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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앙 유산: 천국에서의 삶을 향하여 - 사후묵상(死後默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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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6-30 ㅣ No.341

[신앙 유산] 천국에서의 삶을 향하여 : 사후묵상

 

 

머리글

 

그리스도교의 오랜 가르침 가운데에는 천국과 지옥에 관한 내용이 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세상에서 행한 바에 따라 죽은 다음에 천국에서 영복(永福)을 누리거나 지옥에서 영고(永苦)를 받게 된다고 가르쳐 왔다. 이는 세상에서 착한 일을 하는 이에게는 천국이 보장되어 있고 그렇지 않는 사람은 지옥벌을 면할 수 없다는 상선 벌악(賞善罰惡)의 가르침이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죽은 다음에 반드시 겪게 되는 천국이나 지옥에로의 갈림이 하느님의 심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발해 왔다.

 

박해 시대 이래 지난날의 우리 교회에서는 한동안 사말(四末)에 대한 묵상을 강조해 왔다. 사말이란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죽음과 심판 그리고 천국과 지옥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당시의 교회에서 사말을 강조한 까닭은 인생의 궁극적 목표가 잠시에 지나지 아니하는 현세에 있지 아니하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데에 있음을 확실히 해주기 위해서였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천국의 삶을 향하여 나아가야 함을 가르쳤고, 이를 위해서는 세상에서 덕행을 닦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의 교회는 세상에서의 덕행을 권하는 방법으로 죽은 다음에 겪게 될 천국의 영원한 복락을 강조했고 지옥 고통의 두려움을 일깨워 주었다. 이러한 의도 아래 여러 서적들이 저술되었고 널리 읽히고 있었다. “사후묵상”도 바로 이와 같은 목적 아래 쓰여진 묵상서이다. 이 책에서는 사말에 관한 본격적인 묵상을 권유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천국과 지옥에 관한 선명한 대비를 통해서 내세에 대한 확실한 인식을 신도들에게 심어 주고 있었다.

 

 

사말에 대한 이해

 

삶과 죽음이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큰 문제이다. 그러기에 종교는 사람의 삶과 죽음에 관한 문제를 집요하게 추궁하며, 그 삶의 의미를 밝혀 주고 죽음이 곧 끝남이 아님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 겨레들도 이미 오래 전부터 삶과 죽음의 의미를 탐구해 왔고 내세의 존재를 믿어 왔다. 특히 불교가 수용된 이후 우리 선조들은 내세라는 시간대에 관하여 더욱 선명한 인식을 할 수 있었다.

 

천주교 신앙은 그 수용 초기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불교의 일종으로 잘못 인식되기도 했다. 그리고 신도들도 불교적 문화를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천당 지옥이나 상선 벌악과 같은 가르침을 더욱 쉽게 믿고 따를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 교회사의 초창기부터 천당, 지옥이나 상선 벌악에 관한 깊은 인식이 확인되며,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우리 교회사에서 사말에 관한 서적의 존재가 처음으로 확인되는 때는 1801년이었다. 이 해에 관청에 압수된 천주교 서적 가운데에는 “사말론”(四末論)이라는 한문 서적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나라 교회에서는 일찍부터 “사말론”이란 한글 묵상서도 있었다. 사말에 관한 교회의 서적으로는 이 밖에도 “천당직로”나 “연옥략설” “사말일언”과 같은 책이 전해지고 있으며, “사후묵상”도 사말을 논하는 책으로 신도들에게 읽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우리의 전통적 종교 심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말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이해시키는 데에 기여하고 있었다.

 

 

지은이는 누구인가

 

“사후묵상”은 일찍부터 신자들에게 읽혀 왔던 한글로 쓰여진 교회 서적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당시의 한글 교회 서적 중 상당수는 중국에서 간행된 한문 교리서의 번역본이다. 그러나 이 “사후묵상”이 한문 교리서에서 번역된 것인지 아니면 조선 교회에서 저술한 것인지에 관해서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렇지만 하나 분명한 사실은 “사후묵상”이란 제목을 가진 한문 교리서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번역서가 아니라 조선 교회에서 지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겠다.

