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조선어 성가집에 대한 분석, 연구: 서양음악 선율에 밀려 천주가사 음악성 상실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02 ㅣ No.84

[한국 근현대 100년 속의 가톨릭 교회] (8) ’죠션어셩가집’에 대한 분석, 연구


서양음악 선율에 밀려 천주가사 음악성 상실

 

 

한국 근현대 100년과 함께 성장해온 가톨릭교회에서 1945년 해방 이전까지 공식절차를 거쳐 출판된 성가집은 모두 16종(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서 발행된 성가관련 출판물들은 제외)이다.

 

이들 중에서 1921년과 1923년에 각각 발행된 ’사리원성가집’(경성교구)과 ’朝鮮語聖歌’(성베네딕도회 덕원수도원)는 분실된 상태이다. 그러기에 1924년 경성교구에서 발간한 ’죠션어셩가집’이 현재로서는 가장 오래된 공식성가집이다.

 

’한국 근현대 100년 속의 가톨릭교회음악’에 대한 첫 연구과제로 다룬 이 주제는 ’죠션어셩가집’에 대한 지금까지 해석을 한국 가톨릭교회 문화현상에 대한 사실해석과 아울러 한국문화와의 관계 속에서 재해석하기 위한 것이다. 이 연구는 통상적으로 ’서구화 곧 근대화’라는 등식 하에 변모되었던 종래의 여러 연구들에 대한 상황을 보편적 문화구조 시각과 관련지어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또한 이 연구는 과거의 문화적 현실을 단순히 ’상상적 박물관’으로 묘사하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고 그것의 현재적 측면, 즉 그것의 목적과 기능의 상관관계를 한국근대음악 역사와 함께 밝혀내는 데 있다.

 

다시 말하면, ’죠션어셩가집’을 한국 가톨릭교회의 전례적·신앙적·음악적 가치에 기여하는 증거와 자료로만 관찰하기보다는 교회 밖 동시대 사람들의 사회적·문화적 문제로도 인식하고자 한 것이다.  

 

’죠션어셩가집’에 대한 구체적 언급과 관련된 대표적 선행연구로는 샬트르 성 바오로수녀회 오숙영 수녀의 ’천주교 성가 가사고(天主敎 聖歌 歌詞考)’와 같은 수도회 장안숙 수녀의 ’한국 가톨릭성가의 역사적 변천에 관한 연구’가 있다.

 

이 두 논문은 ’죠션어셩가집’이 단순히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프랑스 성가 일색으로 편집된, 그래서 당시 외래문화 강제수용의 한 단면으로만 알려진 것과는 달리 성가집의 상당 부분에 천주가사와 같은 우리 현실이 반영되고 있음을 밝혀냈다.

 

오숙영과 장안숙 이외 지금까지 다른 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성가집 가사와 선율을 통해 드러난 문제들을 관찰한 후 그에 대한 문화 사회사적 평가를 정리하고자 한다.

 

’죠션어셩가집’에 수록된 성가들은 1924년 당시는 물론 그 이전에도 상당기간 구전 또는 등사본 등의 경로를 통해 한국가톨릭교회에 보급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수록곡 68곡은 미사, 성체, 대림, 성탄, 사순, 부활, 승천, 성심, 성령, 성모, 성요셉, 천사 등의 주제로 분류된다. 이것은 ’죠션어셩가집’ 기능이 지극히 전례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단면이다.

 

1866년부터 시작된 병인박해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된 한국 가톨릭교회는 새로운 외국인 선교사들의 입국과 한국인 사제들의 양성과 함께, 1899년 교민조약에 의해 신앙의 자유가 법적으로 보장되기까지 교회재건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죠션어셩가집’ 출현은 그 배경이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았을지라도, 그러한 일련의 노력들에 의한 가시적 성과의 하나임은 인정되어야 한다.

 

’죠션어셩가집’에 수록된 성가 가사와 선율을 분석한 결과 우선 노랫말과 천주가사와의 수용관계에 대한 다양한 시각의 평가가 이루어졌다. 가사 행간 리듬이 일정할 수 있도록 노랫말의 기본구조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으리라 여겨지는 ’동일한 선율 반복’내지는 ’모방변주’ 형식이 주목할 만하다. 달리 설명하면, 언어적 리듬의 규칙성과 선율의 반복구조로 요약된다.

