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자료

2011-0415.....사순 5 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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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1-04-15 ㅣ No.1033

사순 5 주간 금요일
예레미야 20,10-13            요한 10,31-42
2011. 4. 15. 등촌3
주제 : 공포를 선언하는 사람
세상에서 올바른 사람으로 살기란 참 힘든 일입니다. 말 그대로 올바른 사람으로 살기가 힘들다는 것보다는, 세상이 하도 잘못된 길로 가고 있어서, 웬만한 올바른 소리를 몇 마디 한다고 해서 세상이 갑작스레 올바른 길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독서 첫머리에 등장하는 예레미야에 당시 사람들의 평가를 들으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예레미야의 선포를 들었던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선포했던, 예언자를 가리켜서. ‘마고르 미싸빕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말은 아닙니다. 히브리어를 우리말로 그대로 읽은 것뿐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새로운 성경은 그 말에 대한 해석을 싣지 않고, 히브리말을 그대로 읽습니다. 예전 성경에는 사면초가라고 번역했는데 말입니다.
 
마고르 미싸빕이라는 말은 하느님의 뜻이라면서 자기 동족에게 겁나는 소리를 했던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히브리 백성이 붙여준 별명입니다. 우리말로 알아듣기 쉽게 번역하면, ‘사방에서 공포가 밀려온다고 겁나는 소리를 입에 달고 다녔던 자로 번역할 수 있는 낱말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듣는 그대로 받아들일 생각은 아니하고, 인간의 고집대로만 살았던 사람들에게 실제로 예언자가 할 수 있었던 말은 없었을 것입니다. 기껏해야, 공포가 섞인 위협적인 말을 하는 것이 전부였을 텐데, 그 말도 받아들이는 자가 없으니, 예언자의 말은 메아리 없는 소리요, 공수표에 불과한 것이었을 거라는 얘기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입에 달고 사는 자의 삶은 힘겨울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자의 뜻이 당장 실현되어서 사람들에게 벌이 당장 내리는 것도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고 하고, 사람들은 그 심각한 소리를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않으니, 말 그대로 사면초가요, 진퇴양난이었을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느님의 예언자가 처한 상황인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이런 겁나는 소리가 들려온다면, 우리는 과연 그러한 말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일까요?
 
잘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돌을 던지려고 했습니다. 신성모독죄를 단죄하겠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듣지 않으려고 했던 그들이, 신성모독죄를 단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그것은 나중에 판단하더라도, 그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덤볐다는 것이 참 신기한 일입니다. 그때의 사람들보다 훨씬 후대에 사는 우리는 옳고 바름을 정확하게 구별하지만, 그렇게 판단하고 난 다음에, 우리의 생활이 내가 판단한 그 올바른 길로 가겠는지 그것 또한 알기 힘든 일일 것입니다.
 
우리가 삶을 통하여 온전히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정말 감사할 일입니다. 이러한 감사의 마음자세를 우리가 언제 드러내느냐에 따라 우리 삶은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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