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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박해시대 교우들의 천당 생각 - 사회적 불평들을 극복한 새로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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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10-19 ㅣ No.175

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 박해시대 교우들의 천당 생각

 

사회적 불평들을 극복한 새로운 세상

 

 

박해시대 교회에서는 천당 또는 천국에 관한 전통 교리를 가르쳤다. 이 때문에 조선의 식자들은 천주교 신앙을 불교와 비슷하게 생각했다. 물론 당시 교회에서는 천당이나 천국으로 부르던 ‘하느님의 나라’를 종말론적 입장에서 세상 종말의 심판과 연결하여 회개를 강조하였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에 이르러서 천당 곧 ‘하느님의 나라’는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로마 14,17)이 충만한 나라로서, 이미 와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께서 통치하는 나라로 설명된다. 박해시대 신자들은 이러한 천당을 어떻게 알았을까?

 

 

천당에 대한 생각

 

박해시대 때 간행된 천주교 교리서에는 상선벌악의 교리를 설명하면서 천당을 주로 최후심판과 관련하여 제시한다. 천당은 착한 사람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미래세계의 최종 목적지였다. 그래서 그들은 천당을 ‘본향’(本鄕) 곧 ‘본래의 고향’으로 말했고, 기쁨이 가득한 곳 즉 ‘낙토’(樂土)라 했다. 이 점은 19세기 중엽에 신자들이 부르던 대표적 천주가사인 ‘사향가’(思鄕歌)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사향가의 시작 부분에서는, “어화 벗님네야, 우리 낙토 찾아가세 / 동서남북 사해팔방, 어느 것이 낙토런고 / 지당으로 가자하니, 아담 원조 내쳐 있고 / 복지로 가자하니, 모세 성인 못 들었고 / 이러한 풍진세계, 평안한 곳 아니로다 / … / 아마도 우리 낙토, 천당밖에 다시없네.”라고 노래한다. 여기에서 보는 것처럼 천당은 하느님의 영광이 가득 찬 새로운 나라였다.

 

당시 신자들이 가졌던 천당론은 하느님의 존재와 불사불멸하는 영혼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사람이 죽은 직후 받게 되는 사(私)심판과, 상선벌악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는 공(公)심판 즉 최후심판의 교리와 관계되었다. 당시 천주교 신자가 믿는 하느님은 무한한 전능을 가진 분이었다. 그 하느님께선 사람들의 상선벌악을 지극히 공정하게 판별해서, 착한 이에게는 천당 영복을 상으로 내리시는 분이다.

 

신자들은 천당을 본향이라고 생각했다. 이 본향에서 누리게 될 복은 천하의 모든 복을 다 받는다 하더라도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천당의 복을 영원히 누리게 될 영복(永福)이며 진복(眞福)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천주십계를 실천하면서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면 결과로 천당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성모 따라 천당이요, 성자 따라 천당이라 / 무궁무진 진복진락(眞福眞樂), 세상사람 주신 게라 / 육신을 떠난 영혼, 이게 아니 본향이며 / 사망사욕 멀었으니, 이게 아니 진복인가 / 훼방 냉담 누가 하리, 이게 아니 본향이며 / 인의도덕 양식삼아, 이게 아니 본향인가 / 본향 찾아 진복받기, 기쁠시고 좋을시고”(피악수선가)라고 노래하면서 천당을 기렸다.

 

천당에 대한 믿음은 그들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였다. 천당에 들려면 천주십계를 잘 지키고, ‘애긍시사’와 같은 선행을 해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고신극기’를 통해서 자신을 단련시켜야 했다. 그러기에 박해시대 체포된 신자들은 자신들이 당한 혹독한 고문을 ‘천당 영복을 사는 돈’이나 천당 입장권으로 비유하기도 했다. 이처럼 당시 신자들이 생각한 천당은, 하느님께서 전면에 나서시어 사람들을 심판하고 그 결과에 따라 선물로 직접 배정해 주는 곳으로 여겼다.

 

 

땅 위의 천당은?

 

원래 천당은 현재와 미래의 시간대에 걸쳐 있는 것이다. 천당의 조짐은 현세에서 확인되어야 했다. 우리는 박해시대 신자들을 통해서 이러한 인식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가능성은 1801년에 순교한 황일광을 비롯한 그 밖의 신자들이 남긴 증언을 통해서 실증된다.

