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신앙 유산: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한 묵상 - 묵상신공(默想神工)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03 ㅣ No.353

[신앙 유산]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한 묵상 : 묵상신공(默想神工)

 

 

머리글

 

그리스도교 신앙을 이어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을 그침 없이 가꾸기 위하여 묵상 기도를 계속하고 있다. 우리 나라 교회에서도 초창기부터 이 묵상 기도를 장려하였다. 그러기에 1801년 박해 당시 압수되었던 천주교 서적 목록 가운데에서도 “묵상지장”(默想指掌)이나 “묵상”(默想)과 같은 한문본 묵상서들과 함께, “묵상디쟝”, “묵샹졔의”와 같은 한글로 된 묵상서들이 발견되고 있다. 그리고 1801년 이후의 박해 시대 우리 교회에서도 여러 묵상서를 저술 간행해 왔다. 이와 같은 사실을 보면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하느님의 은총을 얻고 구원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 묵상 기도를 중요하게 생각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원래 묵상서는 묵상 기도를 드리는 데에 도움을 주기 위해 편찬한 책자이다. 그런데 묵상 기도는 염경 기도와는 달리 ‘생각만으로 드리는 기도’이며, ‘정신의 기도’이다. 그러므로 굳이 어떠한 교재나 책자가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묵상 기도를 효율적으로 드리기 위해서는 묵상의 방법이나 그 주제를 정리하여 제시해 주는 책자가 필요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박해 시대 이래 우리 교회에서는 여러 묵상서들을 저술 간행하게 되었다.

 

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신앙의 신비나 진리를 묵상의 주제로 삼는데, 특히 예수의 일생을 비롯한 성서의 내용이나 성인들의 생애와 교회의 가르침을 주제로 한다.

 

 

“묵상신공”이란 어떤 책인가?

 

개항기에 저술되거나 번역된 책자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해서 집중적인 묵상을 이끌어 주는 책자로 우리는 “묵상신공”을 주목할 수 있다. 박해 당시의 용어 가운데 ‘묵상신공’이란 말은 오늘의 ‘묵상 기도’를 지칭하는 말이다. 현재 한국교회사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는 이 책은 모두 아홉 책의 필사본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은 각 권마다 그 크기가 다르지만, 아홉 책은 본문만 헤아려 보아도 모두 887장(張)으로 되어 있는 매우 큰 책자이다. 이 “묵상신공”은 박해 시대나 개화기에 편찬된 묵상서 가운데 가장 큰 부피의 책자일 것이다. 필사본의 표지에 기록된 내용을 검토해 보면 이 필사본은 적어도 1888년부터 1889년 사이에 필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필사본은 뮈텔(Mutel) 주교에게 보관되어 있었다.

 

한편, 실물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중국 교회에서는 1858년에 목판본 단권(單卷)으로 된 “묵상신공”(默想神功)을 간행한 바 있다 한다. 그리고 홍콩 ‘나자렛 출판사’의 1924년도 도서 목록에 보면 1904년에 그 출판사에서 단권으로 된 “묵상신공”을 활판으로 간행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출판사는 파리 외방전교회에서 운영하던 출판사였다. 그런데 한글 필사본으로 된 이 “묵상신공”은 모두 9책으로 되어 있고, 이는 중국에서 단권으로 간행된 “묵상신공”과는 그 크기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가 나고 있다. 그러므로 현존하는 한글 필사본이 중국 교회에서 간행한, 같은 이름의 묵상서를 번역한 것이라 말하기에는 좀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문장 가운데에는 한문으로부터 번역한 듯한 문장의 특성들이 드러나는 부분도 있다. 그렇다면 한글 필사본 “묵상신공”은 한문에 비교적 능통했던 어떤 조선인이 중국의 선교사들이 저술한 한문 묵상서를 번역했거나 부분적으로 참조하며, 또 다른 독창적 노작으로써 이를 저술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 모든 가정은 중국에서 간행된 “묵상신공”과 한글 필사본과 면밀한 대조 작업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어디까지나 가정으로서만 남아 있어야 한다.