 

’죠션어셩가집’에는 조선시대 대표적 문학 갈래인 가사(歌辭) 양식에 기독교적 가치관을 담아 신앙을 노래한 천주가사가 많이 실려 있다. 천주가사를 근대로의 전환기 내지는 근대시기 변모의 한 양상으로 본다면  ’죠션어셩가집’에 대한 지금까지의 평가는 조금 다른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당시 근대 서양식 교육을 받은 이들에게 서양음악은 새로운 힘의 언어였다. 외래문화 충격이 대화의 틈도 없이 수용으로 직결되는 시대적 상황에서 살펴본다면, ’죠션어셩가집’은 규칙성을 띤 어조 변화를 음영형태로 자연스럽게 적응시킨 천주가사의 음악성이 서양성가에 밀려 그 본질을 잃어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실례이다.

 

동시에 서양음악의 토착화 과정에 천주가사가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들을 제공한다.

 

천주가사는 용어에서 보듯이 ’천주’라는 새로운 서구사상과 ’가사’라는 전통적 양식의 융합을 나타낸다. 이는 서구적 내용의 한국적 형식화라는 입장이나 혹은 외래문화의 내적전승이라는 양면성으로 규정지을 수 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는 한반도 역사와 국문학계의 사정 등을 고려해볼 때, 전통의 고수와 혁신 문제는 ’죠션어셩가집’에 수록된 성가들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성가집 분석 결과는, 거부하기에는 너무나 가까운 현실이 되어버린, 그래서 이제는 살아갈 수밖에 없는 외래문화의 ’수용’이라는 난관에 한국 가톨릭교회 성가들이 어떻게 대처하였는지 사례를 보여준다.  

 

’죠션어셩가집’에 수록된 성가들의 언어적 규칙성과 음악의 반복구조는 한국 가사문학과 서양성가선율이라는 이질적 두 문화의 ’충돌’이, 처음에는 조금 거칠어 보이지만, ’만남’과 ’대화’로 이어질 수 있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죠션어셩가집’ 연구는 한국 가톨릭교회 종교문화로서의 가치, 교회 안팎의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공통문화로서의 가치, 그리고 시공을 초월한 보편문화로서의 가치를 조금이나마 증명하고자 노력하였다.

 

물론 특정시대와 특정지역 문화를 따로 떼내 부분끼리의 유사성만을 강조하는 논리모순에 주의해야 한다. 또 교회음악 문화로서의 의의는 같은 시대 한국 근대문화와의 관계 속에서만 그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죠션어셩가집’ 성가들을 완성도 높은 예술작품이라고는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1924년을 전후한 그 시대의 문화적 현실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에 동의를 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개항 이후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당시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혼란스러운 문제들은 고국을 떠나온 외국인 선교사들에게 조선과 조선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 그리 큰 보탬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이로부터 발생되는 문화적 차이와 충돌은 외국인 선교사들을 우리 문화에 대한 몰이해와 문화적 해체에 이르는 위험까지 노출시켰을 것이다.

 

’죠션어셩가집’은 소임에 충실해야 하는 프랑스 선교사들과 전통계승 및 외래문화의 자주적 수용이라는 어휘자체가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졌을 법한 한국 가톨릭신자들의 합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죠션어셩가집’이 당시 어려운 사회에 음악문화로서 그 기능과 목적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 역사의 흔적이라고 말하기 어렵게 한다. 반봉건과 반제국주의라는 사회 정치적 이념을 위해 조선시대 후기부터 해방시기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대음악사에 기록된 그 많은 활약상들과 비교하면 ’죠션어셩가집’은 변명의 여지없이 비판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신교육을 통한 근대로의 열망이 서양음악의 수용을 용이하게 하였다면, 근대정신으로 무장한 지식인들(사회인과 종교인을 구별할 필요조차 없이)은 새로운 노래에 그들의 이념을 노래했다.

 

’죠션어셩가집’은 사회사적 차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가집 밖의 교회노래와 가톨릭신앙을 고백한 사람들의 음악영역에 있어서의 사회참여에 대한 연구가 더 절실히 요구된다.

 

[평화신문, 2003년 9월 28일, 김수정(가톨릭대 인간학연구소 전임연구원), 김원철 기자]



445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