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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세계교회사 100대 사건5: 사울의 개종 -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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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1-03 ㅣ No.196

[세계교회사 100대 사건] (5) 사울의 개종 -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 (위) 다마스커스 크리스찬 구역에 위치한 아나니아 교회. 오랜 역사를 간직한 작은 지하교회로 바오로 사도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아래) 다마스커스 '곧은 거리'의 현재 모습. 성서는 사울이 회심 체험 후 이 거리에 있는 유다의 집에서 아나니아로부터 안수와 세례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하느님의 계획은 인간적인 생각과판단을 뛰어넘는다. 때론 너무 극적이어서 두려움 마저 느끼게 한다.

 

스테파노가 디아스포라 유다인들과의 논쟁 끝에 유다 의회 의원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던 그 현장에서, 사울은 스테파노를 돌로 내려치는 거짓 증인들의 옷을 받아들고 스테파노의 순교를 목도하며 그의 죽음을 당연시하고 있었다.

 

그뿐인가, 사울은 집집마다 다니며 남녀를 가리지 않고 신도들을 가려내 모두 감옥에 쳐넣는 일에 앞장서고 있었다(사도 8,3). 하느님은 그러한 사울을 택하시어 열렬한 당신의 도구로 삼는다.

 

사람이 평생 지녀온 가치관이나 신념을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종교적 신념일 경우 더욱 그러하다. 소위 '개종'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인생을 뒤바꿀만한 내적 체험을 하지 않고서는 쉽지가 않은 일이다.

 

세계 교회사를 추적하면서 '사울의 개종'을 별도로 언급하는 것은 사울의 개종 체험이 갖는 드라마틱한 상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도가 된 바오로가 가톨릭 교회에 남긴 가르침과 영성, 활동의 결과들이 너무나 엄청나기 때문이다.

 

 

사울의 회심 체험

 

때는 기원 후 30년대초. 유다인 사울은 위세 당당히 다마스커스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에겐 예루살렘 대사제로부터 그곳에 숨어 있는 그리스도교인들을 체포해 압송하라는 임무가 주어져 있었다.

 

당시 예루살렘의 그리스도교인들은 박해를 피해 사방으로 흩어졌고, 이 가운에 많은 이들이 다마스커스로 피신했다. '교회를 쓸어버리는데'(사도, 8,3) 앞장섰던 사울은 그들을 잡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다마스커스에 가까이 이르렀을때 사울은 갑자기 하늘에서 번쩍이는 섬광에 놀라 엎어지고 말았다. 이때 하늘에서 음성이 울려왔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사울이 황급히 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늘에서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2000년 가톨릭 교회사에서 큰 전환점이 된 사울의 회심 장면은 이처럼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강한 빛에 의해 시력을 잃은 사울은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커스로 들어가 그곳 교회 지도자 아나니아에게 인도된다. 주님의 예시를 받은 아나니아는 사울에게 안수하며 말한다. '사울형제, 나는 주님의 심부름으로 왔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여기 오는 길에 나타나셨던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이 나를 보내시며 당신의 눈을 뜨게 하고 성령을 가득히 받게 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아나니아의 안수로 사울은 다시 앞을 보게 되고 세례를 받아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말로만 듣던 다마스커스. 낯선 방문객을 힐끔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이 웬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울의 회심체험을 연상하며 친근함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이곳 사람들은 아랍계열이지만 피부색이나 생김새가 유럽민족에 가깝다.

 

시리아의 수도인 마다스커스는 교회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번성한 도시로, 현존하는 대도시 가운데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고도(故都)이다. 사울이 그곳을 찾았을 때 다마스커스는 이미 2000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갖고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은 아무래도 성서에 '곧은 거리'로 표현된 곳에 모아진다(사도 9,11). 회심체험을 한 사울은 이 도시의 '곧은 거리'에 있는 유다의 집에 머물렀고 그곳에서 아나니아에게 세례를 받았다.

 

 

사울의 신앙적 탄생지

 

사도 바오로가 걸었던 '곧은 거리'를 찾기 위해서는 다마스커스의 구도시로 발길을 옮겨야 한다. 오늘날 다마스커스는 두 지역으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고대부터 내려오는 구도시이고, 다른 하나는 19-20세기에 확장된 신도시이다.

 

역사의 때가 겹겹이 묻어있는 구도시는 타원형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구도시를 가로지르는 1300미터에 이르는 길게 뻗은 대로가 바로 '곧은 거리(直街)'다.

 

사도 바오로가 이곳에 왔을 때는 너비가 15미터에 이르고 길 양편에 석주들이 늘어선 로마식 대로(大路)였다. 그러나 오늘날 이름은 그대로이나 과거의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길이 좁아졌고 곧은 도로의 서쪽 절반은 천장이 있는 전형적인 아랍인 시장 '수크'로 변했다. 다만 몇개의 석주와 로마시대의 건축물 일부가 과거의 모습을 짐작케 할 뿐이다.

 

그러나 '곧은 거리'가 끝나는 동편은 지금도 크리스찬 구역이어서 교회가 밀집해있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이 사울이 세례를 받고 새 사람이 되었다는 곳에 세운 '아나니아 교회'다.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 만나는 아주 작은 지하교회지만 역사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희랍정교회의 대주교가 있는 아름다운 '마리아 기념 교회'를 지나 '곧은 거리'의 끝 동문을 나와 남쪽으로 300미터 정도 성벽을 따라 걸으면 큰 성문과 만난다. 성문 뒤쪽으로 돌아가면 돌로 지은 작은 경당(chapel)이 있다. '사도 바오로 경당'을 쫓기던 바오로가 신도들의 도움으로 광주리에 실려 성벽을 내렸다는 곳에 세워졌다(사도 9,20-25 참조).

 

사도 바오로의 발길이 닿았던 곳, 또한 그의 신앙적 탄생지이기도 한 다마스커스는 새롱누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가톨릭신문, 2000년 4월 2일, 전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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