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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세계교회사 100대 사건9: 베드로 바오로의 순교 - 사도 무덤 위에 세워진 로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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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1-03 ㅣ No.200

[세계교회사 100대 사건] (9) 베드로 바오로의 순교 - 사도 무덤 위에 세워진 로마교회

 

 

로마의 4대 성당이라고 하면 성 베드로 대성전, 성 요한 라떼라노 대성전, 성모 마리아 대성전, 그리고 성 바오로 대성전을 일컫는다. 그중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성전은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전들이다.

 

인류가 이룩한 가장 위대한 창조물의 하나를 건축물에서 꼽는다면 단연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이라 할 수 있다. 최대길이 221m, 최고 높이 141m로 세계 최대의 성당 가운데 하나이며 독창적인 구상과 미켈란젤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시관을 상징해 제작한 돔은 베드로 대성전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다.

 

교황은 모든 중요한 바티칸의 행사들을 이 위대한 성전에서 거행하며 순례자들이 많을 때에는 성전 앞의 타원형 광장에서 옥외행사를 집전한다. 얼마전 막을 내린 대희년도 바로 베드로 대성전의 성문을 열어 시작했고 바로 그 성문을 닫는 예식을 광장에서 거행함으로써 폐막됐다.

 

 

무덤위에 성전 건립

 

베드로 대성전이 자리잡은 바로 이 곳이 사도 베드로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최초의 베드로 성당은 90년경 교황 아나글레토가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운 작은 경당이었다. 그 뒤 콘스탄틴 대제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하면서 베드로의 무덤이 있다고 믿은 바티칸 언덕에 바실리카식 성당을 건축했다. 그후 1200년 동안 존속하던 베드로 성당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 구상한 것은 교황 니콜라오 5세, 이후 우여곡절을 겪으며 베드로 성전은 176년이라는 오랜 공사 끝에 완공, 1626년 11월18일 교황 우르바노 8세에 의해 축성됐다.

 

베드로 대성전 내부에 들어서면 두 줄의 거대한 기둥에 의해 3개의 통로가 나뉘며 중앙 신랑과 양쪽 익랑이 교차하는 곳에 교황 제대가 있다. 바로 이 제대 밑에 성 베드로의 무덤과 많은 교황들의 무덤이 있다.

 

로마의 4대 대성전 중 하나인 바오로 대성전 역시 사도 바오로의 무덤 위에 세워졌다. 전승에 따르면 사도 바오로는 로마 남서쪽에 조금 떨어진 「앗 아쿠아스 살비아스」라는 곳에서 참수되어 그곳에서 가까운 오스티엔가에 묻혔다고 한다. 그 후 무덤 위에 작은 성당이 세워졌고 324년에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헐리고 그 자리에 기념성당이 세워졌다고 한다.

 

 

로마의 박해

 

그리스도교는 복음 전파 초기부터 로마제국내의 여러 요소와 긍정적으로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서 빠른 속도로 전파됐다. 국경을 없애고 대제국을 형성해 행정 질서나 언어, 문화가 통일돼있었던 점, 상업 교통수단의 발달, 그리고 제국 어디에나 퍼져있는 유대인 공동체 등과 이미 평화시대로 접어들어있었던 시대상황 등이 긍정적인 요소였다. 하지만 그리스도교가 빠른 속도로 전파되자 결국 이는 로마 제국과 마찰을 빚게 된다.

 

로마제국은 62년 네로 황제의 태도 변화가 있기까지는 대체로 그리스도교에 호의적이었다. 일부 과격한 유다인들이 유다 해방을 부르짖으며 독립 전쟁을 일으키는 등 소요를 유발했으나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제국에 아무런 적의를 보이지 않아 로마 행정 관리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단순히 영적이고 종교적인 사람들로 여겼다.

 

하지만 62년경부터 그리스도교에 대한 무관심이나 무지의 상태를 벗어나면서 호의적이던 관계가 무너지고 박해가 발생했다. 그리스도교와 로마제국은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요인을 이미 갖고 있었다.

 

로마제국은 다신교적인 경향으로 국가를 절대시한 제국이었다. 반면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국가의 절대성을 함께 할 수 없었다. 또 그리스도교의 신앙생활에 대한 무지 역시 충돌의 원인을 제공했다.

 

이로써 박해의 빌미가 제공됐고 드디어 첫 박해인 네로의 박해 때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가 모두 순교했고 이후 그리스도교는 로마에서 불법 종교가 됐고 줄곧 박해가 이어졌다.

 

 

사도들의 순교

 

베드로 사도의 순교와 관련해 전승에 따르면 자신의 생애 후반기에 로마로 가서 활동하다가 순교했고 그곳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95년경 로마의 글레멘스 주교는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베드로가 박해 중에서도 거룩하고 위대한 모범을 보여주었다고 기록했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주교도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같은 설명을 했고 1세기 후반 이레네오는 로마에서의 그의 활약상을 설명해준다.

 

한편 이레네오는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가 로마교회의 창립자라고 보았지만 바오로의 로마서에 의하면 이런 견해는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오로는 그때까지 로마에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로마 1,13). 따라서 비교적 더 타당한 것으로 보이는 견해는 바오로가 로마에 갇혀 있을 때 두 사도가 협력해서 일했다는 것이다. 사도행전의 끝맺음에서 이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사도 28,31).

 

베드로가 로마에서 순교했다는 교회의 전승은 정확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이는 2세기말과 3세기초에 베드로가 로마를 여행하고 순교했다는 전승이 정립되면서 확정됐다.

 

바오로는 58년 봄 고린토에서 로마서를 쓸 때부터 예루살렘과 로마를 거쳐 스페인에 가서 전도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해왔다. 글레멘스 1세 교황이 95년경 고린토교회로 써보낸 편지를 보면 바오로가 스페인에 가서 전도한 후에 다시 로마로 와서 순교했다고 한다.

 

네로황제는 64년 7월19일 로마시에 불을 지르고 나서 여론이 좋지 않자 그리스도인들을 방화범으로 몰아 4년 동안 모질게 박해했다. 이 박해 때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가 순교했다.

 

두 사도가 65년 네로 황제의 대박해 동안에 순교했으며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으며 바오로는 세례자 요한처럼 참수형을 받았다는 전승은 테르툴리아노에 의해 전해졌다. 이러한 기록은 네로의 대박해때 바오로와 베드로가 죽었다는 타치우스의 보도와도 일치한다.

 

3세기초 제피리노 교황 재임시 로마 사제의 글을 인용한 에우세비오는 베드로의 기념비가 바티칸에 있었다는 전승을 기록했다. 4세기초 콘스탄틴 대제는 바티칸 언덕에 대성전을 건축했는데 대성전을 평지 위에 세울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언덕 위에 세운 것은 베드로의 유해가 그곳에 묻혀 있다는 확신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바오로는 로마남문 밖 교외에 있는 지하수가 세줄기 솟아나는 티레 폰타네에서 순교했고 그 근처 현재의 바오로 대성전 자리에 묻혔다고 한다.

 

[가톨릭신문, 2001년 1월 28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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