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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앙 유산: 세상을 하직하는 마지막 길 - 천주 성교 예규(天主聖敎禮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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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6-30 ㅣ No.329

[신앙 유산] 세상을 하직하는 마지막 길 : 천주 성교 예규

 

 

삶과 죽음

 

사람의 삶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삶에 이어진 죽음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태어나 철들게 되면 삶과 죽음의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이 생각은 종교와 철학 그리고 모든 문명의 출발점에서 나타나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삶의 뜻을 이해하기 위하여 죽음의 의미를 알고자 했으며, 죽음의 뜻을 올바로 알기 위하여 삶의 의미를 궁구해 나갔다.

 

이렇듯 인생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려 할 때 삶과 죽음은 깊이 음미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도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의문에 올바른 답을 주고자 한다. 그리하여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니요 새로운 삶, 영원한 삶으로 이어지는 전환점임을 일깨워 준다. 그리고 이 영원한 삶을 위해 현세에서의 잠시적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 가기를 촉구한다.

 

또한 교회에서는 새로운 삶으로 옮아 가는 죽은 이들을 정성스럽게 돌보기를 권장하며, 영원한 삶을 사는 그들과 지상의 신도들이 일체를 이루며 서로 통교(通交)하고 있음을 말한다. 이 때문에 교회는 해마다 11월이면 ‘위령성월’을 정하여 기념하며, 먼저 간 이들과의 정신적 유대를 강조한다.

 

지난날 교회에서는 신도들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를 일깨워 줄 수 있는 좋은 기회로서 상례(喪禮)를 생각했다. 물론 교회에서는 정성스러운 상례를 통해 죽은 교우의 영혼이 영생을 누리기를 먼저 기원했다. 여기서 교회는 이 세상을 하직하는 신도들의 마지막 길을 전송하기 위해 각별한 배려를 하게 되었다. 이 배려의 결과 “천주 성교 예규”가 간행될 수 있었다.

 

 

우리 문화에서의 상례

 

우리 속담에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말이 있다. 이렇듯 우리 선조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이승에 대한 강한 미련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그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수양을 통해 극복하여 이를 담담히 맞아들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가뭇없이 사라진 이들에 대한 그윽한 그리움에서 그들을 위해 제사를 지냈고, 이를 효심(孝心)의 자연스러운 표현으로까지 생각해 왔다.

 

죽은 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죽은 이를 하직하는 상례(喪禮)에 온갖 정성을 쏟게 했다. 이와 같은 문화 풍토에서 우리 선조들은 17세기 이래 죽은 부모에 대해 3년상을 보편적으로 실천해왔다.

 

그러기에 이수광(李?光, 1563~1628년)은 그의 “지봉유설”(芝峰類設)에서 천인(賤人)들까지도 가례(家禮)에 따라 상을 지내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안정복(安鼎福, 1712~1791년)도 우리 나라에서는 노비까지도 3년상을 치르고 있음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듯 죽은 이를 정성스럽게 보내고 받든다는 것은 우리 문화에 있어서 아름다운 덕행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러나 18세기 이래 천주교에서는 조상에 대한 제사를 금지했다. 이 결정은 중국 전례 논쟁(典禮論爭)의 결과로 내려진 것이었다. 제사 금지령은 1939년에 실제로 철회되었지만, 박해 시대의 신도들은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낼 수 없었다. 이에 당시의 신도들은 상례를 통해 죽은 이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움을 더욱 짙게 드러내고자 한 듯하다.

 

여기에서 한국 교회는 독특한 연도문화(煉禱文化)를 일찍부터 발전시킬 수 있었다. 신도들의 정성 어린 문상(問喪)은 일반인들에게도 아름답게 보였고, 또한 그들이 이 때문에 입교하는 사례가 박해 시대 때부터 발견되고 있다.

 

 

구성진 연도 소리

 

신도들의 상가집에 가면 구성진 연도 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연도를 바칠 때 없어서는 안 될 긴요한 책이 바로 한글본 “천주 성교 예규”(天主聖敎禮規)이다. 이를 간단히 줄여 “성교 예규”라고도 부른다.

 

한글본 “성교 예규”는 한문본 “성교 예규”(聖敎禮規)를 참조하여 다블뤼(Daveluy, 安敦伊, 1818~1866년) 주교가 엮은 책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한문본과 한글본 “성교 예규” 사이에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한문본 “성교 예규”는 불리오(Buglio, 利類思, 1606~1682년) 신부가 지은 5권 1책으로 된 책자였다. 한문본의 1권부터 3권까지는 상례에 관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한문본의 제4권은 혼례(婚禮)에 관한 것이며, 제5권에는 신도들의 집이나 사업장에 붓글씨로 써서 걸어 둘 수 었는 운문체(韻文體)로 된 각종 대련(對聯)들이 모여져 있다. 그 대련의 내용은 교회의 기본 교리 내지는 성사 생활에 관한 것이거나, 각종 점포의 발전을 기원하는 글귀들이다.

