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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박해시대 신자들의 신관 - 대군대부이신 천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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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10-19 ㅣ No.177

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 박해시대 신자들의 신관

 

대군대부이신 천주님

 

 

가톨릭 신앙은 유일신 하느님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는 교회가 세워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존중되는 원칙이다. 조선후기 18세기 말엽 이땅에 세워진 천주교의 신앙대상도 당연히 유일신 천주 곧 하느님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그분을 교회창설 당시에는 ‘천주(天主)’ 또는 ‘천주님’이라고 불렀다. 이 천주님은 유일신이요 성부 · 성자 · 성령의 삼위일체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조선후기 사회에서 제시된 ‘천주’라는 개념은 조선의 사상적 전통과는 다른 새로운 개념이었다. 이 개념을 쉽게 이해하고자 우리 선조들은 어떤 노력을 했고, 새롭게 터득한 천주님을 어떻게 받들었을까?

 

 

우리 전통 속의 하느님

 

중국에 그리스도교가 새롭게 전래된 시기는 16세기 말엽이었다. 이때 중국에 진출한 마테오리치를 비롯한 예수회 선교사들은 유일신 하느님을 좀더 쉽게 이해시키고자 고대중국의 사상에 언급된 ‘상제(上帝)’의 존재를 주목했고, ‘상제’가 유일신이며 인격적 존재였다고 이해했다. 그리고 유교 원전에 등장하는 이 유일신에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론을 접목시키면, 유학사상은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 완벽한 형태로 완성될 수 있다고 믿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교는 유교를 보완하여 완벽하게 해주려는 이론’임을 뜻하는 보유론이란 단어가 나타났다.

 

그런데 우리나라 선비들은 중국의 연구자와 같은 수준에서 독서하고 사고했다. 그들은 이미 유교의 경전을 꿰고 있었다. 따라서 18세기 우리의 선비들은 유교의 ‘상제’를 천주교의 천주로 성명하는 데에 대체로 동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제를 공경하듯이 천주도 받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편, 당시 민간에서도 간혹 천주라는 말을 썼다.

 

19세기 중엽에 조선에 입국했던 선교사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상제 개념, 또는 신관에 대해 조사했다. 그 결과 조선인들이 원래부터 뚜렷한 유일신 사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19세기의 조선교회에서는 보유론에서보다 더욱 선명히 천주의 존재를 증명하고 그 속성을 이해시키려 했다.

 

18세기 말엽 조선의 일부 유학자들은 보유론이 제시한 바와 같이 유교의 상제와 천주교의 천주가 동일하다는 설명에 동의했다. 보유론은 분명히 이들이 천주교에 접근하는 데에 기여했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천주교 교리에 따라 삼위일체적 천주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다. 이로써 그들은 천주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에만 머물던 일반 유학자들과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그들은 천주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며, 상선벌악을 주관하심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천주 성자께서 인간을 위해 세상에 내려와 수난 부활하셨다는 사실까지도 믿게 되었다. 이러한 가르침에 가장 정통했던 초기 신자로는 정약종을 들 수 있다. 이 믿음을 가진 이들이 세례를 통해서 천주교 신자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들은 보유론을 극복하면서 진정한 천주교 신앙에 이르렀다.

 

이렇게 입교한 초기의 신도들은 천주교의 종지, 곧 그 중심되는 가르침을 뚜렷이 이해할 수 있었다. 1801년 박해 때 순교한 홍교만은 천주교의 종지는 “천주를 존경하고, 우러러 모신다.”(尊敬上帝 大越上帝)는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1801년 전주에서 죽음을 당한 유관검은 “천주를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 사람을 사랑하기를 자기 몸 같이 하라.”는 가르침이 중심임을 말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김백순은 천주교의 종지가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을 승인하고 믿는 것임을 역설했다.

