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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한불조약과 천주교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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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10-17 ㅣ No.169

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 한불조약과 천주교 선교사

 

 

우리나라 교회사에서 한불조약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불조약은 신앙의 자유를 진전시키는 데에 큰 몫을 맡아주었다. 물론 신앙의 자유는 1895년 조선의 국왕 고종(高宗)이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와 만나면서 실천적으로 공인되었다. 선교사들은 선교의 자유를 확실히 누릴 수 있었고, 신자들은 신앙실천의 권리를 보장받게 되었다. 이로써 정부의 공식적 박해는 확실히 종료되었고, 교회와 사회는 상호간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 나가야 했다. 그러나 이 전환기에 천주교에 대한 조선사회의 평가에는 다분히 부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이는 신앙의 자유를 획득한 교회의 지나친 특권의식과 관련된 현상 때문이었다.

 

 

개항기 사회와 불평등 조약

 

우리나라는 1876년 일본과 맺은 강화도 조약을 시작으로 개항을 단행했다. 1882년에는 미국과 조약을 맺었고, 이어서 영국, 독일, 러시아 등 유럽의 열강과도 차례로 조약을 맺게 되었다. 그렇지만 개항 이전부터 우리나라와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프랑스와는 천주교 문제 때문에 조약 체결이 늦어졌다. 이 조약들을 계기로 하여 외국인에 대한 조선의 정책도 크게 바뀌어갔다.

 

당시 조선은 구미(歐美) 열강들과 맺은 조약으로 제국주의 세력의 각축장이 되어갔다. 곧 구미 열강들은 조선에 불평등 조약을 강요하며, 조선에 대한 정치적 ? 경제적 침략을 강화해 갔다. 프랑스 정부도 천주교 문제 때문에 더 이상 조약 체결을 지연시키기 힘들게 되었다. 그 사이에 조선의 이권을 다른 나라에 빼앗기게 되는 상황을 우려한 까닭이다. 뒤늦게 조약을 체결하더라도 그 효과가 사후약방문으로 그칠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886년 프랑스와 ‘한불조약’이라는 불평등 조약을 맺게 되었다. 이 조약에서는 천주교 신앙의 자유가 명문으로 규정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조약에는 프랑스인들이 조선인을 가르칠[敎護] 수 있다는 구절이 있었고, 프랑스인들은 조선국에서 일종의 비자(Visa)와 같은 호조(護照)를 발부받아 국내를 여행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 두 조항은 신앙의 자유과 무관한 듯이 보였다. 그러나 프랑스는 이 조항을 이용하여 음성적 외교술책을 구사하여 선교사들에게 조선에서 선교할 수 있는 폭을 넓혀주었다.

 

이제 조선의 선교사들은 ‘한불조약’과 ‘신앙의 자유’라는 두 가지 사건을 통해 법적 처벌의 대상에서 강력한 서양 세력의 비호를 받는 새로운 실력자로 등장했다. 그들은 지방관이나 중앙정부에서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

 

조선의 선교사들은 중국에서 천주교 선교사들이 누리던 ‘보호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중국의 이웃인 조선에 있는 자신들도 그와 비슷한 특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한편 프랑스 정부도 조선에서 발언권을 강화하고자 당시 중국에서와 같이 조선에서도 자신들의 선교보호권을 확보해 보려고 하는 듯했다.

 

 

중국에서 누리던 선교보호권

 

프랑스가 19세기 중엽 이후 국외에서 자국의 발언권을 강화해 나가던 방법으로는 ‘프로텍토라(protectorat)’가 있다. 이 프랑스어 단어는 보호권(保護權) 또는 보호령(保護領)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외국에 있는 특정지역에 대해 프랑스 이외의 다른 나라나 현지인 정치권력의 간섭을 배제하는 프랑스의 배타적 권리를 뜻하는 말이다. 프랑스는 식민지로 편입하기 전에 베트남에서 이 보호령 정책을 시행한 적이 있다. 그리고 모로코를 비롯한 일부지역을 보호령으로 만들어 정치적으로 지배하고자 한 사례도 있었다.

 

프랑스 제국주의는 중국에 대한 침략에서도 결코 무관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중국 진출을 시도하면서 중국에서 선교하던 프랑스인의 존재에 주목했다. 그런데 19세기 중엽 이후 프랑스 본토에서는 다시 교회와 국가가 심각하게 대립되고 있었다. 국가는 프랑스 국내에서 교회의 활동에 제약을 가하며, 교회에서 운영하던 학교와 병원, 고아원 등 각종 사회복지 시설을 몰수하여 국유화해 나갔다. 그러나 당시에도 프랑스 정부는 외국에서 활동하는 프랑스인 선교사들에게는 적극적인 지원책을 수행하는 이중성을 드러냈다.

