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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외국 선교회의 한국선교: 독일 베네딕도회의 한국 진출과 교육활동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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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02 ㅣ No.79

[한국 근현대 100년 속의 가톨릭 교회] (2) 외국선교회의 한국선교


독일 베네딕도회의 한국 진출과 교육활동을 중심으로

 

 

’외국선교회의 한국선교’는 독일 베네딕도회를 중심으로 그들의 한국 진출 경위와 1909년부터 1927년까지 초기 서울 시기의 주 선교활동인 교육사업에 관한 연구이다.

 

한국 최초의 남자 수도회이기도 한 베네딕도회는 문화적, 간접적 선교활동을 표방하며 한국교회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인 사범학교와 실업학교를 설립하였다. 특히 실업학교는 13년여에 걸쳐 독일 도제제도(徒弟制度) 방식의 기능교육을 시행하여 한국 실업교육사에서도 주요한 의미를 갖는다.

 

베네딕도회의 한국 진출은 당시 파리외방전교회 출신 조선교구장 뮈텔(Mutel, Gustave) 주교의 요청에 의한 것이다. 1905년 한일협약(을사보호조약) 이후 한국에서 교육은 민족의 애국의식을 고취하고 계몽하기 위한 가장 긴요한 국권수호투쟁 방법으로 간주되었다.

 

천주교도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따라 본당을 중심으로 성직자들에 의해 기초과정의 교육사업이 추진되어, 1905년부터 1909년 사이 천주교회에 의해 새로 설립되거나 개편된 학교수는 60여개교에 이른다. 이에 뮈텔 주교는 학교교육을 담당할 신자교사를 배출할 사범학교 설립을 서두르게 되었다.

 

베네딕도회는 1909년 1월11일 사우어(Sauer, Bonifatius)와 엔쇼프(Enshoff,  Dominikus) 등 2명의 신부가 서울에 도착하면서 한국에 첫발을 내디뎠다.

 

두 신부는 1909년 6월 백동(栢洞, 혜화동)에 약 10헥타르(㏊)의 땅을 매입하여 수도원과 학교를 신축하였다. 이 해 12월 신부 2명과 수사 4명의 입국을 필두로 1911년부터 해마다 신부와 수사들이 증원되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1914년 7월 서울 수도원은 신부 9명, 수사 12명 등 총 21명의 선교사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베네딕도회의 수련 모토인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를 실천하는 한편 자신이 보유한 재능을 교육이라는 문화적 활동을 통해 전수하는 것을 포교의 한 방법으로 택했다.

 

베네딕도회는 1910년 내한 목적대로 숭공학교(崇工學校)를 세워 실업교육을 시작했으며, 1911년에는 숭신학교(崇信學校)를 세워 사범교육을 실시하였다.

 

숭공학교(崇工學校)는 독일식 도제제도를 적용한 실습 위주의 실업학교로 뜻있는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또한 우수한 교육기관으로 인정받았다. 사우어 원장은 숭공학교의 설립 목적을 다음 네 가지로 설정하였다.

 

첫째, 실업교육을 통해 가톨릭교회가 사회적 문제점을 해결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정부(일제)와 한국국민에게 보여준다. 둘째, 자립적 가톨릭 수공업자 계층을 탄생시켜 지금까지 교난 등으로 생활 근거를 잃어 가난했던 교인들을 중산층으로 발돋음하도록 하겠다. 셋째, 가톨릭 신앙 전파에 큰 역할을 기대한다. 넷째, 유능한 한국인 수사(修士)를 양성해낸다.

 

숭공학교의 교육과정은 3년이었다. 3년 과정을 수료하면 이론과 실습 시험을 치르고 자격증(졸업장)을 받게 되며, 졸업생은 이후 2년 동안 견습공(見習工, Lehrling)과 장인(匠人, Meister)의 중간 직급인 숙련공(熟練工, Gesellen) 자격으로 급여를 받으며 수도원에 남을 수 있었다.

 

제1회 졸업생은 1914년 부활절에 배출되었다. 학과는 대목공부(大木工部), 소(小)목공부, 정밀금속부, 철공부, 제차부(製車部), (복식)재단부로 다양한 직종을 망라하였다. 또한 원예부가 부설되어 있었다. 교사는 두 명의 베네딕도회 신부 및 약간 명의 한국인 이론담당 교사가 있었으며, 자신의 분야에서 장인인 수사신부(修士神父)들이 실습교육을 담당하였다.

