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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성모 공경 - 성모 마리아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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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10-07 ㅣ No.136

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 성모 공경

 

성모 마리아를 위한 변명

 

 

우리나라에 천주교 신앙의 자유가 합법적으로 보장된 때는 1895년 전후였다. 오랫동안 신앙의 자유를 거부당했던 천주교는 교회가 창설된 지 110여 년이 지나서야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천주교 신앙의 자유는 천주교 신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사상의 자유를 가져다준 중요한 사건이었다. 곧 천주교 신앙의 자유를 계기로 하여 전통종교인 불교도 장기간에 걸친 차별 정책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새롭게 전파되던 개신교의 경우에도 본격적인 선교의 자유를 확보하게 되었다.

 

가톨릭의 성모신심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가 제기된 것은 1801년의 박해가 끝날 무렵에 발표된 ‘척사윤음’ 통해서였다. 이 윤음에서는 천주교 신앙이 천주와 예수에 대한 신앙 이외에도 성모나 세례 ? 견진 등 여러 명목으로 백성들을 현혹시킨다고 규정한 바 있다. 이는 분명 전통적 집권자들이 당시 교회에서 성행하던 성모신심을 이상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성모 신심에 대한 공격

 

개항기에 이르러 개신교 신앙이 본격적으로 전파되면서 천주교와 경쟁관계에 들어섰다. 이때 그들은 천주교가 성모를 공경하는 사실을 강하게 비난했고, 이를 비롯하여 종교개혁 이래 제시된 각종 교리적 논쟁들을 일시에 제기했다. 예를 들면 1899년 개신교 신문 “대한크리스도인회보”에서 감리교의 지도자 노병선은 “천주교는 예수교와 다른 것이 예수 씨 외에 그 어머니 마리아를 더 믿는다.”고 단정하고 이를 공격하였다.

 

1908년 최병헌 목사는 역술한 “예수천주량교변론”(耶蘇天主兩敎辨論)을 통해서 “마리아는 사람이요 예수는 주이신데, 주를 공경함은 가하고 사람을 공경함은 불가하다.”고 하면서 천주교의 성모 공경을 배격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천주교가 “예수의 형상과 마리아의 우상에 절하는 행위”를 배격하면서, 천주교의 성인 공경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불교와 같은 범신론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개항기 당시 개신교에서는 이처럼 천주교의 마리아 공경을 일종의 우상숭배로 해석했다. 개신교의 이와 같은 해석 경향은 유럽에서 종교개혁 직후부터 제시된 바 있다. 개항기 조선에서도 성모 마리아 공경에 대한 논쟁이 제기되었다.

 

이 논쟁을 살펴보면, 당시의 개신교에서는 천주교를 일종의 ‘성모교’로 주장하려 한 듯하다. 반면에 개신교에서는 자신의 종교를 예수 그리스도의 한자 명칭에 따라 기독교 또는 예수교라고 분명히 지칭하면서 천주교와 개신교의 차이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개항기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에 전개된 이러한 논쟁은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에서 유래된 종교개혁 이래의 해묵은 논쟁을 재현한 것이다. 이 교리논쟁은 조선후기 이래 우리 문화가 드러내던 이념 지향적이거나 사변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강도 높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연구자들은 이러한 논쟁들이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심화되었다고 본다. 오늘의 교회에서는 개신교와 천주교 사이에 대립이나 비방보다는, 상호 존중과 협조를 미덕으로 삼으면서 서로 다름보다는 같음을 밝히려 하며, 교회의 재일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있다.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방법

 

우리나라 교회에서 성모 마리아에 대한 공경의 필요성과 정당성은 교회창설 직후부터 줄곧 제시되었다. 곧 교회창설 초창기에 한글로 번역된 “성경직해”에서는 마리아가 천주께서 강생하여 사람이 되신 예수를 낳은 모친임을 강조한다.

 

성모 공경은 박해시대가 끝나갈 무렵인 1884년에 간행된 “성교백문답”에서도 계속해서 나타난다. 이 책에서는 마리아라는 이름이 ‘바다의 별’이란 뜻임을 밝혀주면서, 이는 성모 마리아가 사람의 길을 인도하여 하늘에 오르게 하심을 의미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또한 성모 마리아는 “모든 사람의 대주보(大主保)이시니, 가히 높이고 가히 사랑하여 마땅히 항상 빌어 구할지니라.”라고 말했다.