 

프랑스가 중국에서 관철하고자 했던 ‘보호권’은 중국에 파견된 프랑스인 선교사들의 활동과 관련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특별히 ‘선교보호권’ 또는 ‘호교권’으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는 호교권을 통해서 중국에 대한 자신의 발언권을 강화해 나갔다. 먼저 프랑스 정부는 ‘제1차 아편전쟁’ 곧 ‘중영전쟁(中英戰爭)’이 끝나고 1844년 청국 정부와 맺은 ‘황포조약’을 통해서 프랑스 선교사들의 활동에 다소간의 관용을 보장받았다. 그러나 ‘제2차 중영전쟁’이 영불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 다음 중국은 1860년의 ‘북경조약’으로 프랑스의 호교권을 승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선교사들은 모두 프랑스 외교관들에게 여권을 발급받게 되었다. 그리고 프랑스에 주어진 호교권에 따라 치외법권을 인정받았다. 또한 프랑스는 중국 정부를 강박하여 1895년 선교지의 부동산 취득을 확고히 보장받았다. 이에 선교사들에게 주어진 치외법권은 선교사들이 구입했던 토지와 그 지역에 살던 신도들에게까지 확대 적용되었다. 그리하여 19세기 말엽 이래 중국에서는 천주교 선교구역이나 신자들과 관련된 문제가 중국 국내법의 적용을 받는 대신 프랑스의 치외법권적 비호 아래 놓이게 되었다.

 

중국에서 선교하던 선교사들은 호교권을 활용하여 교회 소유의 토지를 대량으로 확보하여 빈곤한 주민들에게 경작할 수 있는 토지를 보장해 주었다. 또한 부패한 관리들의 수탈에서 주민들을 보호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선교사들은 소송사건에 개입하여 신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판결을 이끌어 내고자 호교권을 배경으로 해서 지방관원들을 억압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 호교권은 중국 국내에서 신자 수의 증가에는 상당히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된다.

 

반면에 프랑스의 호교권은 많은 중국인들에게 중국에 대한 반(半)식민지화의 전형적 사례로 지적되었다. 이 때문에 1900년에는 의화단(義和團)의 봉기와 같은 반(反)교회 운동이 일어나 중국 교회가 심각한 타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의화단의 난이 진압된 이후, 호교권은 다시 강화되어 갔다. 이 호교권이 중국에서 거부된 것은 1929년 중화민국 정부 아래에서였다. 이때에 이르러서야 중국에서 선교사에 관한 문제가 외교관들의 문제와 더 이상 동등하게 취급받지 않게 되었다. 중국과 바티칸이 국교를 수립하고 바티칸 주재 중국대사가 파견된 1943년에 이르러서야 호교권은 공식적으로 소멸될 수 있었다.

 

 

남은 말

 

개항기 조선에서 활동하던 프랑스 선교사들이 조선의 신자들이나 조선사회에 취한 태도는 중국에서 프랑스 호교권의 비호를 받으며 전개되었던 가톨릭 선교사들의 활동 양상과 매우 흡사하다. 조선 선교사들은 같은 시대의 중국에서 동료 선교사들이 행사하던 호교권을 잘 알고 있었다.

 

이에 그들도 서울 주재 프랑스 공사관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교회와 신자들을 보호하고자 했다. 이 때문에 개항기 우리나라에서도 신자들의 숫자는 늘어났지만, 교회에 대한 반감도 커져갔다. 우리나라도 중국에서와 같이 교안이 발생했고, 개항기의 교안 때문에 지식층들은 가톨릭을 경원시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개항기 한때 우리나라 선교사들이 향유하고자 했던 호교권은 우리나라 교회의 발전에 암초가 되어 지장을 초래한 사건으로도 평가된다. 프랑스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서도 관철하고자 했던 호교권은 선교에 약(藥)임과 동시에 독(毒)도 되었다.

 

* 조광 이냐시오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로 “한국 천주교회사1, 2”, “조선 후기 천주교회사 연구”, “신유박해 자료집” 등 저술활동을 통하여 한국교회사 연구에 힘쓰고 있다.

 

[경향잡지, 2008년 9월호, 조광 이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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