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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에제리아 여행기를 통해 본 그리스도인의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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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8-13 ㅣ No.832

에제리아 여행기를 통해 본 그리스도인의 순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하리라.”

 

천상병은 “귀천”이라는 시를 통해 이 세상살이를 ‘소풍’이라는 아주 소박하지만 너무나도 친숙하고 정겨운 단어로 표현한다. ‘소풍’하면 누구든지 어릴 적 생각이 날 것이다. 그러니까 소풍가기 전날 밤 잠을 설치던 일, 새벽 일찍 어머니가 김밥을 싸주시던 일, 친구끼리 모여 앉아 김밥을 먹던 일... 한 가지 재미있던 것은, 우리 초등학교 이름이 “용암”(龍巖)이라서 소풍 갈 때마다 빗님 (雨)이 함께해서 어찌나 마음을 졸였던지. 어린 시절 소풍은 시인의 말대로 참으로 아름다운 소풍이었다.

 

 

순례는 그리스도인의 소풍이다

 

순례란 보편적인 종교 현상 가운데 하나이다. 종교적 동기로 거룩한 장소를 여행하는 것을 말한다. 종교를 믿든 안 믿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깊은 곳에서 ‘그리움’을 발견한다. 이 그리움이 그 사람을 그 어떤 것을 향해 끊임없이 걷게 만든다. 이 그리움은 다른 말로 근원적인 목마름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은 목마르다. 목말라 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 갈증을 풀어줄 대상이나 장소를 찾아 길을 나서지 않을 수 있을까. 이처럼 인간은 근본적으로 순례자다. 그렇지만 정처 없이 떠도는 방랑자가 아니라 그 무언가를 향하여 길을 나선 순례자다.

 

그리스도인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이 그리움, 이 근본적인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이 하느님이시라고 고백한다. 그래서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느님, 당신 안에 쉬기까지 우리 마음에 안식이 없나이다” 하고 고백했으리라. 그렇지만 이 세상 밖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 세상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자 노력한다. 내가 속한 수도 공동체의 창설자인 성 베네딕도는 수도자를 “하느님을 찾는 사람”이라 한다 (Quaerere Deum). 그래서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찾아 길을 나선 사람들인 것이다. 이것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는 이 땅을 순례하는 공동체”라고 말한다. 하늘 본향에서 하느님과 완전히 일치되기까지 지상을 순례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순례는 소풍이라고, 본향인 하늘로 돌아가기까지 이 세상에 소풍나온 이들이라고.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하느님의 현존이 드러나는 구체적인 장소를 순례하고자 염원한다. 그곳에서 하늘나라의 아름다움을 미리 맛보기 때문이다.

 

이미 1세기부터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장소를 순례하기 시작했다. 이 순례는 무엇보다 신앙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활동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거룩한 장소들에 집중되었다. 더 나아가 성인들, 특히 순교자들과 연관된 장소이거나 기적이 일어난 장소도 순례했다. 신자들은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거나 참회나 감사의 행위를 완수하기 위해서 순례의 길을 떠났다. 특히 로마 제국의 박해가 끝난 313년 교회의 자유부터 시작하여 4세기 전반에 걸쳐 여러 사건들이 순례의 염원을 더욱 불타게 했다. 이 시기부터 그리스도교에서 본격적인 의미에서 순례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와 그의 모친 성녀 헬레나가 예루살렘 성지에 여러 대성당(바실리카)을 건축하면서부터 예루살렘은 그리스도교화 되기 시작했다. 이로써 성지를 순례할 수 있는 여건이 자연스럽게 마련되었다. 성 아타나시오는 “성 안토니오의 생애”라는 저서를 통해 이집트의 수도생활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게 만들었으며, 로마에서는 교황 다마소 1세 (366-384)를 비롯하여 여러 교황들이 로마 순교자들이 묻힌 지하무덤인 카타콤바를 복원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찾은 순례지는 우선 예수께서 활동하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팔레스티나 성지였고 그리고는 이집트의 수도원들과 로마의 순교자 무덤이었다.

 

 

에제리아 여행기

 

이 시기 순례의 면모를 잘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한 문헌이 있다. 그 이름이 에제리아 (Egeria) 또는 애테리아 (Aetheria)라고 하는 한 유럽 여성 신자가 4세기 후반쯤 예루살렘과 팔레스티나를 중심으로 몇 년에 걸쳐 중동 성지를 순례했다. 이 여인은 고국에 남아있는, 아마도 수도생활을 하는 동료 “자매들” (sorores)에게 이 순례 여정을 편지에 담아 보냈다. 우리는 이 서간을 ‘에제리아 여행기’ (Itinerarium Egeriae)라고 부른다. 이 여행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부분에서 에제리아는 신구약성서에 따라 걸어간 순례 길을 자세히 말하고 있다. 우선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에 따라 이집트를 탈출한 위대한 사건의 중심이 된 시나이 산을 둘러본다 (1-9),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 모세가 생애를 마친 느보 산을 거쳐 (10-12), 카르네아스를 여행한다 (13-16). 그러고는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오는 길에 에데사까지 이르는 시리아 북부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방문하고 (17-21), 성녀 테클라의 무덤을 참배한다 (22-23). 그리고 여행기의 둘째 부분에서는 395년경 예루살렘 교회 전례를 자세히 전해준다 (24-49). 에제리아는 예루살렘 교회의 전례주년에 따라 직접 전례에 참여하면서, 평일과 주일의 전례, 주님의 공현 대축일, 사순시기와 금식, 성주간, 파스카 대축일, 성령강림 대축일 전례를 말하고, 그리고 끝에는 예루살렘 교회가 세례를 받고자 하는 예비신자를 어떻게 교육시켰는가에 대하여 그 절차를 말하고 있다.

