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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앙 유산: 신도 지도자의 길 - 회장규조(會長規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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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6-30 ㅣ No.316

[신앙 유산] 신도 지도자의 길 : 회장 규조

 

 

머리글

 

모둠살이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둠살이를 이끌어 나갈 규칙과 지도자가 요청되고 있다. 믿음을 중심으로 하여 새로운 모둠살이를 시작한 사람들에게도 이 원칙은 예외 없이 적용된다. 그러기에 교회에는 교계 제도와 교회법이 있고, 어떠한 신앙 공동체든지 그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가 있게 마련이다.

 

하느님께 대한 오롯한 믿음을 가진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꾸려 나가기 위해 그 나름대로의 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이 조직은 신도들을 엮어 서로 친교를 나누는 삶으로 이끌었고, 신도들의 믿음을 단단하게 해주었다. 이로써 신도들은 박해의 험한 파도를 뚫고 신앙의 명맥을 이어 갈 수 있었고, 이 공동체에서의 훈련과 상호 격려를 통해 죽음의 마당에서도 하느님을 증거할 수 있었다.

 

회장(會長, Catechista)은 이 신앙 공동체를 이끄는 신도 지도자였다. 그리고 이 신도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자격과 해야 할 일들, 그리고 그들에게 약속된 여러 은사(恩赦) 등에 관해 기록한 책이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회장 규조”(會長規條)이다.

 

 

회장이란 누구인가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 나라의 천주교회는 신도들의 자발적 노력에 의해 창설되었다. 그리고 신도들의 자발성은 교회의 창설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교회를 유지하는 데에 있어서도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물론 교회의 유지와 발전에는 신도들의 공헌만을 강조할 수는 없다.

 

거기에는 이 땅에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선교에의 열정을 불태웠던 선교사들의 공로도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었다. 또한, 미지의 나라 조선에서의 전교를 위해 기도와 희생을 주저하지 않았던 마음이 희맑은 믿음의 형제들의 뒷받침으로 우리의 교회는 발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개항기 이후에 이르러서 우리 교회는 수도자와 성직자들의 활기찬 노력에 의해 크게 고무되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여 한국 교회의 발전은 성직자, 수도자 그리고 신도들의 공동 노력에 의해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 교회의 성장과 성숙에 일찍부터 기여해 온 집단으로는 신도들을 들 수 있으며, 이 신도들 가운데에서도 신도 공동체를 이끌어 가던 회장들의 역할은 다른 누구보다도 두드러진 것이었다.

 

우리의 교회사에서 ‘회장’에 관해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이미 1790년대 교회에서 부터였다. 이 당시의 초기 교회에서 ‘회장’으로 불리우던 구체적 사례로는 최창현(崔昌顯)의 경우를 들 수 있다. 그는 신도들의 대표자란 의미를 지닌 ‘총회장’이란 칭호로 불리우고 있었다. 그리고 정약종(丁若鍾)은 ‘명회장’(明會長)으로 불리운 바 있었다. 이는 주문모(周文謨) 신부의 지도 아래 조직된 명도회(明道會)의 회장이란 뜻이었다.

 

한편, 1801년의 신유 교난을 전후한 시기에 있어서도 적지 아니한 사람들이 ‘회장’으로 불리었다. 예를 들면 ‘김승정’도 회장으로 지칭되었으며, 강완숙(姜完淑)의 경우에는 ‘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완숙과 더불어 활동했던 윤점혜(尹占惠)에게도 ‘여회장’이란 칭호가 부여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회장’이란 제도는 교회 조직이 확산 · 강화되어 감에 따라, 이 조직의 확산과 운영을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조선교구가 설정되고 프랑스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한 1830년대의 후반기에 이르러서 회장제도는 더욱 발전되어 갔다. 이때 프랑스 선교사들은 자신의 선교 활동을 돕는 이로 회장들을 임명했다. 아니 프랑스 선교사들의 선교 활동은 거의 전적으로 조선인 회장들의 도움에 의해서만 가능했다.

 

선교사들은 회장들의 안내에 따라 회장들이 사전에 배려해 놓은 지역을 방문했던 터였고, 현지 회장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신도나 예비 신도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박해 시대 우리의 교회사에서는 회장의 존재를 주목하게 되고 그들의 역할을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신앙의 자유가 주어진 이후에도 회장의 중요성은 지속되었다. 그들은 교리교사로서, 신도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자신의 책임을 계속해서 수행해 나갔다. 이렇듯 ‘회장’들은 한국 천주교회사에 있어서 그 공동 주역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아야 마땅한 존재들이다.

 

 

“회장 규조”의 가르침

 

한국 교회사에서 이다지도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던 회장들에 관한 교회의 규정과 가르침이 없을 수 없었다. 그러기에 기해 교난(1839년) 과정에서 선교사들은 서둘러 “회장 규조”를 저술하여 한국 교회에 남겨 주었다. 그리고 박해가 끝난 다음에도 “회장 직분”, “회장 필지”와 같은 책을 간행했고, 회장에 관한 이러한 규정들은 “한국 교회 지도서”에도 포함되기에 이르렀다. 회장에 관한 이와 같은 책들 가운데서도 “회장 규조”는 가장 먼저 나온 책이었다.

