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자료

2010-1205.....대림 2 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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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0-12-17 ㅣ No.944

대림 2 주일 (가해)

이사야 11,1-10 로마 15,4-9 마태 3,1-12

2010. 12. 5. 등촌3동

주제 : 하느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때에

세상 삶이 하도 쉬워서, 모든 일들에 휘파람을 불면서 기분 좋게 맞이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모든 사람의 상황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사람은 없기에 이런 의문에 대답하는 일은 힘든 일입니다. 현실은 그러하지만, 우리가 모든 일에 실망을 앞세우는 것도 권장할 일은 아닙니다.

 

어제는 친구였던 사람이 오늘은 적으로 바뀔 수도 있고, 오늘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사람이 내일은 내 친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의 삶이라면, 단정적으로 모든 것을 가차 없이 잘라내는 것보다는 보다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할 것입니다. 내가 원수처럼 여기는 그 사람만 없다면, 세상은 아주 평온하고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생각에 따라서 내가 없어져야 하는 존재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때에 절대적인 가치를 갖는 기준을 아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현실을 알고 있는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의 무서운 선포를 들었습니다.

 

세례자요한이 광야에서, 예언자로 활동할 준비를 얼마나 했는지 알아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때가 되었을 때, 그가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주면서 했던 선포가 많은 이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말이었고, 부담스러운 소리였으며, 독설이 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살고 있는 곳이 요르단강도 아니고, 세례자요한의 선포를 직접 듣는 것도 아니지만, 복음을 통해서 들은 이 세례자요한의 말씀이 우리에게도 부담스러운 것이 되지 않고, 독설이 섞이지 않은 소리가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세상에서 흔히 하기 쉬운 것처럼, 말하는 자의 입을 틀어막아서 아무런 소리도 새어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까요? 아니면 우리 귀에 들려오는 소리가 부담스러운 것이 되지 않도록 내 삶의 모습과 태도를 바꾸는 것이 옳겠습니까? 이렇게 질문하면, 우리가 그 대답을 쉽게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대답을 쉽게 한다는 것과 내가 올바르게 살고 있다는 얘기가 같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생명체에게 뿌리는 그 생명을 유지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드러내는 삶의 모양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은 그 생명을 중지시키는 도끼를 뿌리로 불러들인다는 것이고, 그렇게 된다는 것은 그 생명체가 이제는 세상에서 살기를 포기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시대와 상황은 다르지만, 요르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이 외쳤던 소리를, 바르게 이해한다면, 세례자요한의 선포는 우리더러 계속 생명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방법을 찾으라는 권고로 알아들어야 하는 것이지, 내가 원하지 않는 소리를 한다고 그 입을 틀어막을 방법을 찾아도 좋은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올바른 방법을 찾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회개입니다. 문제는 이 회개를 우리가 얼마나 어렵거나 쉬운 것으로 알아듣느냐는 것입니다.

 

회개는 쉬운 것이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의미를 제대로 안다면 말입니다. 때로는 내 마음과 생각을 바꾸는 일을 죽음과 비교하여 거부하는 경우도 말할 수 있습니다. 세례자요한이 말하는 ‘회개’란 무엇이겠습니까? 구약성경에서 시작된 이 말의 처음 의미는 ‘생활방식을 바꾸어 생활전체에 하느님을 향하여 방향을 정하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것이 ‘하느님께 헌신하여 실제 생활을 개선한다는 의미와 내적인 삶의 방향전환’도 함께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하는 말입니다. 세례자요한이 요르단강에서 외친 소리를 부담스러운 것으로 들었던 사람들은 이 ‘회개의 의미’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우리가 하느님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생명을 보존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내가 알곡이 되어 주님께서 준비하시는 곳간에 갈 수 있는 보증수표가 되게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생각만 담은 회개라는 낱말로는 부족한 것입니다.

 

이사야예언자가 보았던, 메시아의 나라, 하느님의 나라는 과연 우리 삶에 실현될 수 있는 것일까요? 세상에는 정의와 신의가 흐르고, 세상의 피조물들이 화목하게 살아,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지금은 머나먼 꿈같은 이야기로 들린다고 해도 그러한 삶을 이루는 시작은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메시아왕국에 살기 위한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대림 2주일입니다. 전례력의 순서나 시간의 흐름을 계산하고 셈하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하느님께서 우리 삶에 찾아오실 것을 준비하는 큰 잔치에 앞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하느님께서 찾아오심이 축복이 되기를 바라는 만큼, 진정으로 내 삶이 다른 사람에게도 기쁨과 행복이 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내 몸으로 실현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 삶이 나 혼자만 기쁘다면, 진정한 행복은 아주 멀리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에 맞추어 우리도 겸손한 선물을 드릴 수 있도록 준비하는 대림 둘째 주간을 지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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