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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선교사와 함께 산 사람들 - 복사와 신부 주인, 마부 그리고 가마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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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10-21 ㅣ No.180

한국교회사 열두 장면 - 선교사와 함께 산 사람들

 

복사와 신부 주인, 마부 그리고 가마꾼

 

 

박해시대 선교사들은 만리타향 조선에 뼈를 묻을 각오를 하고 입국했다. 이 땅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선교에 종사한 선교사들의 활동은 한국교회사에서 마땅히 주목받아야 한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신도들의도움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했다. 선교사들이 숨어살던 집에는 그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조선 사람들이 있었다. 집주인, 복사, 마부, 가마꾼, 하인 등의 도움이 없이는 숨어 지낼 수도 없었으며, 복음을 선포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터였다. 이제 우리는 우리 교회사에서 선교사의 업적에 가려져 왔던 그들의 삶과 믿음에 대해서도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선교사의 복사

 

박해시대 이래 선교사 주변에는 ‘복사’(服事)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날 ‘복사’는 미사전례 때에 사제를 돕는 이를 말하지만 박해시대의 복사는 선교사와 지근거리에서 그들을 보호하고 도움을 주던 사람이었다. 박해시대의 복사는 선교사의 수행비서와 교회 사무원, 그리고 제의방 관리와 미사 복사를 겸하고 있었다. 한편, 리델 주교에게 최선일 이외에 오원여가 복사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두 명 이상의 복사를 둔 선교사도 있었다.

 

복사의 자격과 직능에 대한 명문 규정은 1887년에 간행된 “조선교회 지도서”에 수록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복사는 선교사를 수행하여 공소를 방문하고 선교사에게 교우들을 소개하며, 교우들의 말을 선교사가 알아들 수 있도록 부연 설명하는 구실을 했다.

 

때로는 선교사 대신 강론을 했고, 교리를 가르치는 등 선교활동에서 중요한 일을 해냈다. 복사는 고해를 준비시키고, 예비신자를 가르쳤으며, 고해 전송고 후송, 영성체 전송을 교우들을 위해 바쳐야 했다. 또한 제대를 준비하고 보미사, 곧 미사 복사를 하고 성사를 집전할 때는 초와 제병 등을 준비했으며, 신자 명부를 작성하는 일도 했다.

 

복사가 되려면 너무 젊거나 늙어도 안 되고, 한문을 알아야 하고, 열심하고 똑똑하고 현명하며, 교리를 잘 알아야 했다. 혼자서 여교우와 함께 있어서는 안 되며, 술을 마시는 데에도 조심해야 했다. 또 선교사의 옆방에서 잠을 자고, 선교사가 식사할 때는 옆에 있어야 했다. 한마디로 복사는 선교사를 섬기는 사람인 동시에 선교사 생활의 증인이었다.

 

경우에 따라서 복사들은 선교사와 함께 적극적으로 선교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기해박해(1839년) 때 순교한 정하상 성인은 유방제 신부의 복사였으며, 앵베르 주교가 입국한 이후 그의 복사가 되어 선교활동에 전념했다. 체포된 뒤에도 그는 유려한 문장으로 ‘재상에게 올리는 글(上宰相書)’를 써서 천주교 신앙을 변호했다. 그리고 샤스탕 신부의 복사였던 현석문 성인은 기해박해에 관한 자세한 기록인 “기해일기”를 지었다. 이러한 업적은 복사가 선교사의 단순한 수행비서가 아니라, 당시 조선교회의 대표적 지식인으로서 선교사와 함께 교회를 이끌어가던 사람들임을 알려준다.

 

그러나 박해시대 모든 선교사들이 좋은 복사를 만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다블뤼 주교는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장 고통 받는 것은 좀 능력이 있는 신자들이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아무 복사나 신부를 인도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수단이 있고 학식이 있고 슬기롭고, 이 일에 훈련을 쌓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지금은 전혀 없다시피 합니다. 이런 사람 없이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서 어떤 주막에 발을 들여놓을 수도 없고 조금만 길을 가려 해도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을 만나게 됩니다.”

 

 

복사와 신부 주인, 마부 그리고 가마꾼의 죽음

 

선교사의 복사들 가운데는 병인년(1866년)에 시작된 박해 과정에서 순교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경상도 함안 미나리골 출신 증인이었던 구 다테오는 메스트르 신부의 복사였다. 23세의 청년이었던 그는 1866년에 진주 포교에게 잡혀 들어가, 흠씬 두들겨 맞고 골병이 들어 7일 만에 죽었다. 공주 반이울에 살던 김성우는 최양업 신부의 복사였다. 그는 1868년 5월 체포되어 서울로 끌려가 순교했다. 페롱 신부의 복사였던 황 요한도 1867년 서울로 잡혀와 순교했다. 리델 주교의 복사였던 최선일 요한은 1877년 12월 26일 리델 주교가 체포될 때 아내와 함께 잡혀 들어가 옥중에서 순교했다.

