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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박해자를 위한 부분적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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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10-16 ㅣ No.165

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 박해자를 위한 부분적 변명

 

 

박해시대 순교자들 대부분은 착하고 굳센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박해자들은 악독하고 인간성을 상실한 사람인 듯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순교자와 박해자를 예민하게 대비시키고자 했던 이러한 기록은 다분히 ‘영웅’과 ‘반(反)영웅’을 대비시켜 서술하는 전기(傳記) 문학적 도구와 무관하지 않다. 문학은 이러한 대비를 통해서 영웅의 면모를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동시에 문학은 박해자를 원래의 모습과는 달리 왜곡시켜 서술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교회사는 문학이 아니다. 교회사는 역사적 진실을 말함으로써 읽는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이는 교회의 순교문학이 독자들에게 줄 수 있는 감동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여기에서 우리가 역사적 진실을 이해하려면 박해자의 진면목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박해자는 잔인해야 하는가?

 

박해 당시의 기록을 보면 박해를 일으킨 장본인은 국왕이나 고위관료들로서 그들은 ‘천주교라는 이름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박해를 일으켰다. 그러나 교회사 자료들은 박해의 주모자인 이들을 비난하기보다는, 직접 신도들을 체포하여 신문한 하급관료들의 포악성을 더욱 강조한다. 사실 중앙이나 지방 행정기관에 소속되어 있던 포졸이나 아전 같은 하급관리들은 신도들을 직접 체포하고, 신문 과정에서 형벌을 가하는 하수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일반적으로 신도들의 재산을 약탈하는 날강도이거나 사로잡힌 신도들에게 고문을 가하여 고통을 즐기는, 가학적 취향의 인물들로 묘사되었다.

 

박해가 일어나면 체포된 신도들의 재산은 적몰되어 체포자의 몫이 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포졸과 같은 하급관리들은 상부의 명령 없이도 신도들의 재산을 탈취하려고 사사로이 박해를 감행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기근이 들 때면 적지 않은 곳에서 더욱 천주교를 박해하기도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강도들이 포졸을 사칭하고 신자들을 습격하여 재산을 약탈하기도 했다. 박해 때에 포졸들이 습격하여 교우촌을 약탈할 때 신자들은 약탈의 주범이 강도인지 포졸인지 헷갈려 저항한 경우도 있었다.

 

술에 취한 포졸 가운데는 신자들을 끌어내어 재미삼아 잔혹한 고문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포졸들은 체포된 여성 신도들을 괴롭혔고, 자신의 신앙을 끝까지 지키려는 신도들에게 곤장을 치고 주뢰질하는 악독한 존재였다. 그래서 이 하찮은 하급관리들이 바로 박해자의 표상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교회사 자료에서는 박해자를 이렇게 묘사한 것에 그치지 않고 박해자들의 뒤끝이 결코 좋지 않았음을 특별히 밝혀주는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면 1801년 박해당시 양근(楊根) 군수를 지내던 정주성(鄭周成)은 천주교인들을 형벌하고 살육하기를 잔인하게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만년에 시력을 잃었고, 외아들을 앞서 보냈으며, 자신이 죽기 전에 집안이 완전히 망하였다. 그의 후손들이 19세기의 60년대까지 충주에서 대단히 곤궁하게 살고 있었는데, 외교인까지도 하늘의 저주를 받은 집안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며 몹시 싫어했다고 한다.

 

이처럼 박해시대 조선 신자들은 악독한 박해자의 경우에는 두 세대, 곧 60여 년이 지나도록 그 자손들의 행방에 대해서까지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하여 철저히 저주받은 박해자들은 순교자의 영웅성을 더욱 찬연히 빛내주는 반영웅적 존재로 제시될 수 있었다.

 

 

착한 박해자도 있었는가?

 

박해자도 사람인 이상 착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였음에 틀림없다. 천주교를 탄압해야 했던 조선왕조 정부의 관리들에게서도 이 점은 확인된다. 그들은 동무와 맺은 우정을 알았으며, 죽음 앞에 두려워하는 신자들을 위로해 주기도 했따. 사형당한 신자들을 정성스럽게 묻어주기도 했다. 이들의 행동을 ‘악어의 눈물’ 정도로 깎아내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이들의 행동을 통해 인간 본성의 착함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송 아가타는 박해시대인 1838년에 태어나서 1930년까지 92년을 살았다. 그는 박해시대 신자들의 믿음과 살림을 증언해 주었다. 그의 증언 가운데는 아버지 송구현(宋九鉉) 도미니코에 관한 일화가 있다. 송구현의 증조부는 가선대부 호조참의를 지냈다. 이 사실은 그가 과거를 통해 관직을 가질 수 있는 귀한 가문 출신이었음을 말한다. 당시에는 양반 신분으로 과거에 급제했다 하더라도 가까운 조상 가운데 벼슬을 지낸 적이 없는 집안 출신에게는 관직에 나아갈 기회가 사실상 주어지지 않던 때였다.

