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자료

2010-1213.....대림 3 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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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0-12-17 ㅣ No.948

대림 3 주간 월요일

민수기 24,2-7.15-17 마태오 21,23-27

2010. 12. 13. 등촌3동

주제 : 내게 오는 축복의 소리

우리가 세상살이에 듣고 싶어 하는 가장 좋은 소리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 첫 번째 자리에는 사랑이라는 말이 포함된 표현일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그 힘들다고 할 환경을 이겨내게 해주는 가장 좋은 말, 가장 강력한 힘을 내게 해줄 말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는 중요성을 따질 것은 아니겠지만, 칭찬과 축복의 소리가 그 뒤를 이을 것입니다.

 

오늘 민수기 독서는 하느님의 뜻을 세상에서 거부할 수 없다고 여겼던, 히브리민족이 아닌 이방민족의 사람이었던 발라암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처음으로 구약성경을 대하던 때에, 저는 히브리민족도 아니면서 히브리민족을 축복해주는 발라암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을까.... 하고 놀랬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생각한다면, 같은 민족이라서 칭찬을 받고 축복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당연한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좀 더 시간이 지난 다음에 하게 되었습니다.

 

발라암이 히브리민족을 보게 된 이유는, 히브리민족이 가나안을 향해서 간다는 일이, 모압 땅의 임금을 두렵게 했다는 일 때문에, 예언자요 신탁을 실행하는 힘을 빌리려고 모압 임금 발락이 그를 불러 높은 산에 오르게 한 탓이었습니다. 발락의 부탁으로 그 자리에 나오기는 했지만, 발라암은 발락의 청을 들어주지 않고, 자신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가 선언한 소리는 모압의 멸망에 대한 선포였습니다.

 

세상에 사는 어떤 사람이 나에게 축복의 기도를 보내고 있을까요? 지금의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 축복의 소리를 들을 만큼이 아니라면, 어떻게 행동하고 세상에서 살 때, 그 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세상일에서 축복과 칭찬을 듣는 것보다는 비난과 비판을 걱정하는 것이 순리인데, 그렇게 다르게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그나마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에게 그 일이 가능한지는 말하기가 어렵다고 해도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던,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예수님이 세상에서 자신 있게 활동하시던 삶의 근거를 묻습니다. 마치도 그 대답을 듣기라도 한다면, 그 뜻을 받아들일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이 드러낸 삶의 모습이란, 기회주의였습니다. 이 기회주의가 나쁜지 좋은지는 상황따라 다를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어떻게 선택하느냐 하는 차이뿐입니다.

 

오늘 기억하는 루치아성녀는 300년대 초반, 지금의 이탈리아 남쪽, 시칠리아 섬에서 살았던 동정녀였습니다. 박해자의 고문과 박해를 믿음과 신앙으로 이겨낸 분으로 알려진 분입니다. 그녀가 어떻게 살았는지, 우리가 지금 그대로 본받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옛날에 드러냈던 성녀의 삶을 보면서, 우리는 과연 지금 세상에서 무엇을 드러내며 살 수 있는지 자신을 돌아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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