 

우리는 이 책의 저자가 누구인지를 밝힐 수는 없지만, 이 책을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서지(書誌) 사항을 주목해 보아야 한다. 이 책은 오직 필사본으로만 전해져 오던 책이었다. 이 책의 필사본은 현재 한국교회사연구소에 세 종류가 소장되어 있다. 그 필사본 가운데 한 권에는 그 책의 필사 연대가 1894년이고 소유주는 최창근(崔昌根, Le Gendre, 1866~1928년) 신부라고 밝혀져 있다. 이를 보면 이 책은 최소한 1894년 이전에 저술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을 검토해 보면 상당한 교리 지식과 문학적 상상력을 가진 사람에 의해 저술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당시 천당과 지옥의 묘사 등에 있어서 탁월한 문학적 재질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는 서양 교회사에 근거하는 여러 고사들을 구사하고 있으며 당시의 교리 체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하고 있다. 또한 그는 조선의 문화 전통에도 상당한 식견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가 서술한 공심판에 이르기 직전의 상황에 대한 묘사는 성서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우리의 ‘정감록’과 같은 감결(鑑缺) 사상에서 말세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는 상당한 교리 지식과 문학적 소양을 가진 조선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후묵상”의 짜임새

 

이 책에서는 “사람이 항상 사후를 생각하여 자기를 경계하면 선을 행하기 쉽고 악의 방자함을 다스리기 쉬움”을 말함으로써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현세에서의 효용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우리가 일생을 거룩히 지내며 날마다 천당길을 행하면 영고의 지옥을 면할 것임”을 선언하며 이 책의 가르침이 내세에서의 행복을 보장해 줌을 말하고 있다.

 

이 책의 앞 부분에서는 먼저 죽음에 관한 묵상을 이끌어 주고 있다. 즉 세상의 영화는 잠시뿐이며 인생은 풀잎 끝의 이슬과 같은 존재임을 말한다. 그리고 육신보다 영혼이 소중함을 강조하며 영혼의 구원을 위해 공덕을 세우라고 촉구한다. 이에 이어서 사심판(私審判)에 대해 논하면서 하느님의 심판 대전에 홀로 선 인간의 고독한 자태와 평생의 행실에 따라 천당과 지옥으로 그 내세에의 길이 갈림을 말한다.

 

죽음과 사심판에 대한 서술에 이어 죄인이 들어가는 지옥에 관해서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지옥은 대죄를 범한 후 통회하지 아니하고,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가는 곳으로 규정되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악인들이 마귀로부터 갖가지 고통을 강요당하고 있음을 말하며, 특히 지옥에서는 무형의 불이로되 뜨겁기는 이 세상의 모든 불보다 억만 배는 더 뜨거운 불로서 악인들을 벌하고 있음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의 지은이는 지옥의 고통이 큰 만큼 천당의 영화는 즐거운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천당은 여러 가지의 복되고 기이한 은혜가 있는 곳으로 설명되고 있다. 또한 천당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동안 연옥에서 보속해야 하는 경우도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의 조짐이 있은 다음에 공심판이 있고 공심판 후에는 부활한 육신과 영혼이 다시금 결합해 천국에서 영복을 누리게 된다고 밝혀 준다.

 

 

마무리

 

“사후묵상”에서는 신도들에게 당시의 신학에서 가르치던 그리스도교적 내세관을 뚜렷이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예비를 강조하며 천당의 아름다움과 지옥불의 고통스러움을 서술하면서 신도들에게 바른 길을 걷도록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저자는 신도들에게 지옥불의 두려움을 강조하는 데에 더욱 역점을 두고 있다. 이와 같은 부정적 방법을 통한 교리의 설명은 당시 대부분 교회 서적들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사후묵상”은 우리의 종교적 심성과 정서에 알맞게 지어진 책이기도 하다. 상선 벌악에 대한 전통 문화의 가르침은 우리 신앙의 선조들에게 내세에서의 영복과 영벌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천당과 지옥에 관한 이 책의 논의도 우려의 문화와 무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조선인 신도들의 종교적 감흥을 읊은 ‘천주가사’에 교과서처럼 사용될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그 문학적 표현 방법에 있어서도 전통 문학의 특성들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전통적 종교의 가르침과는 달리 심판자이신 하느님의 존재나 공심판, 사심판 등에 관한 가르침을 우리 겨레에게 새롭고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또한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단독자로서 개인의 존재를 부각시켜 주고 있다.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이 같은 특징을 감안해 볼 때 이 책은 우리 겨레가 새로운 내세관과 인간관 그리고 신관(神觀)을 터득해 나가려는 데에 적지 않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신도들에게 현세에서의 도덕적 행동을 강화시켜 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현재적 의미는 바로 이런 데에서 확인되어야 한다.

 

[경향잡지, 1993년 11월호, 조광 이냐시오(고려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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