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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박해시대의 어린이 세례 - 어린 영혼을 위한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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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10-07 ㅣ No.140

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 박해시대의 어린이 세례

 

어린 영혼을 위한 세례

 

 

어린이는 엄연히 영혼을 가진 사람이며, 어른의 스승으로서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갓 태어난 어린이는 선 그 자체이기 때문에 죄를 지을 의사나 능력이 없는 존재이다. 만일 이 어린이가 죽을 경우 그 영혼은 어디로 가겠는가? 자신의 의지로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지옥에 간다는 것은 차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에서 무죄한 어린 영혼들은 림보(limbo)에 간다는 믿음이 생겼다. 림보는 천당의 즐거움이나 지옥의 고통이 없는 또 다른 내세의 ‘장소’였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어린 영혼들이 죽을 경우, 하느님과 친교가 없는 림보에 머물게 되는 안타까운 정황을 피하고자 어린이에게도 세례를 주는 관행이 정착되어 갔다.

 

 

어린 영혼과 림보

 

성경에는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세례를 받지 않은 어린이가 죽을 경우에도 그 영혼이 완전한 구원의 단계에 이르지 못하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해석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죄한 어린 영혼들을 영원한 고통의 ‘장소’인 지옥으로 내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 신약시대 교회에서는 어린 영혼들이 갈 장소로 림보를 제시하게 되었다.

 

림보는 고성소(古聖所)로 번역된다. 이곳은 천국이나 연옥도 지옥도 아닌 제4의 장소로 설명되어 왔다. 여기에는 그리스도가 강생하여 세상을 구할 때까지 구약시대의 성조들이 구세주를 기다리던 곳이었다. 또한 신약시대 교회에서는 이곳을 이성이 열리지 않은 상태의 어린이들이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을 경우에 그 영혼이 머무는 곳으로 인식했다.

 

초기 교회 이래, 세례를 받지 않고 죽은 어린이의 영혼이 갈 수 있는 곳에 관한 문제는 어린이 세례의 적절성에 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세례를 받지 않고 죽은 어린 영혼이라 하더라도 천국의 구원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논쟁을 통해서 교회는 무죄한 어린이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도 세례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교회는 죽을 위험에 처한 어린이들을 받아들여 세례를 주었다.

 

한편 19세기 말엽 이래 교회는 세계 도처에서 도전을 받았다. 동양사회에 전파된 그리스도교회는 새로운 신도들을 확보해 갔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교회를 침략의 앞잡이로 생각하였다. 당시 교회는 어린 영혼의 구제를 위해 죽을 위험에 처한 어린이들을 찾아내어 교회에 받아들이고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세례를 베풀었다.

 

이러한 현상을 반교회적 인물들이 묵과하지 않았다. 그들은 교회가 어린이들을 유인하여 죽인 뒤 그 눈알을 빼 사진 현상약을 만든다는 악의적 유언비어를 만들어 전파시켰다. 개항 직후인 1880년대 후반, 우리나라 천주교회도 이 유언비어 때문에 고통을 당하였다.

 

어린이의 눈동자로 사진 현상약을 만든다는 모략전술은 1920년대 이후 중국에서 전개된 반종교 운동 과정에서도 여전히 맹위를 떨쳤다. 중국의 공산주의자들은 이 주장을 믿고 확산시켜 나갔다. 식민지시대 조선의 독립운동가와 인터뷰를 기초로 하여 저술된 대표적 기록으로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이 있다. 이 책자의 주인공은 실존인물로서 엘리트 공산주의자였던 김산(金山; 張志洛)이었다. 그도 선교사들의 어린이 약취와 관련된 ‘주장’을 사실로 인정할 정도였으니, 그 유언비어의 파장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박해시대의 유아세례

 

교회창설 직후 신자들이 낳은 어린이에 대한 세례는 관행적으로 집행되었다. 당시 읽히던 교리서는 어린이의 세례를 당연한 것으로 설명하였다. 그리고 초기 교회의 “성교요리문답”에서는 명오가 열리지 못한 아이는 외교인의 자식이라도 죽을 위험이 있거든 다 마땅히 힘써 세를 주라.”고 규정하였다.