 

학업에 열중하던 그는 열두세 살 때에 천주학을 알게 되었다.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으나 신앙을 포기하지 않은 그는 열일곱의 나이에 집을 나왔다. 그리고 부인 고씨(高氏) 사이에 자녀 여러 남매를 두었다. 1839년 7월경에 온양 포교에게 잡혀 수감되어 혹형을 받으면서 순교를 결심하였다. 그해 12월 사형을 받기 위해 그는 충청도 감영으로 옮겨갔다.

 

그때 충청감사가 새로 도임하여 다시 신문을 받게 되었는데, 천주학쟁이 죄수들을 신문하던 감사가 송구현을 이윽히 살펴보았다. 밤이 되어 감사가 옥졸 하나를 불러 은밀히 말하기를, “죄수 송 아무개를 이 밤에 놓아 보내되, 만일 이 사실을 누설하면 너는 죽으리라.”고 엄히 분부했다. 그 밤에 도미니코는 풀려나 도망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가만히 생각하던 그는 감사가 어릴 적 여러 해 동안 함께 공부하며 남달리 정답게 지내던 동무임을 깨닫고는 감격하였다. 한편 살아남은 그는 “내가 순교의 큰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는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는 1866년의 박해 때에 서울의 포도청으로 잡혀 올라와서 순교했다. 이는 그의 딸 송 아가타의 증언이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1866년 홍주에서 순교한 김 요셉은 하옥된 지 열나흘 만에 신문을 바도 죽게 되었다. 이때 홍주의 관장은 김 요셉에게 “너희는 불쌍하다만 어명이니 할 수 없다.”라고 동정을 표했다. 김 요셉은 “지당한 분부요.”라고 대답하고서 참소(斬所: 사형집행장)로 나아갔다. 그는 집행장에 이르러 “예수 마리아여, 나를 도우소서.” 하고 이 세상과 이별했다.

 

김 요셉의 아내 최 마리아도 홍주옥에 체포되어 있었다. 그가 체포된 지 사흘 만에 며느리가 읍내의 옥문 앞에 가서 시어머니를 찾았다. 최 마리아는 며늘아기를 보고 깜짝 놀라며 “이게 웬일이냐? 여기 있지 말고 급히 나가거라.”고 말하며, 형리들에게 참소로 끌려갔다. 옥졸이 말하기를 “거기에서 교(絞)하니 놀래지 말고 가시오. 치명성인은 마음이 불편[心患]해도 떨지 아니 한다오.” 했다. 최 마리아는 “지금 나가면 죽는가요?” 하니, 옥졸은 “그런가 보오. 주 성모께 의탁하시오.”라고 했다. 착한 옥졸은 이렇게 ‘치명성인’ 최 마리아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그 장면을 지켜본 며느리는 이를 기억하여 증언해 주었다.

 

 

남은 말

 

박해시대 상당수의 기록에서 순교자는 착하기 그지없는 존재였다면, 박해자는 악독하기 나위없던 인간들이었다. 그러나 박해시대 순교자의 기록을 찬찬히 살펴보면 나약했던 순교자와 함께 착한 박해자들도 발견된다. 그러므로 박해자와 순교자라는 선명한 대립의 이원론적 인식구조는 타파되어야 한다. 박해하던 사람들이 지닌 착함도 인정하고, 아울러 박해 받던 신앙인들의 인간적 악함이나 약함도 우리가 인정해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는 인간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기초로 하여 신앙의 선조들이 만난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며,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어진 마음까지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때에 이땅에서는 그리스도교와 우리 문화가 진정으로 만나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여기에서 박해자를 위해 부분적 변명을 하고자 한다.

 

* 조광 이냐시오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로 “한국 천주교회사1, 2”, “조선 후기 천주교회사 연구”, “신유박해 자료집” 등 저술활동을 통하여 한국교회사 연구에 힘쓰고 있다.

 

[경향잡지, 2008년 7월호, 조광 이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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