 

그리하여 신자들은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했고 그분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세상에 내려와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 위에서 수난을 당했으며 부활 승천했음을 새롭게 믿게 되었다. 이 믿음은 그들의 일상생활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곧, 그들은 천주께서 창조한 사람의 영혼이 가장 귀중한 것이므로, 신분의 귀천이나 남녀의 차이를 두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천주의 모상에 따라 창조된 사람이 만물 중에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교회의 가르침은 개인의 인격이나 양심의 존재를 확인하는 근거로 제시되기도 했다. 인간평등과 존엄성에 대한 이와 같은 생각은 신분의 차별을 당연시하던 당시의 일반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들이 터득한 천주교 신앙은 이렇게 조선 사람들의 어두운 눈을 일깨워 주는 데에 새롭게 기여하고 있었다.

 

 

대군대부이신 천주님

 

박해시대 신도들은 체포되어 신문을 당할 때 하느님 존재에 대한 변호를 감당해야 했다. 그래서 이도기와 같은 신자는 자신을 신문하던 관장이 “보이지 않는 천주를 어떻게 믿는가?”라고 준엄하게 꾸짖으니, “안 보고서는 믿을 수가 없습니까? 사또께서는 감영을 지은 일꾼을 보았습니까? 우리가 오관이라고 부르는 것으로는 소리와 빛깔과 냄새와 맛 같은 것밖에는 짐작할 수 없고 원리나 이치나 비물질적인 것은 모두 정신으로 구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신앙 때문에 체포된 무지렁이, 농투성이들도 “서울에 계시는 임금님을 보지는 못했지만, 시골백성이라도 임금님이 계시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알 수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신도들은 천주와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기도 했다. 곧, 천주께서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온 세상의 가장 높으신 임금이요 아버지였다. 천주께서는 모든 사회제도를 만들어주셨고, 공자나 맹자, 임금과 신하를 창조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천주님을 “큰 임금이며 큰 아버지”, 바꾸어 말하면, “가장 위대한 임금이며, 모든 이들의 공통된 아버지”란 뜻에서 대군대부(大君大父)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인간의 관점에서만 볼 때, 천주님은 대부모이기도 했다.

 

천주교가 전래되던 당시 조선사회에서는 임금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도가 가장 중심적 가치로 인정받고 있었다. 주문모 신부를 비롯한 우리 신앙의 선조들도 물론 충성과 효도의 중요성에 동의하였고, 하느님에 대해서도 충효를 중시하던 우리나라의 전통적 가치관과 긴밀한 연결을 맺으며 이해했다. 그들은 천주교를 대군대부에게 충효를 드리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당시 사회는 천주교를 “아비도 무시하고, 임금도 무시하는”무부무군의 가르침으로 규정하고 탄압을 정당화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도들은 충효를 중시할 뿐 아니라, 대군대부에게 대충대효를 드린다는 대항논리를 개발하여 신앙을 정당화했다.

 

그들은 “임금께 대한 충효의 근본도 천주의 명령이요, 부모께 대한 효도의 근본도 천주의 명령이다.”라고 선언하면서 죽음을 각오하고 천주께 대충대효를 드렸다. 그들은 “하늘과 땅과 천신과 사람을 창조하신 위대한 천주를 섬기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남은 말

 

18세기 말엽 우리나의 선비들은 유교적 보유론에 입각하여 천주의 존재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그들은 천주교의 천주와 유교의 상제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 차이를 훤히 알게 되었다. 그들은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창조주요 주재자인 하느님, 천주를 받들었다. 이 천주를 대군대부로 이해했고, 대충대효를 드려야 할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천주는 우리의 전통과는 무관한 다른 나라의 신이 아니라 ‘나의 천주님’ 그 자체였고, 당시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존중하던 충성과 효도라는 가치를 천주께 드리고자 했다. 이는 천주교 신앙이 우리 전통사상과 결합하여 신앙의 선조들에게 새롭게 인식되고 있음을 나타내준다. 천주교 신앙과 충효가 결합하여 하느님에 대한 굳은 믿음이 일어났다. 그들은 순교를 하느님께 대한 충성과 효도 실천으로 생각했다. 여기에서 우리 신앙이 이땅에 뿌리를 내려가는 과정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 조광 이냐시오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로 “한국 천주교회사1, 2”, “조선 후기 천주교회사 연구”, “신유박해 자료집” 등 저술활동을 통하여 한국교회사 연구에 힘쓰고 있다.

 

[경향잡지, 2006년 9월호, 조광 이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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