 

그런데 조선교구의 뮈텔 주교는 개신교가 제기한 이 교리논쟁에 대항하고자 1907년 “예수진교사패”를 간행했다. 이 책에서는 마리아와 모든 성인공경에 대한 개신교의 비판 내용을 먼저 제시하면서 이에 대해 답을 한다. 답변방식은 성모와 성인공경이 가진 합리성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성경의 근거를 밝히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먼저 이 책에서는 “천주나 성모 마리아 그리고 성인을 공경하는 예가 외견으로는 서로 같은 듯하지만 실상은 분명히 다르다.”는 말로 성모 공경의 성격을 설명한다.

 

곧 공경에는 세 등급이 있으며, 이는 서로 혼동되거나 섞일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천주께서는 천지와 천신과 사람을 창조하신 분이고, 만물의 대주재자(大主宰者)이시는 이에 대해서는 ‘흠숭의 예’[欽崇之禮]를 드린다고 했다. 이어서 두 번째 단계의 공경은 ‘상경의 예’[上敬之禮]이니 성모 마리아께만 드린다고 했다. 마리아는 진실로 천주의 성모가 되시어 그 지위가 천주 아래요, 모든 성인 위에 계시기 때문에 ‘상경지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또한 세 번째로는 ‘공경의 예’[恭敬之禮]로서 이는 ‘천주의 충신 되심을 공경하는 예’로 규정했다.

 

물론 이 책에서는 성인이나 성모에게 ‘흠숭의 예’를 드려서는 안 된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천주와 관련된 인물에 대한 공경의 예는 천주의 성의에 합당한 일이라고 말하면서, “비컨대 임금을 공경하는 자는 또한 반드시 그 태후와 그 신하를 공경하느니, 만일 임금만 공경하고 그 태후와 대신을 공경하지 아니하면 실로 임금도 공경치 아니함이니라.”고 했다. 그리고 신도들은 ‘천주의 충신에 대한 공경’이 ‘천주의 모친인 성모에 대한 공경’과는 차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모 마리아와 성인에 대한 공경의 정당성은 이와 같은 논리적 귀결로만 확보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 “예수진교사패”에서는 신약성경을 중심으로 성모 마리아 공경에 관한 성경의 근거자료를 제시했다. 여기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카나촌 혼인잔치에서 성모 마리아의 부탁을 들어 첫기적을 행한 일을 비롯하여, 천주교에서 성모 공경의 정당성을 설명하려고 활용하는 성경구절을 모아서 제공하였다.

 

또한 성모 마리아의 상을 비롯한 성상 공경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설명을 한다. 이는 천주께서 강생구속하심을 기억하는 거룩한 모상일 뿐이며, 사람들이 기억할 바는 그 외형이 아니며, 그 모상이 상징하는 바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실천해야 할 삶을 기억하도록 해준다고 설명했다. 성모 마리아의 성화상은 이러한 의미로 이해되었고, 그것은 신자들에게 널리 전파되어 갔다.

 

 

남은 말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과 공경은 박해시대 신자들이 하느님과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해한 결과이기도 했다. 신자들은 모성애가 인간 본성임을 확인했고, 인간의 경험을 적용하여 성모 마리아께 자신의 소망을 하느님인 아들 예수께 대신 전달해 주기를 빌었다. 그러나 개항기 개신교의 선교와 더불어 성모 공경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자, 교회는 이에 대한 이성적 변론과 성경의 근거를 확인하여 제시하였다. 그리고 성모신심은 한 편의 시와도 같이 아름다운 신심임을 거듭 확인했다.

 

좋은 시를 쓰는 시인도 평시에 시로써 말하지 않고 일반적인 말을 한다. 이렇듯 성모 신심은 교회의 특별한 신심이었지, 교회 신앙의 가장 중심 위치에 놓을 수 있는 신앙이 아님을 그들은 알았다. 그 신앙의 중심은 사람으로 강생하시고 수난한 후 부활 승천하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 그들은 이를 전제하면서 성모 마리아를 위한 변명을 시도했다.

 

* 조광 이냐시오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로 “한국 천주교회사1, 2”, “조선 후기 천주교회사 연구”, “신유박해 자료집” 등 저술활동을 통하여 한국교회사 연구에 힘쓰고 있다.

 

[경향잡지, 2007년 5월호, 조광 이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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