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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한국전쟁 순교자연구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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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11-27 ㅣ No.874

한국전쟁 순교자연구 어디까지 왔나

 

 

해방 이후 북한 공산 정권에 의한 종교 탄압과 수난은 한국 교회사에서 제2의 박해기라 일컫는다. 초기 교회 박해기에 못지 않은 수많은 천주교 성직자, 수도자, 신학생과 일반 평신도들이 공산 정권에 의해 박해받아 희생됐고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런 흔적도 기록도 남기지 않은 채 끌려가 지금도 생사가 불명하다.

 

이 시기는 한국 교회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이며 장차 제3, 제4의 시복시성 후보자들이 될 수 있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배출된 시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 안에서는 아직까지 이 시기의 희생자들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연구의 바탕이 될 수 있는 증언 기록이나 자료들이 제대로 수집되고 정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 몇 년간 이에 대한 관심과 관련 작업들이 시작됐고 일부에서는 근 20여년간에 걸친 작업의 성과가 나오기도 했지만 여전히 당시 희생자들에 대한 본격적인 자료 수집과 본격적인 연구 작업이 대단히 아쉬운 실정이다.

 

 

본격적인 연구 부족

 

가장 최근에 한국전쟁 당시의 희생자들에 대한 기록을 정리한 문헌으로는 평양교구 순교자 사료 수집위원회가 펴낸 북녘 땅의 순교자들(가톨릭 출판사)을 들 수 있다. 이 순교 자료집에는 한국전쟁을 전후해 목숨을 잃거나 피랍돼 아직까지 행방을 알 수 없는 평양교구 출신 성직자, 수도자, 신학생, 평신도들에 대한 기록이 엄정한 자료 조사와 증언 채록을 바탕으로 정리돼 있다.

 

여기에는 한국전쟁 발발 전해인 1949년 5월 14일 불법 납치돼 행방불명된 홍용호 주교를 비롯한 26명의 희생자들의 생애와 당시의 정황이 기록돼 있다. 특히 이 순교록에는 그 동안 성직자나 수도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료 수집이 소홀했던 평신도들에 관한 기록도 상세하게 파악돼 있다. 이 순교록이 나오기까지는 실제로 근 20여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1981년초 평양교구사가 발간된 후 이듬해 평양교구 출신 사제와 평신도들이 모여 순교록을 기록하기로 결정했고 그 이후 오랜 시간 동안 방대한 증언 청취와 관련 자료 수집에 나선 결과이다.

 

지금까지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성직자나 수도자들의 경우에는 비교적 관련 자료 수집과 연구가 미흡하나마 나름대로 관심 있게 이뤄져 왔다. 한국 천주교회사나 북한 침묵의 교회에 대한 연구, 수도회나 황해도, 평양교구사 등 북한 교회에 대한 연구들에서 이들에 대한 연구가 이뤄져 왔다. 하지만 전체 희생자의 규모와 면면 등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는 사실 지금까지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회사연구소가 지난 1985년 발행한 한국가톨릭대사전에는 한국전쟁 중 희생된 성직자와 수도자, 신학생의 수를 모두 150명으로 집계하고 있다. 여기에는 교구장 5명, 신부 82명, 수사25명, 수녀 34명, 신학생 4명이 포함돼 있으나 평신도들은 집계되지 않았다.

 

한국교회는 지난 1990년 주교회의 차원에서 대한적십자사에 생사 확인을 요청한 명단에는 모두 118명의 당시 희생자들이 포함돼 있다. 주교회의 의장 명의로 대한적십자사 총재에게 보낸 서한은 북한 당국이 1949년부터 1950년까지 2년간에 걸쳐 남한과 북한에서 납치해간 성직자, 수도자, 신학생들의 생사 여부와 행방을 확인해줄 것을 요청했었다. 주교회의 상임위원회 결정에 따라 작성된 서한과 함께 북한선교위원회가 작성한 총 118명의 명단이 함께 첨부됐다.

 

이 명단에 따르면 당시 교황 사절관이었던 번 주교와 평양교구장 홍용호 주교 등 주교 3명, 서포수녀원장 장정온 수녀 등 수녀 27명, 김선영 신부 등 사제 71명, 수사 13명, 신학생 4명 등이며 각 교구별로는 덕원, 함흥교구가 44명으로 가장 많고 평양교구 29명, 서울대교구 23명, 춘천교구 76명, 대전교구 10명, 광주대교구 5명 등이다. 한편 교회사학자인 차기진 박사는 지난 1994년 사목 10월호에 시성 10주년의 반성과 과제를 주제로 6.25 사변과 천주교회의 순교자들이라는 제목의 기고를 통해 그 동안의 연구 성과를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성직자와 수도자 90명의 명단을 정리했다.

 

1998년 교황청의 요청에 따라 한국주교회의에서 취합한 현대순교자 목록에도 이들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 있다. 교황청 새순교자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성공회 등 다른 그리스도교 종파들에게도 관련 명단과 기록을 요청, 수함된 이 목록은 총 215명, 그 중 209명이 가톨릭이었고 한국전쟁 당시 희생자들 158명이 포함돼 있다.

 

주교회의 사무처는 이듬해 6월 이 목록에 한국전쟁 당시 희생자 24명의 명단을 추가로 제출했다. 특히 이 명단에는 명동성당 등 평신도 회장 5명을 포함한 평신도 13명이 목록에 포함됐다. 명동성당 총회장 정남규 회장 등은 한국전쟁을 전후해 북한군에 끌려간 것이 여러 경로로 파악됐고 10년 주기로 추모미사가 거행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목록에는 빠져 있었다. 추가 목록에는 또 평양교구 출신이 16명으로 가장 많았는데 이는 평양교구 출신 희생자들의 행적을 집대성한 자료집의 발간에 따른 것이다. 함흥교구에서도 3명의 사제 명단이 추가됐다.

 

 

평신도 연구 상대적 빈약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그리스도인들이 대부분 박해에 굴하지 않고 순교자적인 삶을 살았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알려진 기록들과 증언들을 통해 볼 때 매우 명백한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 시기의 한국교회사에 박해기의 의미를 부여하는데 인색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사가들은 강조한다.

 

다만 이를 위해서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는 이들의 삶과 신앙에 대한 역사적인 고증과 각종 기록, 증언의 청취 등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발굴하고 연구, 기록하는데 좀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성직자나 수도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평신도 희생자들에 대한 자료 수집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심각성은 당시를 증언해 줄 수 있는 증인들이 이제 연로해 세상을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전체 한국교회 차원에서 당시의 한국 교회 상황과 희생자들에 대해 증언해줄 수 있는 모든 기록들을 발굴하고 자료로 남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자칫 한국 현대 교회사의 중요한 페이지가 공백으로 남거나 부실하게 채워진 채 흘러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신문, 2000년 5월 21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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