 

어린이의 영혼을 구하려는 노력은 프랑스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한 뒤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선교사들은 무죄한 어린 영혼이 림보에 가는 것을 방치할 수 없었다. 그들은 죽을 위험에 처한 외교인의 어린이에게까지 세례를 주어 그 영혼을 구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어린이의 영혼도 어른의 영혼과 동일한 존재로 인식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1838년 프랑스 선교사 모방 신부가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의 장상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조선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죽을 위험에 있는 외교인 어린이에게 세를 주는 운동도 발전하였다. 교우들과 특히 회장들에게 이 사업의 중요성을 깨우쳐주었다. 처음 8개월 동안에 이렇게 세를 받은 외교인 어린이 192명 중에서 154명이 벌써 천국으로 올라갔다.”고 썼다.

 

조선에 입국한 프랑스 선교사들은 외교인 어린이의 영혼을 구하는 일을 조직적으로 강화시켜 나가고자 했다. 선교사들의 본국인 프랑스에서는 이미 어린이의 영혼을 구하기 위한 신심단체들이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었다. 선교사 메스트르 신부는 1854년 이 조직과 연계를 갖고 조선에서 영해회 운동을 시작했다. 영해는 어린이를 뜻하는 한자말이다. 이 영해회는 죽을 위험에 놓인 모든 어린이에게 대세를 주는 일과 외교인이 버린 아이들을 거두어 키우는 일을 목적으로 삼았다.

 

조선교구의 주교들은 이 사업을 장려했다. 베르뇌 주교가 1864년경에 작성한 사목서한인 ‘환난을 위로하는 말이라’에 보면, “외교인 영해에게 위험한 병이 있거든 빨리 타당히 대세를 주어 그 영혼을 구할지니라.”고 되어있다. 또한 1870년대 후반기에 지어진 “회장규조”에서는 교회의 회장이 해야 할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로 외교인 영아에 대한 대세를 들었다. 그리고 회장들은 공소를 방문한 신부에게 대세받고 죽은 외교인 어린이에 관한 통계를 보고하도록 명시하였다.

 

그런데 1849년 교세통계를 보면 그해 영세한 어른의 숫자가 374명이었던 데 반해 외교인 자녀로 대세를 받은 숫자는 686명에 이르렀다. 1855년 통계에서도 어른 영세자는 516명, 외교인 어린이 대세자는 1,194명이었다. 교회 통계표에서 외교인 어린이 대세를 별도 항목으로 설정할 만큼, 당시 교회는 이 일에 정성을 기울였다. 사실 외교인 어린이 대세자는 어른 영세자를 곧장 앞지르고 있었다.

 

그런데 1838년 당시 죽을 위험 중에 세례를 받은 외교인 어린이 가운데 80%가 세상을 떠났다. 1849년에 대세를 받은 어린이 대부분도 세례를 받은 직후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외교인 어린이 대세자의 사망률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이 높은 사망률 때문에 악의적인 유언비어가 한때나마 난무했다고 생각된다.

 

 

남은 말

 

외교인 어린이 대세 통계는 1960년대 초까지도 계속 집계되었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에는 이러한 통계를 별도로 조사하지 않는다. 또한 2007년 5월 교회 신문은,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산하 자문기구인 국제신학위원회(ITC)가 ‘세례 받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의 구원의 희망’이라는 제목의 문헌을 발표해서 ‘림보’에 관한 전통적 신학이론을 수정해서 발표했음을 보도했다.

 

국제신학위원회는 무죄한 어린이들이 죽어서 림보가 아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의 신학적 근거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박해시대 신자들은 당시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림보에 갈 외교인 어린이의 영혼까지도 구원하고자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영혼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강화시켰고, 어린이의 인격성에 대한 인식을 키울 수 있었다. 외교인 어린이에 대한 대세가 가진 역사적 의미는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조광 이냐시오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로 “한국 천주교회사1, 2”, “조선 후기 천주교회사 연구”, “신유박해 자료집” 등 저술활동을 통하여 한국교회사 연구에 힘쓰고 있다.

 

[경향잡지, 2007년 7월호, 조광 이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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