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자료

2011-0213.....연중 6 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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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1-02-12 ㅣ No.992

연중 제 6 주일 (가해)
집회서 15,15-20 1코린토 2,6-10 마태오 5,17-37
2011. 2. 13. 등촌3
주제 : 세상 삶의 지혜를 이용하여.......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신경을 쓰거나 관심을 가져야 할 일들은 얼마나 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대해서, 어떤 것은 옳으니 권장할 수 있고, 어떤 것은 그릇된 자세가 담겨 있으니, 비난할 것은 아니지만, 질문에 대답하는 태도에 따라 우리 삶에는 많은 것이 달라진다고 할 것입니다.
 
오늘은 연중6주일입니다.
우리는 지난 연중 4주일부터, 복음을 읽고 듣는 시간에 마태오 복음사가가 전하는 <산상설교> 말씀을 들어왔고, 이 말씀을 대하는 것은 앞으로도 몇 주간 더 계속될 것입니다.
 
연중4주일 복음에서 우리는 하느님나라에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어떤 이들인지 그 조건에 대한 말씀을 들었고, 지난 연중5주일에는 하느님께서 준비하시는 행복에 함께 하기 위해서, 우리가 세상에서 몸으로 드러내야할 소금과 빛의 역할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오늘 연중6주일 복음에는, 우리가 하느님나라에 살고 싶은 사람들로서 지키고 살아야 할 몇가지 규칙들이 나옵니다. 오늘 들은 내용이 예수님의 말씀이기는 하지만, 이 미사에 함께 한 우리가 그 말씀을 온전하게 따르는 사람들이 되기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마음과 생각을 놓고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살이보다는 신경 쓰고 살아야 할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뜻이 담겨 있는 율법에 대한 우리의 태도,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형제와 자매에 대하여 우리가 가져야하는 마음의 여유, 죄를 짓는 문제나 그 죄 이전에 죄로 향하는 내 삶이 가야하는 올바른 길, 세상살이에서 우리의 다짐을 담는 맹세에 대한 내용들까지, 복음으로 들은 말씀에는 여러 가지 내용들이 함께 있습니다.
 
세상 삶의 구체적인 자리를 먼저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여러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것을 요약하면, 하느님의 뜻을 기억하고 살 것이냐, 사람의 생각대로만 살 것이냐는 두 가지로 줄여서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항상 앞서기에 사람의 생각과 항상 충돌하는 것도 아니고, 둘 중에 하느님의 뜻은 최선이고 인간의 생각은 최악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아니지만, 신앙인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표현은 아무래도 사람의 생각이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으로 알아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다른 말로 하면, 할 것과 아니오라고 말할 것을 정확하게 구별해서 올바르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면서도 아니오는 될 수 없는 법이고, 아니오라고 내가 말하면서도 라는 뜻이 그 안에 담겨 있기를 바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논리는 이렇게 분명하지만, 이런 표현들 가운데 흑과 백이 아닌 회색이 있기를 바라고, 우리가 세상살이에서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며, 하느님의 놀라운 축복을 바랄 때 세상 문제는 아주 커지는 법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담은 예수님의 말씀을 대하면서, 그런 정도는 세상에서 실천하기가 아주 쉬운 일이라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세상에 적용되어야 할 하느님의 뜻이라는 게 참 복잡하고도 힘들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제대로 실천할 수 있을까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요?
 
세상의 우리 삶은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행복이라고 하는 똑같은 목적지에 다다르는 것이 우리가 갖는 바람이기는 하지만, 그 목적지에 다다르는 방법은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그것은 집회서 독서에 나오는 말씀처럼, 내 앞에 있는 물과 불을 내 의지를 담아서 선택하라는 말씀대로이고, 내 앞에 생명과 죽음이 있으니 원하는 대로 선택하면 그에 알맞은 결과가 생길 것이라고 하는 말씀과도 같은 것입니다. 사람의 삶을 속속들이 아시는 하느님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겠는지 아시겠지만, 하느님은 절대로 인간에게 당신의 뜻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악을 선택해서 죽음의 결과를 맺을지, 내가 선을 선택했기에 세상의 삶은 힘겹고 먼 길을 돌아가는 어리석은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결국에는 나에게 영원한 행복을 가져오겠는지 우리 사람들이 완벽하게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걸 안다면 우리가 하는 행동은 무엇이든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이 되겠지만, 그 이론과 실제의 차이(差異)는 올바른 신앙의 자세로서만 줄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지혜를 어디에서 배울 수 있겠습니까?
 
전설 같은 이야기를 한 가지 하겠습니다. 어떤 로마황제에게 무척 아름다운 딸이 있었답니다. 이 공주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었지만, 달리기를 아주 잘하던 이 공주와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은 공주와 함께 하는 달리기시합에서 이기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로마황제가 법령을 정했답니다. 물론 달리기시합에서 공주에게 지면, 당연히 죽는 일로서 그 값을 치러야 한다는 규정도 있었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전했다가 실패했고 삶을 마쳤는데, 마지막에 성공한 딱 한 사람이 있었답니다. 그는 어떻게 했기에, 자기가 원하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요?
 
실패한 사람들은 자신의 달리기 실력만 믿고 도전했다가 실패했지만, 마지막에 성공한 이 사람은 달리기도 잘했지만, 올바른 지혜도 함께 갖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금덩어리 세 개를 준비하여 달리기시합에 나섰답니다. 그는 달리기 시합을 시작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앞서가던 공주를 향하여 첫 번째 금덩어리를 던져서 공주를 앞질렀고, 다시 그 순서가 바뀌자 두 번째 금덩어리를 사용했답니다. 그리고 마지막 목표지점이 저기게 보일 때, 목표점에 다다르기 직전에 세 번째 금덩어리를 던졌고, 그렇게 해서 달리기시합에서 공주를 이겼다는 것이었습니다. ******
 
세상 삶에서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서 우리는 어떤 지혜를 사용하는지 살펴봐야 할 일이고, 내가 기세 좋게 드러내는 그 지혜가 과연 하느님의 뜻과도 일치하는지 살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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