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자료

2011-0303.....연중 8 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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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1-03-03 ㅣ No.1007

연중 8 주간 목요일 - 홀수 해
집회 42,15-25                      마르코 10,28-31
2011. 3. 3. 등촌3
주제 : 우리가 아는 하느님
사람은 눈에 보이는 대상을 통해서 아주 큰 영향을 받고 삽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도 그런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세상에만 붙잡혀 산다면, 오로지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만이 최고라고 여긴다면, ‘본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헌데, 전통 철학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을 현상이라고 말하고 그 의미를 달리 봅니다. 현상이라는 말은 변하지 않는 기본성질이 아니니까, 영원하지 않고 감각적이며 변한다고 설명합니다.
 
오늘 미사에 오신 분들을 포함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과연 세상의 일들을 어떻게 바라보는 사람인가에 따라 그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반드시 현상의 가치는 떨어지는 것이고, ‘본질은 가치가 더 높다는 전제로 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해도 말입니다. 신앙에 성실하다고 여기는 우리는 과연, 눈에 보이는 현상 안쪽에 있는 본질을 바라보는지, 혹시라도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본질보다는 현상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구별해야 한다는 것입....
 
오늘 집회서 독서말씀은 현상 안쪽의 본질에 대한 과거의 통찰이고 반성입니다. 반면에 복음에 등장한 예리코의 소경은 본질보다는 현상에 더 큰 관심을 가졌던 사람으로 나옵니다. 현상에 더 큰 관심을 가진 예리코의 소경이었던 사람이 잘못된 삶을 살았다고 비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런 얘기를 통해서 우리는 본질로 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물의 본질을 보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본질은 육체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눈에서 마음의 눈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그 길로 가지 않기에 배우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어떤 분이시겠습니까? 말로 설명하는 것이 최선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말로 설명될 수 있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니 내가 아는 하느님에 대해서 말로 설명은 할 수 있지만, 내가 그렇게 알고 느끼는 하느님이 내 말을 통해서 상대방의 마음에도 같은 결과를 만들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리코의 소경이었던 사람이 맞이한 삶의 변화는 우리 삶에도 수시로 일어납니다. 다만 우리가 올바르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리가 갖는 욕심과 생각이 자꾸만 커질 것이기에 정작 놀라운 일은 내 삶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본질에 다가서려면 현상을 파고들어야 합니다. 넋을 놓고 살거나 누군가가 나보다는 더 열심히 살 테니, 나는 그 덕만 보면 되지 하는 자세가 내 삶에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소경이었던 사람은 자기 삶에 일어난 놀라운 알아차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고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어떤 자세로 사는지 잠시나마 살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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