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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앙 유산: 수도 생활의 아버지 베네딕도 성인 - 성분도언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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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03 ㅣ No.354

[신앙 유산] 수도 생활의 아버지 베네딕도 성인 : 성분도언행록

 

 

머리글

 

오늘의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 살아가는 삶의 형태로 성직자, 수도자 그리고 신도, 세 가지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 세 가지 길은 각각 자신의 고유한 영성을 가지고 있으며,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서 고유한 가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가르침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보편화된 내용이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수도자와 신도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수도회란 “여럿이 모여 한가지로 살며, 정한 법칙을 준행함으로써 예사 교우들보다 더 타당히 완덕을 닦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수도회에 관한 이와 같은 인식은 1910년 서울에서 간행된 “성분도언행록”(聖芬道言行錄)의 서문에 서술되어 있다.

 

이 서문의 말은 하느님 백성의 일원이라는 차원에서 수도자를 인식하기보다는 수도자가 신도보다 더 완덕에 나아가는 존재라고 말함으로써 수도자가 신도들보다 더 우월한 존재임을 강조한 것이었다.

 

우리 나라 교회에 수도 생활에 대한 지식이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이미 교회 초창기부터였다. 18세기 말엽 조선의 신도들은 중국에서 전파된 성인전들을 통해서 가톨릭적 수도 생활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리고 개항 이후 신앙의 자유가 주어진 다음에 수도자들의 입국과 활동을 통해서 수도 생활의 실체를 접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 나라 교회에서는 신도들에게 수도 생활에 대한 이해와 그 모범을 전해 주고자 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성분도언행록”이 간행되었다.

 

 

베네딕도 성인과 수도 생활

 

유럽 교회의 역사를 보면 대략 서기 300년을 전후하여 수도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 수도 생활은 이집트 은수자들의 생활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서방 교회의 수도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친 이로는 성 안토니오(251~356년)를 들 수 있다. 그는 가톨릭 수도 생활의 시조라고 불리고, 성 베네딕도(480~547년)는 수도 생활을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분도(芬道)라고 표기하던 베네딕도는 수도회 규칙서를 지었다. 이 규칙서는 서방 교회의 수도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규칙으로 인정되었다. 베네딕도는 자신의 체험을 기반으로 하여 작성한 이 규칙서에서 수도자의 의무와 수도 생활 그리고 “기도하며 일하기”를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성 베네딕도에 관한 초기 기록으로는 그가 직접 남긴 이 규칙서와 그레고리오 1세 교황(540~604년)이 남긴 “성 베네딕도의 생애와 기적”이라는 자료가 남아있다. 그레고리오 교황은 베네딕도의 생애를 후대인에게 알리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성분도언행록”의 간행

 

“성분도언행록”은 원래가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라틴어로 저술한 “성 베네딕도의 생애와 기적”을 한글로 번역한 책이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일찍이 로마의 장관을 역임하다가 35세라는 뒤늦은 나이에 수도자가 되었고, 그 후 교황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영국의 선교에도 기여한 바가 컸으며, 그레고리오 성가를 정리했고, 라틴 교부의 한 사람으로서, ‘중세 교황권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는 베네딕도 수도회에 대해서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는 베네딕도 성인에 대한 전기를 정리하여 남겼고, 그 수도회를 교황의 직속 수도회로 편제했다고 생각된다.

 

이 책이 한글로 번역되어 간행되던 해는 바로 1910년이었다. 이 책의 역자를 추정하기 위해서는 그 간행 연도를 우선 주목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베네딕도 수도회는 1909년 2월 서울에 진출하여 그 활동을 막 시작했다. 이때 독일의 오틸리엔에 본부를 두고 있던 베네딕도 수도회에서는 조선교구장이었던 뮈텔 주교의 초청을 받아 사우어 신부 등을 조선에 파견하였다. 이들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학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입국 직후부터 조선어를 배웠다. 그러나 이들의 어학 실력이 입국 1년 만에 책자를 번역할 수 있을 정도까지 이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이 “성분도언행록”에는 토속적인 어휘들이 적지 않게 나타나고, 그 번역도 매우 유려한 필치로 되어 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생각하면 이 책자의 번역자는 아마도 틀림없이 한국인이었을 것이다. 한편 당시 중국의 한문 교리서에 대해 연구한 기존의 자료를 통해서는 이 책이 한문으로 번역되었다는 증거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 책은 라틴어 원전에서 한글로 번역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라틴어를 해독할 수 있었던 한국인으로는 우선 용산의 예수성심신학교에서 배출된 신부를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합방’ 당시까지 이 신학교에서 배출된 한국인 신부는 모두가 15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이 책을 번역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한국인 성직자 가운데에는 한기근(韓基根) 신부가 비교적 활발한 번역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라틴어역 성서인 불가타본을 저본으로 하여 한글 성서를 번역하기도 했다. “성분도언행록”은 한기근 신부가 번역한 복음 성서와 문투에 있어서 유사한 점이 있고, 또 책자의 간행 과정에서 고유명사 옆에 줄을 그어 넣는 등 일종의 보조 부호도 사용하고 있다. 이 보조 부호는 한기근 신부가 그 사용을 제안한 바 있었다. 이러한 상황으로 미루어 짐작해 볼 때 “성분도언행록”의 번역자로 한기근 산부를 상정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번역자가 한기근 신부라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미진한 면이 너무나 많다.

