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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필사본 천주가사집 출현 배경과 의의: 우리 전통 가락에 교리 접목한 한국의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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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02 ㅣ No.83

[한국 근현대 100년 속의 가톨릭 교회] (7) 필사본 천주가사집 출현 배경과 의의


우리 전통 가락에 교리 접목한 ’한국의 시편’

 

 

이 글은 천주가사 연장선상으로 필사본 천주가사집의 출현 배경에 대한 문화사적 접근을 통해 19세기 후반 한국 가톨릭교회와 우리 사회와의 관련성을 고찰하고 그 의의를 규명한다.

 

17세기 이후 서구적인 것을 표(表象)하되 어설픈 교리로 받아들여졌던 한국 가톨릭이 지식인들에 의해 수용된 지 200년이 넘었다. 한국 가톨릭에는 그동안 연도나 천주가사, 옹기문양 등 외적형태나 가톨릭내 민속과 관련한 전통종교 현상 등과 결합한 모습이 나타났다. 이러한 요소들은 보편교회의 문맥과 더불어 우리 문화적 시각에서 해석을 필요로 한다.

 

지금까지 파악된 필사본 천주가사집은 총 53종이다. 이 중 객관적 검증을 통해 필사시기를 알 수 있는 것이 33종으로 그 중 19세기 후반부터 1910년대까지 제작된 것이 24종이다. 여기서 필사본 천주가사집이 19세기 후반부터 집중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1920년대를 기점으로 천주가사집이 감소하는데, 천주가사가 우리 가락 속에 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 가락은 1920년대 간행된 ’죠선어 성가집’의 영향으로, 그리고 교리교육 기능은 ’천주교요리문답’ 등 각종 교리서의 간행으로 대체되었음을 의미한다.

 

필사본 수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국민문학의 위상이 분명한 ’심청전’의 이본(異本)이 130여종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교회에서 천주가사 수용이 그만큼 활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사본 천주가사집 출현은 19세기 말 이후 20세기 초에 집중되어 우리 사회의 문화적 변화와 이와 관련된 교회의 내적 필요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따라서 그 배경에 대한 고찰은 문학을 포함한 문화사적 접근과 교회사적 접근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천주가사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구성진 노래가 있었기 때문에 출현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에 시편(詩篇)이 있듯이 우리네 서민들에게도 우리만의 노래가 있었다. 이를 국문학에서는 ’가사’라고 부른다. 이 가사는 멀리는 고려말부터 시작되었으며 천주교가 유입된 조선 후기에는 일반민중이 생활 현장에서 부르는 노래로 발전하였다.

 

가사는 4.4조 4음보로 줄 수에 제한이 없는 열린문학으로서의 개방적 위상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천주교 내용을 쉽게 흡수할 수 있었다. 따라서 생활문학으로서의 가사는 천주가사집 출현의 기저로 작용한다.

 

한편 19세기 문화적 상황은 천주가사집 출현을 보편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19세기는 민중들에게는 매우 힘든 시기였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기회의 시기였다. 전시대에 비해 농업 생산력 증가, 도시 상공업 발달, 청·일본 등과의 국제무역 성행 등으로 권력 핵심부 양반계층과 일부 평민계층은 경제적 풍요를 누리게 된다.

 

이러한 경제적 풍요는 곧 문화적 욕구로 전환되어 판소리 등 민속예술이 급격하게 발달하게 되었다. 여기에 기술향상으로 종이 공급이 원활하게 되자 필사본 생산이 촉진되어 ’가곡원류’ 등의 시가집이나 상업적 방각본이 등장하였다. 필사본 천주가사집 출현도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간접적 배경 외에 천주가사집 출현에 보다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교회 상황이다. 즉 신교 자유를 맞이하여 병인군란으로 피폐된 교회를 재건하는데 교리교육 도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었고, 교회 현실을 감안할 때 가장 적합한 양식이 ’천주가사’였다.