 

조선왕조에서는 외부인의 숙박이나 식사를 책임지고 돌보는 사람을 주인(主人)이라 불렀다. 이 관행에 따라 박해시대 교회에서는 선교사에게 장기간에 걸쳐 숙식을 제공하는 사람들을 ‘신부 주인’ ‘주교 주인’ 등으로 불렀다.

 

김 베드로는 공주 진밭에 살 때 안(다블뤼) 주교 주인이었다. 그는 병인박해 때 자녀와 함께 순교했다. 유방제 신부댁 주인이었던 김순장 필립보도, 최양업 신부 주인이었던 이병교 또한 이 와중에 순교했다. 30여 세의 김춘삼은 전라도 진산 가새벌에 살 때 ‘양인 주인’이어서 서울로 끌려가 순교했다. 순교자 서 아우구스티노, 김영횡 등도 신부 주인으로 불렀다. 신부 주인이 복사, 회장을 겸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일반적으로는 역할이 나뉘어 있었다.

 

선교사의 집에는 ‘주인’ 이외에 ‘식복사’가 별도로 있었는데 남성 교우들이 맡는 일도 있었다. 1910년대를 전후해서 뮈텔 주교의 식복사는 홍 베르나르도였다. 그러나 병인박해 순교자 가운데에는 여성 식복사 몇 명이 확인된다. 페레올 주교의 식복사였던 강 도미칠라, 베르뇌 주교의 식복사를 거쳐 브르트니에르 신부의 식복사를 한 박 마르타, 다블뤼 주교의 복사를 3년간이나 한 충청도 홍주 거더리 사람 손조이 등이다. 또한 식복사와는 달리 침모를 별도로 두었던 선교사도 있다.

 

어떤 선교사는 마부나 가마꾼을 두기도 했다. 공소방문 때에 선교사들은 말을 타고 다니기도 해서 마부가 필요했다. 순교성인 조화서 베드로는 선교사의 마부였다. 베르뇌 주교의 마부였던 황명현은 일가 세 사람과 함께 순교했다. 개항 이후 선교에 나선 프랑스 수녀들도 마부를 두었다. 한편, 베르뇌 주교에게는 마부 이외에 가마꾼이 있었다. 베르뇌 주교의 가마꾼 김부업은 병인박해로 주교가 체포될 때 몸을 피해 고양군 별지고개 주막에 몸을 의탁하여 짚신을 삼아 팔고, 그 아내는 주막의 식모로 있다가 체포되어 부부가 함께 순교했다.

 

그러나 선교사의 식구들 가운데에는 배교한 사람도 있었다. 충청도 남포 여흥골에 살던 이한철은 선교사의 마부였으나 체포된 뒤 ‘유다’가 되어 신자들을 잡아들이는 데 앞장섰다. 베르뇌 주교의 하인 이선이도 배교하여 관원들이 주교를 취재하는 데에 적극 협조했다.

 

 

남은 말

 

선교사와 한 지붕 밑에서 살던 복사나 신부 주인, 식복사와 침모, 마부나 가마꾼들은 대부분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고 순교의 길을 걸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성인으로 선언된 사람도 여럿 있다. 그들의 죽음이 가진 가치가 선교사보다 낮다고 할 수는 없다. 또한 이들의 삶이 선교사의 삶보다 거룩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없다.

 

그들은 복음화를 위해 선교사 못지않은 몫을 해냈다. 그들이 없었다면 선교사들은 자신의 몸을 누일 곳도 찾지 못했을 터이며, 신자들을 찾아서 미사를 집전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복사나 신부 주인의 역할을 새롭게 평가해 보면 그들은 선교의 공동주역으로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박해시대 선교사의 복사와 신부 주인, 식복사와 침모, 마부나 가마꾼 그리고 그 밖의 하인들도 자랑스런 신앙선조임에 틀림없다.

 

* 조광 이냐시오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로 “한국 천주교회사1, 2”, “조선 후기 천주교회사 연구”, “신유박해 자료집” 등 저술활동을 통하여 한국교회사 연구에 힘쓰고 있다.

 

[경향잡지, 2006년 6월호, 조광 이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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