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박해시대 교우들의 지옥 생각 - 지옥불에 떨어질라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10-18 ㅣ No.173

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 박해시대 교우들의 지옥 생각

 

지옥불에 떨어질라

 

 

가톨릭 정통교리에서 말하는 내세는 천당과 지옥 그리고 연옥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내세는 천당이다. 그러나 천당의 존재가 지옥의 대칭 개념으로 나타는 과정에서 지옥 또한 천당 못지않게 거론되었다. 오늘날 현대 신학은 지옥을 “어떤 장소가 아니라 하느님한테서 멀어진 상태”로 규정한다. 또한 1997년도 로마에서 공식 간행된 라틴어본 교리서에도 “지옥의 주된 고통은 인간이 갈망하는 생명과 행복을 주시는 유일한 분이신 하느님과 영원한 단절을 의미한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박해시대 지옥에 대한 개념은 오늘날과 일정한 차이를 드러낸다.

 

 

박해시대 교회의 지옥에 대한 가르침

 

박해시대 조선의 상당수 지식인은 천주교를 불교의 한 갈래로 인식하였다. 실학자인 성호 이익(1681-1763년)은 천주교를 불교의 별파(別派)로 보았고, 순암 안정복(1712-1791년)도 천주교를 이단으로 간주되던 불교의 한 종류에 지나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이들 외에도 천주교를 비난하던 여러 사람은 불교와 천주교 교리를 거의 동일한 가르침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이 천주교를 이렇게 판단하게 된 데에는 천주교의 주요 교리 중 하나를 ‘천당 지옥론’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박해시대 신자들은 천당과 지옥을 교회의 중심 가르침 가운데 하나라고 믿었다. 죽을 위험에 놓인 이들에게 대세를 줄 때에도 설명해야 하는 기본교리인 이른바 4대(천주존재, 상선벌악, 삼위일체, 강생구속) 교리가 있다.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착한 이에게 상을 주고 악한 이에게 벌을 준다.”는 상선벌악의 가르침과 관련하여, 영원한 상과 벌로 천당과 지옥을 제시하였다.

 

지옥과 천당에 대한 인식은 조선교회의 초창기에 널리 읽힌 “천주실의”와 같은 한문 서학서를 통해서 전파되기 시작했다. 또한 “칠극” 등의 교리서나 각종 신심 묵상서에도 지옥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지옥에 대한 관념을 신자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던 배경에는 불교문화가 제시하던 극락과 지옥에 관한 설명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다고 생각된다.

 

천당과 지옥에 관한 박해시대의 교리서 가운데 대표 서적으로는 “성교백문답”을 들 수 있다. 17세기 후반기 중국에서 저술된 한문 서학서 가운데 하나인 이 책이 조선교회에서는 사실상 박해가 끝난 1884년에 간행되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서술하는 천당 지옥론은 박해시대의 가르침을 잘 요약해 준다. 이 책은 천주교의 주요 교리를 100개의 조목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이 가운데 직접 천당과 지옥 등을 가르치는 조항이 10개나 포함되었다. 이는 당시 교회에서 내세의 중요성을 강조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성교백문답”에서는 지옥을 설명하면서, “(문) 지옥은 누구가 있는 곳이뇨? (답) 마귀와 악인이 있는 곳이라. 그곳은 맹렬한 불의 앙화와 지극한 괴로움을 받아 항상 죽느리라.”고 하였다. 지옥은 생전에 악한 일을 한 사람들이 벌로써 영원토록 고통을 받는 장소로, 당시 교회는 지옥을 내세의 ‘처벌 장소’로 제시하였다. 지옥의 존재는 천당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곳이었다. 백문답에서는 지옥의 영원함을 “만만년 후에도 이에 시작이요, 억만년 후에도 이에 시작이니 항상 시작이요 마침이 없느니라.”라고 하였다.