 

황일광은 조선후기 사회에서 가장 천대받던 신분인 백정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황일광은 죽은 다음 사심판을 통해서 가게 될 천당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에 앞서 평등을 실천하던 당시 신앙공동체에서 천당을 미리 체험했다.

 

“교우들은 그의 신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를 나무라기는 고사하고 애덕으로 형제처럼 대우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어디를 가나, 양반집에서까지도 그는 다른 교우들과 똑같이 집안에 받아들여졌다.

 

그로 말미암아 그는 농담조로 자기에게는 자기 신분에 견주어 보아 사람들이 그를 너무나 점잖게 대해주기 때문에, 이 세상에 하나, 후세에 하나 이렇게 천당 두 개가 있다고 말했다 … 관리들이 배교를 강요하며 혹독한 고문을 해도 그는 ‘하늘에서 느끼는 기쁨으로 참아 받으며, 만 번 더 괴로움을 당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치 않겠으니 저를 마음대로 하십시오.’라고 했다.”

 

1801년 박해 이전에 천주교의 문을 두드리던 신자들이 생각하던 천주교 교리의 가장 매력적인 요소는 바로 이 사회적 평등에 대한 인정이었다. 그래서 박취득도 신문을 받던 과정에서 천당과 지옥에 관한 천주교 교리를 설명하면서, 평등이념을 가진 천주교 신앙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세상을 마칠 때 모든 나라가 없어진 다음에는 양반과 상놈, 임금과 신하의 구별이 없이 모든 연령층의 모든 사람이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신 천주 성자 앞에 모일 것이고, 그분은 과거와 당시의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착한 사람들은 주 예수와 그의 성인들과 함께 천당에 올라가서, 이 세상 모든 영광과 즐거움보다 천만 배나 더 큰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고 대답했다.

 

이러한 그의 대답에서 천당이란 이미 사회적 불평등을 극복한 새로운 세계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839년 박해 때에 순교한 남명혁 다미아노는 사형선고를 받고 나서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차세는 역려이고 천국은 우리 본향이니, 주를 위하여 죽어 ‘광명한 지경’에서 영원히 만나기를 바라노라.”고 했다. 그는 이 세상을 나그넷길로 보았고, 천국이 진정한 우리의 고향이며 ‘광명한 지경(地境)’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1866년의 박해과정에서 순교한 황해도 서흥 출신 김택보(金澤甫)는 자신이 피해 있던 곳에 천주교 신앙을 열정적으로 전교했다. 그는 “천주가 강생하여 수난을 당하고 우리를 구속해 준 일과 사람은 영혼이 있어서 반드시 상주고 벌준다는 도리를 강론했으며, 사람 사람마다 가르쳐주니 남녀사람들이 감복하여 기뻐하여 진실로 복종했다.

 

먼저 12단을 가르쳐주고 이어 문답을 보여주니 외우고 강하는 소리에 봉우리가 울고 골짜기가 진동하는 것이 십리를 에워싸니 그가 사는 어리동이 온통 마치 ‘광양세계’(光揚世界)와 같았다.”고 한다.

 

 

남은 말

 

박해시대 신자들은 묵시록적 견지에서 미래의 천국을 이해하기도 했다. 또한 그들은 현세에서 미리 참여할 수 있었던 천국을 ‘광양세계’(光揚世界) ‘광영천지(光榮天地) 또는 광명지경(光明地境)’ 등으로 표현했다. 그들이 사용하던 광양이란 단어는 원래 자유라는 의미와 동일하게 사용되었다. 곧 그들은 서양 여러 나라를 ‘성교(聖敎)가 광양한 나라’로 표현했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성교도 ‘광양’하기를 바랐다.

 

박해시대 신자들이 천국의 다른 이름으로 생각한 ‘광양세계’는 자유가 충만한 나라였다. 또한 신분차별이 없는 평등한 곳이기도 했고,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천당에 대한 신앙을 통해서 현세에서도 자유와 평등 그리고 사랑을 함께 호흡하였다. 여기에서 당시 다른 신앙에서 말하는 천당관과 천주교의 천당관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을 찾을 수 있다. 그 천당의 개념 안에서 근대의 사유가 싹트고 있었다.

 

* 조광 이냐시오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로 “한국 천주교회사1, 2”, “조선 후기 천주교회사 연구”, “신유박해 자료집” 등 저술활동을 통하여 한국교회사 연구에 힘쓰고 있다.

 

[경향잡지, 2006년 11월호, 조광 이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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