 

“회장 규조”에서는 먼저 회장의 본분이 무엇인가를 밝혀 주고 있다. 그리고 이어 회장의 자격과 회장에 대한 신도들의 책임 및 회장 직분에 따른 교회의 은사를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이러한 설명을 통해서 박해 시대의 교회 운영과 신도 조직의 구체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박해 시대 회장들에게 주어진 가장 으뜸가는 책임은 성직자를 도와서 교중들을 지도하고 교회를 운영하는 일이었다. 즉, 회장들은 성직자가 그 지방의 신앙 공동체를 방문하고자 할 때 머물 곳을 예비하고, 그 길을 미리 살펴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했다. 그리고 성직자에게 알려야 할 여러 일들을 미리 준비해 놓았다가 보고해야 했다.

 

회장들은 자신이 책임 맡은 공동체 신도들의 열심 여부와 예비자 및 새 신도들의 사정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세를 받은 어린이 가운데 아직 보례하지 아니한 아이들을 신부께 인도하여 보례를 받도록 했다. 또한 회장은 자신이 주례한 혼배자들을 인도하여 신부께 혼배 강복을 청했다. 그리고 환자들에게 병자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회장들은 성사를 받을 신도들의 숫자를 미리 조정하였다. 그리하여 외떨어진 교우촌이라 하더라도 하루에 40명 이상은 성직자를 만날 수 없도록 했다. 시골의 경우에는 그 숫자를 30명으로 제한했지만, 서울에서는 하루에 20명 이내의 신도들만이 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미리 판비했다. 이렇게 신도 수를 제한한 까닭은 많은 신도들이 일시에 모일 경우, 이웃들이 갖게 될 의구심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이다.

 

또한 회장들은 외교인을 권면하여 교리를 가르치고 이들을 입교시킬 책임을 지고 있었다. 회장의 이러한 역할 때문에 회장을 선교사들은 ‘교리교사’(Catechista)로 불렀다. 그리고 회장들은 병자들을 도와주고, 가난한 신도를 위하여 다른 신도들로부터 애긍을 거두어 주었다. 회장들은 까막눈 신도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야 했고, 죽을 위험에 놓인 외교인 어린이들에게 대세를 주었다. 그들은 죽은 신도들을 교회의 규구대로 장사 지냈다. 이렇듯 회장의 직분은 신도들의 신앙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까지도 돌보는 것이었다.

 

“회장 규조”에서는 회장의 자격으로 착한 표양과 좋은 명성 및 굳은 신앙심과 지도력 그리고 신도들의 동의를 규정하고 있다. 반면에 회장은 사음을 범하거나 교회 재산을 축내거나 박해를 당해 배교했을 경우에는 그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고 밝혀 주었다. 한편, 신도들은 회장을 공경하고 보호하는 데에 진력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교회를 위해 애쓰는 회장들을 위해 성직자들은 매 첫첨례일(첫 토요일)마다 특별한 강복을 주어야 했다. 그리고 회장들은 매일 ‘성교대행축문’(聖敎大行祝文) 등의 기도를 바쳐야 했다. 회장들은 자신이 회장으로 임명받는 날 고해 · 영성체하거나 상등 통회를 발하면 전대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회장이 도리를 강론할 때마다 40일 은사를 얻었으며, 한 달에 날마다 도리를 강론하면 전대사를 한 차례 얻었다. 이와 같이 거룩한 회장들의 직무에 대해서 성스러운 보상이 약속되어 있었다. 이 영적 보상을 기꺼워하며 회장들은 자신의 책임을 거듭 확인해 나갔다.

 

 

맺음말

 

우리는 박해로 점철된 교회사에서 쓰러져 가는 교회를 걷잡으려 했던 회장들의 모습을 쉬이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구실을 자세히 기록한 “회장 규조”를 통해 그들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할 수 있었다. 박해 시대의 회장들은 우리 전통 사회의 향촌 제도에서 발견되는 마을의 존장(尊長)이나 유사(有司)와 같은 역할을 신앙 공동체 안에서 맡고 있었다. 그러나 회장들은 군림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자기 희생을 각오한 봉사자였다.

 

이 봉사자들을 뒤 따르는 신도 지도자들이 오늘날 적지 아니하다. 그러나 오늘의 신도 지도자 모두가 과연 우리네 회장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가? 오늘의 교회에서도 매달 ‘회장’을 위해 기도하고 강복해 오고 있는가? 회장들을 위한 영적 보상은 무엇인가?

 

“회장 규조”는 한국 교회사 연구소에서 간행한 “순교자와 증거자들”이라는 책 안에 포함되어 있다.

 

[경향잡지, 1991년 9월호, 조광 이냐시오(고려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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