 

학생 수는 1910년부터 꾸준히 늘어 1914년에는 70명이었다. 1914년 가을 신입생 모집 때 200명이 지원하였으나 학교가 협소하고 재정이 어려워 적은 수의 학생만 선발하였다. 그러나 함경도 덕원(德源)으로 이전할 예정으로 1921년 폐교를 결정하여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신입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숭공학교 수업은 실업학교답게 매일 이론 2시간과 실습 8시간으로 구성되었다. 이론은 가장 중요한 기초이론을 학습하였고, 실습은 자신이 택한 학과를 작업장에서 수업하는 독일 도제제도 방식의 실습 위주 교육이었다.

 

그러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학교 확장에 따른 경비를 마련하기 어렵게 되었고, 교사로 일하던 네 명의 수사도 징집되어 학생 증원은 불가능하였다. 또한 전쟁 중은 물론 종전 후에도 패전국이 되어 모국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다.

 

한편 전쟁 발발로 독일이 일본의 적성국이 되자 일제의 숭공학교에 대한 사찰과 압박이 심해졌다. 이와 같은 존폐 위기를 겪으면서도 숭공학교는 건실하게 운영되어 학교를 폐교시키려고 갖은 압박을 가하던 (일본)정부까지도 서울을 방문하는 모든 고위층 일본인에게 자랑스럽게 견학시킬 만큼 우수한 평가를 받는 학교였다. 그러나 숭공학교는 결국 1921년에 폐교되고 말았다.

 

숭신학교는 교회가 설립한 학교에 적합한 교사를 배출할 2년제 사범학교로 1911년 설립되었다. 초대 교장에는 이미 한국어에도 상당한 실력을 보이던 에카르트(Eckardt, Andreas) 신부가 임명되었다. 교사로는 에카르트와 니바우어(Niebauer, Cassian) 신부 그리고 한국인 평신도 교사 두 명이 채용되었다.

 

1911년 9월15일에 입학시험을 실시하여 15세 이상 28세 미만의 초등학교를 졸업한 남학생 23명이 입학하였다. 학생들은 서울에서 통학하는 4~5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였다. 학생들의 일과는 독일 사범학교 및 기숙학교와 똑같이 짜여졌다. 1913년 7월에 17명이 졸업하였는데 졸업생들은 교사가 되거나 혹은 교직이 아니어도 대부분 쉽게 취업하였다.

 

그러나 희망찬 출범에도 불구하고 수도회는 숭신학교 지원자가 4명밖에 없다는 이유로 개교 2년만인 1913년 9월 폐교를 결정하였다. 학생은 1911년 23명, 1912년 26명, 1913년에는 17명으로 수가 줄었고, 1913년 9월 신입생 모집 때는 지원자가 4명뿐이었다. 그러나 폐교의 더 근본 원인은 교육을 통제하고 특히 한국인이나 외국인이 교사를 양성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일제의 식민지 교육정책에 있었다.

 

서울에서의 베네딕도수도회 활동은 1921년 숭공학교 폐교와 더불어 사실상 끝나고 그 후 1927년까지 서울에서의 활동은 덕원 이전을 준비하는 작업에 불과하였다.

 

베네딕도회 서울 시기의 유일한 선교활동은 교육사업이었다. 이 수도회가 한국 가톨릭교회 최초의 사범학교와 실업학교를 지속시키지 못한 것은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를 위해서도 큰 손실이었다.

 

결론적으로 베네딕도회의 교육사업 실패의 원인은 다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일제의 식민지 교육정책에 의해 희생되었다. 둘째, 국적을 달리하는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와 독일 베네딕도회 사이의 불화와 경쟁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불화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선교회간에도 입장이 갈리며 더욱 심화되었다. 셋째, 베네딕도회의 재정적 어려움 때문이었다. 넷째, 베네딕도회 신부들이 학교 교사로서의 간접 선교보다 본당사목의 직접 선교를 원하였다.

 

만약 베네딕도회가 숭신학교를 유지하여 교사를 배출하고, 숭공학교를 꾸준히 지속시켜 진정한 실업교육을 구현하였다면 1920년대 이후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교사가 부족하여 빚어졌던 교육사업의 문제점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우리 역사에서 암담했던 이 시대에 한 줄기 빛같은 참교육의 모범을 제시했음은 물론, 베버(Weber, Norbert)와 사우어 원장이 소망했던 대로 선교에도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평화신문, 2003년 6월 15일, 장정란(가톨릭대 인간학연구소 전임연구원),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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