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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순교자의 배우자들 - 살아서 순교의 길을 걷는 아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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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10-21 ㅣ No.181

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 순교자의 배우자들

 

살아서 순교의 길을 걷는 아내들

 

 

인류 역사에서 첫 부부는 아담과 하와였다. 이들이 부부의 연을 맺기 이전, 아담은 하와를 처음 보고서,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창세 2,23)고 외치며 전율했다.

 

이렇게 만난 아담과 하와의 후예들은 서로가 만나서 가정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다. 그리스도교는 이 가정의 기초에 부부간의 사랑과 존경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가르쳐왔다. 이 땅에서 이 새로운 가르침을 실천한 사람들 가운데는 순교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순교자들은 아마도 하느님 다음으로 자신의 배우자를 의지하며 살아왔으리라 생각된다. 새롭게 이해된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렇게 살다간 토박이 조선 사람들의 삶 속에서 부부간의 사랑을 오롯이 키워주었다.

 

 

순교자의 가족 생각

 

박해시대 우리나라 교회사에서는 적지 않은 부부 순교자들을 확인할 수 있다. 1866년에 시작된 대원군의 박해시대 기록에서도 부부가 함께 순교했다고 담담히 서술하고 있는 장면들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부부 순교자라는 그 짤막한 서술 안에는 많은 사연이 담겨있을 수밖에 없다.

 

순교자들 가운데는 자신의 배우자와 돈독한 신앙을 실천해 가면서 순교를 예비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베르뇌 주교의 가마꾼이던 김부업은 베르뇌 주교가 체포된 이 후 고양군 별지 고개의 어느 주막에 몸을 맡기고 짚신을 삼아 팔았고, 아내는 그 주막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며 밥을 얻어먹었다. 이들은 서로가 “치명기회를 만나거든 함께 잡혀 치명하자.”고 언약했다. 김부업이 포졸들에게 잡혀가자 그 아내는 평소 약속한 대로 장부를 쫓아가서 함께 순교했다.

 

19세기의 천주학쟁이 남편들도 아마 당시의 풍습대로 아내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데에는 어색함을 느꼈을 것이다. 손선지 베드로 성인이 체포되어 끌려갈 때, 그의 아내 김 루치아와 칠십 노모 임 체칠리아가 울면서 그를 따라왔다. 이때 손선지는 어머니에게 위로하여 이르기를 “모친은 걱정 마옵소서. 잘 다녀오겠습니다.” 하였다. 그러나 아내에게는 따뜻한 위로의 말마디를 전하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김 루치아는 당시의 여느 여인들처럼 남편 손선지의 마음을 헤아려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순교자들 가운데는 잡혀 끌려가면서도 아내에게 당부의 말을 남긴 사례도 있다. 충청도 홍산 땅 도화담에 살던 최 베드로는 1866년 10월 포교들에게 체포되었다. 이웃 마을에 가있던 그의 부인 원 루치아는 이 소식을 듣고 길을 내달려 왔다. 결박 지워 끌려가는 남편의 모습을 본 아내는 함께 감옥에 가겠다고 매달렸다. 최 베드로는 “나는 이제 가면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니 따라와야 쓸 데 없다. 집으로 돌아가 자식들을 데리고 주 명(主命)대로 잘 살아라.” 하고 부탁했다. 이로써 그는 가장의 무거운 책임을 연약한 아내에게 떠넘기게 되었다.

 

이렇게 떠난 길이었다 하더라도 순교자들은 처자 생각에 눈물을 흘리며 울기도 했다. 1866년 전주에서 순교한 이명서 성인은 전주감영에서 사형을 당하러 북문 밖 진터로 가던 길에 구진리 주막 아래 이르렀다. 순교를 앞에 두고 그는 거기서 처자식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그의 가슴에는 가족에 대한 따뜻한 감성이 죽는 날까지도 살아있었다.

 

그러나 박해의 피바람 속에서도 신실한 부부들은 함께 순교하기를 다짐하면서 자신의 사랑을 배우자에게 전하고자 했다. 부부가 함께 체포되어 신문을 받는 동안 감옥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신앙을 지켜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신자 부부들이 함께 순교한 것은 아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남성 신자들만 체포하고, 여성 신자들을 남겨놓는 경우가 많았다. 감옥 밖에 남아있던 아내들은 이제 가장이 되어서 어린 자식들을 먹여 살리며, 잡혀간 남편들의 옥바라지까지 감당해야 했다.

