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자료

2011-0220.....연중 7 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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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1-02-19 ㅣ No.998

연중 제 7 주일 (가해)
 
레위기 19,1-2.17-18            1코린 3,16-23          마태 5,38-48
2011. 2. 20. 등촌3
주제 : 사랑의 방법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말은 사랑한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할 때, 누구나 바랄 사랑은 내 귀만 울리고 행동은 드러나지 않는 가짜 사랑을 가리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어떤 사랑이 진짜이고, 어떤 것이 가짜인지 구별할 능력을 키우는 것은 참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이러저러한 일을 겪다보면, 한두 번은 그 기준을 세울 수 있지만, 우리 삶을 계속해서 좋은 길로 인도하는 올바른 기준을 얻으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오늘은 연중 7 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들은 말씀은, 우리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남기고, 때로는 세상에서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하는 이 사랑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사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누군가가 질문하면, 여러분은 그렇게 묻는 사람에게 무어라고 대답해주시겠습니까? 혹시 나한테 그런 것을 물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라고 생각할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삶은 아주 삭막하고 찬바람이 부는 사람일 것입니다.
 
한때 유행했던 노래의 가사에 그 사랑을 가리켜서 눈물의 씨앗이라고 한 일이 있었습니다만,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 사랑은 유행가 가사에 나오는 표현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알아들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보다는, 신앙인으로 알아듣고 삶으로 드러내야할 사랑의 뜻은 세상의 것과 차원이 다르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보다 세상에서 먼저 살았던 사람들도 사랑에 대해서 질문하고 대답하고 그들 나름대로 그 사랑을 드러내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또 한 번 그 사랑에 대해서 묻고, 그 사랑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대답을 찾고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알았던 사랑우리가 알고 싶은 사랑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렇게 질문하는 사랑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만 한정시켜서 생각한다면,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렀다고 하더라도 그 뜻에는 별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도 부모님을 통해서 태어났고,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안다면, 사람의 세상에서는 그 의미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구별할 만큼 눈에 띌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알 법한 내용을 달리 바꾸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천천히 새긴다면 과연 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일까........하고 질문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설명을 들을 수는 없어도 말입니다.
 
내 목숨이 다할 때까지, 무한정 원수를 갚는 것보다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갚는 것만큼만 해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일이라고 신명기 1912에 모세는 적었는데, 예수님은 구약시대의 그 규정을 다르게 해석하십니다. 악인에게 맞서지 말고, 오른뺨을 맞거든 다른 뺨도 돌려대고,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고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는 사람에게 이천 걸음을 함께 가주라는 일이 얼마나 가능하겠습니까? 이렇게 사는 일이 쉬운지 어려운지 묻는 것은 사치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그렇게 사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서, 제자들과 산비탈에 모였던 사람들에게 엉뚱한(?)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이래서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받아들이고 따라 살기가 힘들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과 뜻을 읽지 못해서 예수님이 가르친 것과 다르게 행동한다면, 즉 누구나 하는 것만큼만 하고, 더 나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삶에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없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산다거나, 올바른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는 저마다 할 수 있는 만큼 한다고 하겠지만, 내가 그렇게 산 일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 것인지 그 모양은 내가 구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앞세울 지혜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코린토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로마시대에 경제수준이나 지식에서 아주 자부심을 갖고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향해서 바오로사도는 세상의 지혜는 하느님 앞에 어리석음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랬으니 바오로 사도가 그곳에서 선포한 복음이 어떤 결과를 맺었겠습니까?
 
세상 삶의 기준은 여러 가지입니다. 어떤 것을 특별히 강조한다고 해서 그것이 온전히 실천될 리는 없겠지만, 나는 과연 어떤 기준을 받아들이고 사는지 살펴야 할 일입니다. 구약시대에도 하느님은 모세를 통하여 우리에게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만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모양으로 이 말씀을 세상에 드러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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