 

1866년부터 10여년간이나 지속된 병인군난으로 한국교회는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신자들은 죽거나 박해를 피해 여기저기 흩어졌고, 선교사들 역시 순교하거나 중국으로 피신한 상태였다. 교회재건운동이 시작된 것은 1876년 제6대 교구장 리델(Ridel)신부, 블랑(Blanc)과 드게트(Deguette) 신부 등이 입국하면서부터이다. 이들은 피폐된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서울에 선교본부를 설치하고 인쇄소, 주교관 건립, 토지매입 등 재건작업을 적극적으로 해나갔다. 그 결과 1882년에 1만2000명이던 신자가 1900년에는 4만2000명으로 증가하였다.

 

이 시기에 선교사들의 지도 아래 일선 선교현장에서 직접 활동한 사람은 회장과 복사들이었다. 선교사들도 이들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블랑 신부 등은 1876년 입국 직후 ’회장(會長, Catechista)제도’를 부활시켰으며 1880년대 ’회장규조(會長規條)’라는 책을 간행하게 된다.

 

각 회장들이 일선 현장에서 천주가사를 통해 새로운 입교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쳤다. ’삼세대의’나 ’옥중제성’의 작가가 회장과 복사를 역임했다는 사실, ’김문규본’, ’언양성당본’, ’남마두본’, ’오극렬본’ 등에 나타나는 필사자의 기록, 그리고 ’목항 천주당 서실 등’이라는 기록이 있는 ’고로가본’을 통해 볼 때 선교현장에서 필요에 따라 조직적으로 필사되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천주가사나 필사본 천주가사집의 존재는 천주교 신앙을 수용하는데 우리의 문화적 토양이 바탕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천주가사는 그 명칭에서 보듯이 ’천주’라는 새로운 서구사상과 ’가사’라는 전통적 양식의 융합을 나타내며, 이는 서구적 내용의 한국적 형식화라는 입장에서 정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주가사집의 출현은 세 가직 측면에서 문화사적 의의를 정리할 수 있다. 천주가사는 근대문학이나 근대음악을 형성시키는 가교역할을 하였으며, 필사본 천주가사집은 근대로의 전환에서 작품 재생산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외래문화를 한국적 양식 속에 수용함으로써 우리 문화담당층의 주체적 역량을 담아내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서구지향적 현실을 넘어 우리 문화사 속에서 해석됨으로써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한편 교회 내적으로 천주가사는 박해를 견디는 자기강화 방법이자 신자들 사이의 결집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존재하였다. 신자들은 산속을 해매며 이 노래를 불렀으며, 때로는 옥중에서도 천주가사를 통해 신심을 강화할 수 있어 한국 가톨릭 교회가 수많은 박해를 무릅쓰고 성장하는데 큰 디딤돌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천주가사와 필사본 천주가사집은 활발한 출판활동에도 불구하고 간행이 이뤄지지 않았으며, 한국 교회사를 언급하는 자리에서 그렇게 비중있게 다루어지지도 않았다. 이는 자국문화에 대한 우월감으로 한국문화에 대해 비판적 시각과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파리외방전교회를 비롯한 교회지도층의 무관심이나, 19세기 천주교 해외선교운동의 시대적 한계성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천주교를 통해 서구를 보았던 우리 인식에도 문제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필사본 천주가사집이 50여종이나 전승될 정도로 신자들 사이에 창작되고 전파되었다는 점에서 천주가사집 출현의 교회사적 의의는 보다 극명하게 나타난다. 필사본 천주가사집은 수많은 한역 서학서의 내용을 내면화시키고 토착화하여 우리 언어로 표현된 최초의 교리서로서의 의의를 지니기 때문이다.

 

천주가사는 우리민족이 그리스도 신앙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동시에 가톨릭 교리로 대표되는 서구사상을 담고 있다는 특성을 지닌다. 따라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세계교회의 보편성보다 지역 특성에 맞는 지역신학의 정립이 허용된 입장에서 천주가사야말로 한국인에 알맞은 ’토착화’ 신학을 여는 열쇠가 될만한 충분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한국 문화적 상황에서 천주가사가 존재했다는 것 자체가 그렇고, 한국인 정서가 담겨있는 한국어로 된 교리서이기에 한국인이자 가톨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그 안에서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신문, 2003년 9월 7일, 김영수(안양대 겸임교수, 국문학, 가톨릭대 인간학연구소 공동연구원),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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