 

 

옥바라지하는 아내

 

조선왕조 사회에서는 죄수를 장기간에 걸쳐 구금하던 감옥이 따로 있지는 않았다. 천주교 신자들의 경우 대략 한 달 내외의 기간 안에 판결이 내려져 석방되거나 귀양가거나 사형에 처해졌다.

 

그런데 판결이 내리기까지 감옥에 구금되어 지내는 죄수들에게 대부분의 관청에서는 별도의 식사를 제공하지 않았다. 갇혀 지낸 대부분의 죄수들은 그 가족들이 일일이 식사를 가져다주어야 했다.

 

가족들은 좀 더 편한 감옥살이를 위해서 필요한 각종 뒷돈까지도 제공해야 했는데, 이러한 일들을 옥바라지라고 했고, 짧은 기간의 옥바라지에도 집안이 거덜 나기도 했다. 가족들의 옥바라지가 없으면 죄수는 동료 죄수들의 몫에서 조금씩 얻어먹었고, 그것도 아니라면 굶어죽기 십상이었다.

 

이 정황을 아는 순교자의 가족들은 순교자가 잡혀간 도회 부근으로 이전하여 밥을 구걸해서 옥중의 죄수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박해가 일어나면 옥에 들어간 신자가 한둘이 아니어서 박해 때에는 감옥에 갇힌 가족들을 위해 밥을 비는 신자 거지들로 넘칠 수밖에 없었다.

 

1866년 11월 21일 홍주 감옥에서는 천주학쟁이 김선양의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충청도 서산에 살던 김선양 요셉은 그의 아들 요한과 함께 체포되었고, 이들은 홍주로 끌려갔다. 홍주옥에 수감된 이들 부자의 옥바라지는 요한의 어머니자 김선양의 아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요한의 어머니는 동네에 나가 밥을 빌어다가 아들에게 먹였다. 김선양은 교수형을 당하기 직전 그의 부인을 보고서 “아들한테 열 번 가면, 나한테 한 번이라도 와서 밥 한 근이라도 얻어다 주지, 사람이 그리 무정한가!” 하고 눈물짓다가 순교의 길을 갔다.

 

얼마 안 된 동냥밥으로는 두 사람을 먹일 수 없었던, 그 아내의 마음을 읽어 이해하기에는 김선양의 옥살이가 너무나 고달팠던 까닭이다. 신앙 때문에 감옥에 갇혀 지내던 남편도 뻔한 집안 살림에 옥바라지를 감당하기 어려우리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1866년 당시 배론 땅에서 살다가 체포되어 순교한 이성천 베드로는 아내가 감옥으로 밥과 돈을 가져오면 이를 받지 않으며 “아이들이나 갖다 먹이라.”고 하며 끝까지 받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옥중에서 갖은 고통을 다 겪으면서도, 이를 면하는 데에 요긴히 쓰일 돈을, 살아갈 가족들을 생각하며 받지 않고 돌려보냈다.

 

 

남은 말

 

새롭게 전해진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이 땅의 부부들을 더욱 굳게 연결시켜 주었다. 우리 교회사에서 등장하는 순교자들은 어려운 살림살이 안에서도 부부의 정을 나누며 믿음을 같이 했다.

 

이 ‘그리스당’ 부부들은 함께 신앙을 고백하고 형장의 이슬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애초부터 장삼이사요 갑남을녀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감옥에 갇혀 때가 되면 배고파했고, 아내에게 투정을 부리기도 한 이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풍요로운 감성을 가지고 살아남을 아이들을 염려했고, 배우자의 험난할 앞길을 걱정했다.

 

이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신앙을 증거했고, 우리 교회사를 일구어 나가는 위대한 일을 했다. 그러나 살아남은 배우자들은 순교자가 짊어진 걱정과 근심까지도 고스란히 물려받아야 했다.

 

그리고 아담이 하와를 만났을 때와 같은 배우자에 대한 감격과 그리움을 평생 간직하면서, 고단한 삶의 고통 속에서 반복되는 순교를 체험해 나갔다. 이제 우리는 순교자와 그 배우자들이 남긴 굳은 믿음과 함께 풍요로웠던 감성을 발견해 내고, 그들의 고통에 참섭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 조광 이냐시오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로 “한국 천주교회사1, 2”, “조선 후기 천주교회사 연구”, “신유박해 자료집” 등 저술활동을 통하여 한국교회사 연구에 힘쓰고 있다.

 

[경향잡지, 2006년 5월호, 조광 이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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