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자료

2011-0206.....연중 9 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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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1-03-05 ㅣ No.1010

연중 9 주일 (가해)
 
 
신명기 11,18-18.26-28.32       로마 3,21-25.28        마태오 7,21-27
2011. 3. 6. 등촌3
 
 
주제 :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법규
세상에는 많은 법과 규정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에 대한 태도를 묻는다면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맘에 들지 않는 것도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법이 되고 규정으로 내게 다가온 이상, 그것들이 우리들의 삶에 대하여 갖는 힘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사람의 삶을 올바르게 이끌자는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 법이나 규정이라고는 합니다만, 그 많은 법과 규정들이 우리들 삶에 골고루 좋은 결과를 내는지 확실하지도 않습니다.
 
세상의 법과 규정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 교회공동체에도 법과 규정은 있습니다. 하지만 법이나 규정이라는 표현을 똑같이 쓰기는 해도, 의미는 아주 다릅니다.
 
세상의 법이나 규정은 그것에 대해 올바른 자세를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벌을 주기도 하고 벌금을 내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앙의 법과 규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 법규를 소홀히 하면 삶에 손해가 온다고 우리는 체험으로 알지만 신앙의 법규에는 그런 것도 없습니다. 반대로 신앙의 법규들을 소홀히 대하니, 세상의 것들과 달리 짜릿한 쾌감을 얻는다는 잘못된 태도도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뜻을 담았다고 하는 법규를 갖고 노는 기쁨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며, 하느님의 법규를 실천하는 사람들을 어리석게 바라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두 가지를 이렇게 대조시키면, 제 표현이 지나친 것일까요?
 
오늘 첫 번째 독서 신명기에는 하느님의 법규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그 하느님의 법규를 마음과 정신에 새기고, 팔뚝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이라고 강조합니다. 유태인들 가운데는 이 규정을 글자 그대로 지키면서 사는 사람들도 있기는 합니다.
 
모세는 그렇게 하느님의 뜻을 명령[=神命]’으로 남기면서, 그 명령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가 삶에 축복을 가져오거나 저주를 불러오는 기준이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모세가 전하는 하느님의 명령이 글자 그대로 내 삶에 실현될 거라고 대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생각보다는 많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자비하신 분이니 내가 그분의 뜻을 뒤로 미루어도 큰 탈이 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 세상의 일을 먼저 해서 급한 불을 끄고, 그 다음에 시간이 남거나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에, 그때에 하느님의 뜻을 대하는 척만 해도 충분할 거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도 나는 하느님 앞에 성실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사람은 세상에서 말을 먼저 합니다. 말보다 행동을 앞세우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말을 먼저 하고 난 다음에, 시간이 많이 흐르기 전에 행동을 덧붙여 하기라도 하면 다행인데, 실제로 세상에서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이나 언행일치(言行一致)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누구를 탓할 일도 당연히 아니지만 말입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예수님의 선언이 오늘 복음의 첫머리에 나옵니다. 여러분은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어디까지가 하느님의 뜻이라서 바꿀 수 없고, 어디서부터는 사람이 마음대로 바꾸어도 좋은 사람의 뜻을 담는 것이라고 생각할까요?
 
신명기 독서의 말씀과 마태오복음의 오늘 말씀은 같은 내용을 전하는 서로 다른 표현입니다. 글자로 쓴 둘 사이의 시간 간격은 1000년 정도라고 합니다. 그렇게 많은 세월이 차이난다고 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자세에는 변함이 없다고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세상살이에서 나는 현명하고 똑똑하게 사는 사람이라는 평가는 누구나 듣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남들이 나에 대해서 해주는 평가가 좋기를 바라려면, 우리는 내 삶을 통해서 그 값에 해당하는 것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때 내어놓아야 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때로는 돈이 될 수도 있고, 시간이 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이웃을 향한 남다른 자세가 될 수도 있습니다.
 
모래가 아니라, 튼튼한 기초를 찾아서 그 위에 집을 짓는다는 것은 아주 훌륭한 일입니다. 적어도 내가 세운 집이 무너질 일은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내가 삶에서 정말로 튼튼하고 확실한 기초를 찾고 있는지 살펴야 할 일입니다.
 
하느님은 사람을 차별대우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느님을 차별대우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사실이 그러할 테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내가 드러내는 차별대우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행동합니다.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아주 큰 사랑을 베풀어주셨지만, 우리는 그 하느님의 행동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제대로 우리의 삶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개신교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 삶에 믿음은 율법보다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내가 올바르게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 믿음, 나를 하느님께로 이끌고, 내가 하느님의 뜻을 알도록 해준다는 이 믿음은 행동으로 그 얼굴을 드러낸다는 중요한 논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의 훌륭한 기초인, 이 튼튼한 반석은 무엇이겠는지 올바르게 찾아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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