 

 

신자들이 생각한 지옥

 

박해시대 신자 대부분은 교회의 가르침을 잘 따랐다. 그들은 천당과 지옥 교리도 열심히 익혀나갔다. 예를 들면 1801년에 죽은 김건순이 동료들과 토론하던 주제에는 천당과 지옥의 존재와 필요성이 포함되었다. 지옥은 죄를 지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었다. 그들은 사람이 죽은 직후 사심판을 통해서 천당과 지옥으로 나뉘며, 세상 종말에 진행될 공심판 때에 모든 사람 앞에서 이것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고 배웠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지옥의 고통에 관한 설명이 뒤따른다. 그리하여 1799년 충청도 홍주에서 순교한 박취득은 “지옥이 무서워서 하느님을 배반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1839년 이문우도 순교에 앞서 어버이에게 편지를 보내며 천당의 영원한 행복과 지옥의 끝없는 고통을 비교하며 자신의 각오를 다졌다. 순교자 장성진(요셉)은 천당과 지옥을 묵상하며 최후의 순간을 준비하였다. 순교자 모방 신부도 신자들에게 박해에 맞서 용감하기를 권하며, 천당과 지옥의 존재를 의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지옥에 대한 당시 신자들의 생각은 천주가사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박해시대 지어진 대표적 천주가사인 ‘사향가’에서는 죄악으로 이끄는 요소를 도적으로 비유하면서 이렇게 노래했다.

 

“이도적 못이기면 천당갈길 다시없네

싸우기를 두려하여 이도적에 항복하면

천당영복 아주잃고 지옥영고 어찌할고

대부모를 못뵈옵고 마귀들의 종이되어

억만년이 지나도록 맹화(猛火)중에 잠기어서

만고만난 다받으며 절치통곡 무궁하니

대해수(大海水)를 다퍼낸들 이고난을 면할소냐

대지사석(大地沙石) 헤아린들 이앙화를 벗을손가

무궁함도 무궁하다 지옥고(地獄苦)의 영원이여 … 

천당지옥 갈라질때 지척에 비롯하니

그아니 두려우며 이아니 삼갈소냐.”

 

박해시대 신자들은 죄를 범하는 일곱 가지 원천(칠죄종 : 교만, 인색, 질투, 분노, 음욕, 탐욕, 나태)을 이기지 못하면 지옥에 간다는 전통 가르침을 따랐다. 이와 함께 박해시대의 몇몇 신자는 지옥에 갈 가장 큰 죄악으로 부모에 대한 불효를 꼽았다. 교회 창설 직후에 지어진 ‘십계명가’와 같은 천주가사의 노랫말에는 부모에 대한 불효가 “죄중에 제일크고, 죽은후에 지옥가네.”라고 하고 있다. 이 점을 살펴보면 박해시대 교회 가르침을 수용하는 데 우리 신앙선조들은 자신의 전통문화 요소를 가미하여 해석하였다.

 

 

남은 말

 

박해시대 천당과 지옥에 관한 주제는 그리스도의 강생구속과 최후심판을 가르치는 연장선에서 비교적 중요하게 다룬다. 신자들은 그들의 믿음살이에서 천당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지옥에 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았다. 물론 박해시대 교회에서 가르치던 지옥에 관한 논의는 현대신학에서 논하는 지옥과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 이는 당시의 신학자들이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견해를 주로 따른 결과이다.

 

교회의 전통을 보면, 교부 오리게네스는 보편적 구원에 대한 희망을 강조했다. 반면에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하느님의 정의에 중점을 두어 구원의 어려움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교리를 설명했다. 그는 하느님한테 저주받은 사람들이 질료적 불 속에서 영벌의 고통을 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박해시대의 지옥 논의는 대체로 아우구스티노의 견해를 가지고 교리를 설명했다. 반면에 오늘의 신학에서는 오리게네스의 주장에서 접근한다. 이 때문에 지옥에 관한 해석이 과거의 교리서에서 말하는 것과는 일정한 차이를 드러낸다.

 

그렇다 하더라도 박해시대 신자들은 천당지옥에 관한 논의를 통해서, 인간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위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자유를 사용해야 함을 말하려 했다. 또한 지옥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부모에 대한 불효를 비롯하여 열 죄악을 범하지 않기를 다짐하는, 개인적 윤리의 엄격성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지옥에 떨어질 사람들에 대한 규정에는 신자들 자신이 처한 현실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도 함께 응축되었다. 그들은 교회를 박해하는 신분 높은 사람들이라도 심판 때에는 모두 평등한 존재가 되어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쉽게 상정할 수 있던 터이다. 그렇다면 지옥에 관한 그들의 관념은 사람들이 처한 현재 상황을 판단하거나 역사의 성실성을 촉구하는 신자들의 역사의식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 조광 이냐시오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로 “한국 천주교회사1, 2”, “조선 후기 천주교회사 연구”, “신유박해 자료집” 등 저술활동을 통하여 한국교회사 연구에 힘쓰고 있다.

 

[경향잡지, 2007년 1월호, 조광 이냐시오]



641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