 

한글본 “성교 예규”는 이와는 상당히 다르다. 물론 한글본 제1권은 한문본 제1권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발췌하여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한글본 제2권은 한문본 제2권 및 제3권을 참조했으나 이를 단순히 옮겨 번역한 것만은 아니다. 한글본 제2권은 한문본을 참조했으되, 조선의 문화 풍토를 감안하고, 당시 조선 사회에서 통용되던 관행들을 정리하여 제시해 주었다.

 

또한 한글본에는 ‘연옥 도문’(煉獄禱文)을 비롯하여 한문본에 수록되지 않은 기도문들이 포함되어 었다. ‘연옥 도문’이 중국 교회에서 한문으로 전역된 때는 17세기 전반기였다. 중국에 파견된 포르투갈인 선교사였던 몬테이로(Monteiro, 孟儒望, 1603~1648년)가 이를 한문으로 번역했던 것이다. 그런데 한글본 “성교 예규”에 수록된 이 ‘연옥 도문’은 몬테이로의 번역본에서 중역(重譯)된 것이며, 라틴어 기도문에서 직접 한글로 번역된 것은 아닌 듯하다. ‘연옥 도문’에 거명되고 있는 성인들의 이름이 한문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천주 성교 예규”의 내용

 

한글본 “천주 성교 예규”는 다블뤼 주교가 황석두(黃錫斗, 1813~1866년) 등 조선인 신도들의 도움을 받아 2권 2책으로 엮어 간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이 처음 목판본으로 간행된 때는 1864년이나 1865년경이었다. 그 뒤 1887년에는 활판본 2권 1책(13.4×20.7cm)으로 다시 간행되었다.

 

이때 간행된 활판본은 중판을 거듭했다. 그 후 이 활판본은 제목을 “성교 예규”로 줄여 부르며 판형을 소책자로 바꾸고, 맞춤법을 현대식으로 교정해 가면서 경향잡지사나 가톨릭 출판사의 명의로 계속 간행되었다. 이 책은 1990년 12월 30일 가톨릭 출판사에서 62판을 찍어냈다. 그 뒤 1991년 11월에는 “성교 예규” 개정판이 나옴으로써 옛스런 내용들에 손질이 가해지게 되었다.

 

이 책은 산문체라기보다는 오히려 운문체에 가까운 문체로 되어 있다. 각종 도문(禱文)은 말할 것도 없고, 긴 기도문들에도 운율(韻律)이 살아 있다. 당시의 신도들은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문에는 산문보다 운문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들은 “천주 성교 예규”에 수록된 기도문을 시조처럼 읊조리며 그 내용을 배우고 새로운 감동에 환희하기도 했다.

 

“천주 성교 예규”의 ‘축문’(祝文)에는 신약 및 구약의 여러 사화(史話)들과 초대 교회의 전통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하여 신도들은 이를 통해 교회의 가르침 내지는 그 전통과 더욱 깊게 결합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책에는 여러 편의 ‘성영’(聖詠 : 시편)들이 번역되어 있다. 박해 시대 신도들이 시편 내용에 직접 접할 수 있는 계기가 이 책을 통해 부분적으로라도 마련되고 있었다.

 

그러나 “천주 성교 예규”에는 성속(聖俗) 이원론적 인식의 잔재가 짙게 배어 있다. 세상은 악이 충만한 곳이므로 이를 빨리 떠나 악을 피해야 한다고 이 책에서는 말한다. 그리고 임종자에게 “죽기 원하기를 권하며”, 천국의 아름다움을 설명하고 있다. 한편 이 책에서는 영혼의 귀중함을 극도로 강조해 준다. 이 귀중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노력함이 가장 큰 애덕의 실천임을 말하면서 임종하는 이를 돕고 기도해 주도록 요청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나 살아도 천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천주를 위해 죽어 영원히 오주 예수를 떠나지 않으리이다.”라는 기도문 구절에서와 같이 하느님 중심의 신앙을 일깨워 주며, 자신의 새로운 인생관과 신앙에 대한 고백을 이끌어 주고 있다. 또한 여기서는 죽은 교우의 시신(屍身)은 “오주 예수의 지체요, 성신의 궁전”이었으므로 특별히 소중하게 다루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교우의 시체는 땅에 심는 아름다운 씨앗같이 보기”를 제안하며 상장(喪葬) 예절에 소홀함이 없기를 강조하고 있다.

 

 

마무리

 

우리의 문화 전통에는 죽은 이를 각별히 모시고 보내는 관행이 살아 있었다. 또한 우리 교회에서는 죽은 이의 부활과 영혼의 소중함을 가르쳐 왔다. 이 두 가지 마음이 서로 결합하여 오늘날 한국 교회의 상례 문화(喪禮文化)가 형성될 수 있었다. 더욱이 박해 시대의 신도들은 제례(祭禮)를 부정했던 만큼 상례만은 더욱 정성스럽게 실천하려 했다. 여기에서 “천주 성교 예규”가 간행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130여 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활용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책이 간행된 이후 두 번에 걸쳐 세계 공의회가 열렸고, 신학의 발전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나타내었다. 사회의 환경이나 문화적 관념도 급변하여 갔으므로, 이제 우리 교회에는 새로운 장례 예식서가 요청되고 있는 듯하다.

 

[경향잡지, 1992년 11월호, 조광 이냐시오(고려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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