 

 

주님의 손길에 온전히 맡겨

 

남자도 아닌 가냘픈 여자의 몸으로, 그것도 혼자서 요즘처럼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중동 지역으로 순례를 떠났다니 이 자체가 모험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 여인이 순례 중에 겪은 어려움은 에데사에서 경건한 수도승이자 증거자인 주교가 그를 환대하며 한 말에서 잘 드러난다. “딸이여, 내가 보기에 그대는 종교적 동기로 매우 먼 땅에서 이곳에 오느라고 무척 힘든 여행을 했구려. 그대가 원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이 방문하기를 사랑하는 여기 이 장소들을 우리가 그대에게 보여주겠소.”

 

대체 무엇이 이 여인을 그토록 위험하기 짝이 없는 여행을 하게 만들었는가. 한 여인의 소박한 신앙의 힘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으리라. 여행기 곳곳에서 에제리아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순례의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하느님의 이름으로”, “우리 하느님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 말은 이 여인의 발걸음을 하느님께서 인도해주시고 보호해주신다는 신뢰와 확신의 고백인 것이다. 또 다른 곳에서 그는 말하기를 “당신을 희망하는 이들을 버리지 않으시는 우리 하느님이신 예수께서 내 간청을 이루어주신다”고 했다. 이 얼마나 확고한 신뢰인가. 참다운 신앙의 깊이를 엿볼 수 있다. 주님께 대한 이처럼 크나큰 신뢰와 그 어떤 장애물도 무효화시킬 수 없는 확신 때문에 에제리아는 미지의 세계로 순례 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나도 에제리아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이탈리아 페루지아에서 어려운 말공부를 끝내고 로마로 떠나기 전 페루지아 옆에 있는 아씨시를 방문해서 성 프란치스코의 무덤을 순례했다. 언어와 공부에 대한 두려움 등 나한테 닥칠 어려움에 한계와 부족함을 절감했다. 이때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나를 좋게 이끄실 것이라는 신뢰였다. 성 프란치스꼬가 누워있는 돌무덤 앞에서 깊은 침묵 가운데 꿇어 기도드렸다. 기도를 드리는 가운데 성인의 전구로 하느님께서 나를 잘 이끄시라는 확신과 신뢰가 생겼다. 주님께서 길동무가 되어 앞으로 닥칠 온갖 어려움을 잘 넘길 수 있게 하실 것이라는 신뢰를 마음에 지니고 로마로 떠났다.

 

 

한 여인의 영적 여정의 기록

 

이 유럽 출신 여인은 단순히 많은 성지를 방문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이 편지는 그가 걸어갔던 외적이고 지리적인 여행에 관한 기록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에제리아는 하느님이 사람과 맺으신 옛 계약과 새로운 계약이 성취된 성서의 장소를 더 잘 알고, 성지에서 거룩한 삶을 사는 수도승들과 교회 지도자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영적 보화를 발견하고, 순교자들의 무덤을 방문하면서 순교자들의 열정을 배우고, 방문한 성지에서 그곳 신자들과 함께 하느님께 기도를 바치면서 그 장소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업적과 활동을 직접 체험했다. 이처럼 에제리아 여행기에는 매 순간 한 여인의 기도에 대한 뜨거운 목마름과 성서의 사건과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묵상하려는 전인적인 영적 갈망이 녹아있는 것이다.

 

사실 에제리아가 먼저 하느님을 찾아 길을 나선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인식 못하더라도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을 찾기도 전에 끊임없이 우리를 찾으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이미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체험하고자 하는 이 여인의 소박한 꿈을 아셨고 그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를 먼저 찾아오셨고 그를 당신께 초대하신 것이다. 이 하느님을 에제리아는 성지 순례 중에 만났다. 그래서 여행기에서 여러 번 “주님께 감사드린다”는 말로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정을 솔직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 여행기는 우리가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순례기가 아니다. 보이지 않으시는 하느님을 체험하고자 목숨을 걸고 한 신앙의 고백이자 신앙의 여정인 것이다. 믿음의 힘으로 생명을 담보로 하여 자기 자신을 하느님께 내맡긴 전인적인 영적 여정의 기록인 것이다.

 

우리네 사람들은 명절 때만 되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 땅을 찾는다. 자신의 뿌리에 가서 힘과 용기와 안정을 얻고 삶을 살아나간다. 신앙인도 마찬가지다. 특히 에제리아는 성지에서 하느님께 대한 영적 목마름을 풀었고, 자신이 되돌아 가야할 본향을 느낀 것이다. 이 사람은 이제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 이 세상은 참 좋은 소풍 장소라고. 비록 삶이 고되고 힘들고 어렵더라도 신앙의 고향을 마음에 간직한 사람은 삶 안에서 숨어있는 보화를 발견하고 삶은 살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고 우리가 그렇게 목말라 하던 그분 앞에 가서 우리는 말하리라.

 

“주님, 당신이 저에게 주신 소풍, 참으로 아름다웠답니다.”

 

[들숨날숨, 2003년 9월호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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