 예언서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께 하소연하는 아자르야의 기도를 들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기도의 형태가 그런 자세이어야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기도’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내게 필요한 것을 하느님께 말씀드리고, 내가 현실에서 겪는 어려움을 이겨내게 해주시라고 청하는 것으로 알아듣기 쉽습니다.  그렇게라도 알아들어서 하느님 앞에 좀 더 자주 나올 수 있거나, 그 하느님을 우리가 삶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면 아주 훌륭한 모습이라고 할 것입니다.  기도의 처음 시작은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자르야는 자기 자신의 삶, 자기 민족의 삶을 돌이켜보고 하느님께서 그 옛날에 하셨다고 전해지는 약속을 하느님께서 자신과 민족에게 실현해주시기를 청합니다.  하느님이 사람의 소리를 듣지 못해서 실현해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좀 더 큰소리로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도록 소리를 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예수님은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기도하라’고 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를 하겠다고 한다면, 무슨 말로 내 삶을 표현할까 하고 생각하기 전에 하느님 앞에 합당한 자세가 무엇인지를 깨달아 그대로 실천하는 일부터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에서 들은 기도하는 사람의 합당한 조건 한 가지는 바로 용서에 대한 것입니다.  용서는 죽기보다 싫고 힘든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이 용서를 우리가 어떻게 알아듣고 어떤 모양으로 실천하는지에 따라 우리 삶의 모습은 달라지는 법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거나 따로 구별하면서 내 삶에서 하느님의 용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일 것이고 유치한 사람일 것입니다.  내가 항상 용서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용서는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알아들을 수 있다면 그 삶의 자세가 조금 더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경고의 말이 필요하다면, 복음말씀의 비유에 나오는 어리석은 종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될 것입니다.  자신이 용서받은 일의 1/600,000 만큼도 실천하지 않아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게 했던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이 우리 삶에는 있지 않은지 돌이켜야 할 일입니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큰 실수가 아니라, 아주 작은 소홀함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일입니다.  실수를 최대한 줄이는 삶을 만들 수 있도록 힘써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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