 

 

묵상신공의 내용

 

현존하는 한글 필사본 “묵상신공” 아홉 책 가운데 첫째 권에는 ‘성모의 모든 첨례’에 관한 특별한 묵상을 수록하고 있다. 즉, 여기에서는 성모 시잉 모태 첨례, 성모 영보 첨례, 성모 몽소 승천 첨례, 성모 성심 첨례, 성모 성탄 첨례, 성모 자헌 첨례를 비롯한 15개의 성모 관계 축일에 바칠 수 있는 묵상 기도들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이어서 예수 성심 첨례, 저성 첨례를 비롯한 11개의 주요 축일에 드릴 수 있는 묵상 주제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에 이어서 성직자의 지위와 덕행에 관한 해설적 기록과 그리스도께 대한 기도문이 실려 있다. 즉, “묵상신공”의 첫째권은 성모에 관한 축일과 그 밖의 주요 축일에 할 수 있는 묵상 자료를 수록해 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성직자의 신분과 덕행에 관하여 자세한 기록을 남기고 있음을 보면 혹시나 이 책이 신학생 내지는 수도자나 성직자의 묵상서로 편찬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제2권부터 제9권까지를 들 수 있다. 여기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가르침을 매일 한 부분씩 제시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묵상을 집중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즉 이 책의 제2권에서는 삼왕래조 후 6주간에 걸쳐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을 비롯하여 30년 간에 걸친 사생활에 관한 묵상을 지도하고 있다. 그리고 제3권과 제4권에서는 봉재 전후 7주간에 걸쳐 예수의 수난과 그 고뇌 그리고 십자가에서의 고통과 죽음에 관한 묵상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이어서 제5권에서는 부활과 승천의 6주간에 걸쳐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에 관한 여러 사적들을 묵상하도록 제시해 주고 있다. 이리하여 이 책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구속과 부활 승천에 관한 사항들을 깊게 묵상하며 예수에 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기를 강력히 권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성신 강림 후 28주간에 걸쳐서는 매일같이 그리스도의 행적이나 가르침과 그리스도와 관련된 여러 사실들이 묵상 자료로 계속하여 제시되고 있다. 즉 여기에서는 삼위 일체인 하느님관을 전제로 하여 성령과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성체성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계속하여 임하심을 말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공생활에서 드러나는 여러 사실들, 예를 들면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고 열두 사도를 선발하며, 각종 기적을 행하신 일을 묵상하도록 이끌고 있다. 이에 이어서 산상 수훈이나 사랑의 계명과 같은 가르침을 감동적으로 제시하며, 그 가르침을 따르기를 촉구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친히 가르쳐 준 주의 기도[天主經]에 관해 묵상을 유도하고 있기도 하며, 씨 뿌리는 이의 비유를 비롯한 각종의 비유를 묵상하도록 권하고 있다.

 

이상에서와 같이 “묵상신공”에서는 모두 47주간 329일에 걸쳐 매일같이 4복음서 특히 공관 복음서를 중심으로 하여 그리스도를 묵상하도록 적절한 성서 구절을 제시하며 해설해 주고 있다. 일년 365일을 감안해 보면 이 책에는 대림 시기와 성탄 주간을 포괄하는 모두 일곱 주간에 관한 묵상 자료들이 결락되어 있다. 이는 대체로 한 책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그렇다면 이 “묵상신공”은 아마도 대림 시기와 성탄 주간을 포함하여 대략 10책으로 편성되었을 가능성이 짙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는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을 예언하고, 그 성탄을 서술해 주는 각종 성경 구절들이 묵상 자료로 제시되었을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현존하는 “묵상신공” 아홉 책은 미완성본이었거나, 그 후반부 일부가 분실된 영본(零本)일 가능성이 높다.

 

 

맺음말

 

“묵상신공”은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리스도에 대한 묵상을 집중적으로 이끌어 주는 책자이다. 물론 그 책의 제1권에서는 당시 교회에서 존중하고 있던 성모 마리아의 축일 등의 묵상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이고 이 책의 원래 저술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에 있었다.

 

이를 위해서 이 책에서는 매일의 묵상마다 묵상의 주제를 제시해 주고 전체 묵상을 초사(初辭)와 계사(繼辭) 그리고 종사(終辭)로 나누어 각 부분마다 해당되는 성경 구절과 그에 대한 해설을 제시해 주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1880년대 후반기 이땅에서 도달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인식의 최고봉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풍부한 성경 구절을 통해 개항기 당시 천주교회에서 시도하고 있었던 성경 번역의 정도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책은 성서 번역사의 규명에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우리 나라 영성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현행본 “묵상신공”은 간행을 목적으로 하여 쓰여졌고, 일일이 교정을 보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개항기 당시 이 책의 간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책이 공간되어 널리 읽힐 수 있게 된 것은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나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이를 영인본으로 간행한 1986년 이후의 일이었다. 이 책의 필사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부지(不知)의 인물에게 찬탄의 정을 전하며, 이 책에 관해 본격적으로 연구할 미지(未知)의 인물을 나는 그리워한다.

 

[경향잡지, 1994년 12월호, 조광 이냐시오(고려대학교 교수)]



815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