 

“성분도언행록”(59張, 12.7Cm×20.5Cm)에는 이 책의 간행처가 명기되어 있지는 않고, 이 책이 ‘1910년 감목 민 아오스딩 감준’으로 간행되었다는 사실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당시 조선교구에서 간행했던 여타의 교회 서적과 마찬가지로 서울 종현에 있던 경향신문사에서 간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이 책은 활판본으로 간행되었지만 그 장정은 한장본(漢裝本)으로 되어 있으며 본문 용지도 전통 한지를 쓰고 있다. 이 책의 한 면은 10행 22자로 조판되어 있다. 그리고 성 베네딕도의 생애에 관한 10매의 도판이 아트지에 따로 인쇄되어 이 책 본문 사이사이에 합철되어 있다. 여기에서 독일 교회 예술의 정수를 보여 준 보이른 계통의 성화(聖畵)들이 조선의 신도들에게 소개되기 시작했다.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인쇄와 편집 등의 특성을 살펴볼 때, 이 책은 우리 나라 교회의 출판 문화의 발전 과정을 점검하는 데에도 주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내용

 

“성분도언행록”에는 번역자가 작성한 서론이 있다. 이 서론에서는 먼저 ‘하나인 성교회’ 안에 다수의 수도회가 있을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수도회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수도회란 순명과 신빈(神貧)과 정결(貞潔)이라는 복음 삼덕을 지키는 사람들의 모임임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 교회사에서 수도회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계속해서 설명한다. 또 유럽 사회와 문화의 발전에 기여한 수도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 책의 간행 목적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모든 제형들은 이 책을 보고 신익(神益)을 얻으며, 또 많이 분도 수도원에 들어와 성 분도의 존귀하온 성덕을 효법(效法)함이 나의 바람이오 다행이로다.” 즉 남자 신도들에게 수도 생활의 의미를 알려 주고 분도 수도원에 더 많이 입회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펴냈던 것이다.

 

1910년에 간행된 이 “성분도언행록”은 모두 43장에 걸쳐서 베네딕도 성인의 어린 시절과 수도 생활 그리고 수도원의 창건과 수도 규칙의 제정에 관한 사실들이 정리되어 있다. 성인이 행한 여러 기적과 동생 스콜라스티카와의 관계나 아끼던 제자 마오로와의 관계에 관한 기록도 있다. 그리고 이 책의 끝 부분에는 성 베네딕도의 수도 규칙이 널리 전해진 사실과, 성 베네딕도의 성패(聖牌)에 관한 설명과 전대사 등이 수록되어 있다.

 

 

맺음말

 

“성분도언행록”은 1910년 우리 나라의 신도들에게 수도 생활의 모습과 위대한 수도자의 모범을 제시해준 책자이다. 이 책자를 통해서 우리 나라의 신도들은 성 베네딕도에 대한 인식과 수도 생활에 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그리고 조선에 진출하여 활동하기 시작한 베네딕도 수도회에 대해 올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베네딕도 수도회의 초기 성소자 가운데서는 이 책의 영향을 일정하게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이 책은 교부들의 업적에 관한 최초의 번역서이다. 당시 우리 교회의 성직자들은 라틴어를 생활 용어로까지 사용하고 있었지만 라틴어로 된 교부들의 문서 하나 제대로 번역해 내지 않았다. 그 만큼 당시의 교회는 자신의 문화 인식에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러한 약점의 유일한 예외로 우리는 이 “성분도언행록”을 들어야 하겠다. 그러나 교부의 문헌이 본격적으로 번역되기에는 이 책이 간행된 이후 50년 이상이나 기다려야 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생각해 볼 때 이 책은 교부들의 주요 자료에 대한 번역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는 책자이기도 하다.

 

* 조광 이냐시오 교수는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경향잡지, 1995년 1월호, 조광 이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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