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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앙 유산: 착한 삶과 거룩한 마침 - 선생복종정로(善生福終正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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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6-30 ㅣ No.340

[신앙 유산] 착한 삶과 거룩한 마침 : 선생복종정로(善生福終正路)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들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그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성찰과 설계의 과정에서 사람은 자신의 삶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갖게 마련이다.

 

우리 선조들도 자신의 삶에 대해 같은 의문을 갖고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상선 벌악(賞善罰惡)의 문화 전통을 만들어 착한 삶에의 길을 훤히 터주었고, 선을 행한 사람들에게는 복된 미래를 튼실하게 보장했다. 그러다가 18세기말에 이르러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새로운 문화와 질서를 창조하기 위해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교적 삶의 방식과 그 미래에 대한 가르침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착한 삶과 복된 마침을 연결시켜 나갔다. 이처럼 삶과 마침을 연결시켜 착하고 복된 생애를 일깨우기 위하여 저술된 책이 바로 “선생복종정로”(善生福終正路)이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17세기 초엽 중국에 진출했던 예수회 선교사들이 채택하고 있었던 선교 이론은 이른바 보유론(補儒論)으로 불리우는 적응주의적 선교 방법이었다. 이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현지의 문화 사이에 조화를 시도하는 이론이었다. 이 이론의 대표적 창안자는 “천주실의”를 지은 마테오 리치(1552~1610년)였다. 그의 이론은 중국에 입국한 후배 예수회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마테오 리치의 영향을 받은 선교사 중에 루벨리(Andre Jean Lubelli, 陸安德, 1610~1683년)가 있었다. 그가 바로 “선생복종정로”를 지었다.

 

그는 1610년 나폴리 왕국의 레체(Lecce)에서 출생했다. 출생 후 그는 향리에서 교육을 받았고 그 후 예수회에 입회하여 선교사로 훈련을 받았다. 그가 처음으로 선교사가 되어 그리스도교를 전한 곳은 인도였다. 그는 1640년 이곳에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그 후 그의 선교지는 중국으로 바뀌었고 일단 마카오로 가게 되었다. 여기에서 그는 다시 하이난(海南)으로 파견되었고, 1646년부터 이곳에서 전교하기 시작했다.

 

특히 루벨리는 중국에서 선교하는 과정에서 선교를 효율적으로 진행시키기 위해 많은 책들을 짓게 되었다. 그가 지은 서적으로는 “선생복종정로”를 비롯하여 “진복직지”(眞福直指), “성교요리”(聖敎要理), “묵상규구”(?想規矩) 등 10여 책에 이르고 있다. 이 책들은 그리스도교 교리의 정수를 전하되 중국인들을 위하여 중국의 문화를 감안해서 저술된 것이었다.

 

그가 지은 “선생복종정로”가 처음으로 간행된 것은 1652년이었다. 이때 이 책은 베이징에서 목판본 2책으로 간행되었다. 이로 볼 때 이 책은 그의 초기 저작 가운데 하나임을 알 수 있다. 그 후 이 책은 1794년에는 구베아 주교의 인준을 받아 북경에서 다시 간행되었고, 1852년에는 상하이에서 마레스카 주교의 출판 허가를 받아 거듭 간행될 수 있었다. 이 책은 1917년에 신식 활판본으로 발간되었다. 이 책이 세기(世紀)를 거듭하며 간행된 까닭은 당시의 교회에서 이를 명저로 평가했기 때문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이 책의 전래와 번역

 

이 책이 우리 나라에 언제 전해졌는지는 확실치 않다. 1801년 박해 중 정부 당국자들에게 압수되었던 천주교 서적 목록에는 “진복직지”와 같은 루벨리의 후기 저작이 들어 있지만, “선생복종정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당시의 조선에는 1787년 10월 이후 비변사(備邊司)의 명에 의해 한문 서학서의 수입이 엄격히 금지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1801년 당시에 조선의 교회에서 읽히고 있던 책들은 거의가 1787년 이전에 수입되었던 것으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1787년의 금령 이전에 조선인들이 베이징에서 이 책을 접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 책은 당시에 이미 절판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이 책을 다시금 손쉽게 볼 수 있게 된 때는 아마도 구베아 주교가 이 책을 간행한 1794년 이후겠지만, 이때 조선인들은 금령으로 인해 이를 들여오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이 조선에 전래된 때는 1852년 마레스카 주교가 이 책을 다시 간행한 이후였을 것이다. 더욱이 마레스카 주교는 조선에 파견된 프랑스 선교사들과도 가까운 사이였다. 이러한 전후 사정을 감안할 때 이 책이 조선에 전래될 수 있었던 시기는 1852년 이후 어느 때였다는 것이 가장 개연성 높은 추정이라 생각된다.

 

“선생복종정로”는 현재 한글 필사본 상하 2책으로 전해져 있다. 현존하는 사본 가운데에는 1876년 5월 13일이라는 날짜와 함께 이 책의 소장자였던 블랑(Blanc) 주교의 서명이 들어 있는 책자가 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이 책은 개항을 전후한 시기에는 틀림없이 번역되어 읽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1876년이면 블랑 신부가 조선에 입국하던 해이다. 그는 조선에 입국하기 전 만주에서 리델 주교를 도와 교리서를 한글로 번역하는 작업에 종사한 바가 있다. 아마도 이때에 “선생복종정로”는 한글로 번역되었고, 그 필사본을 블랑 주교가 소장해 조선에 입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의 내용

 

“선생복종정로”는 일상 생활 속에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착하고 바르게 살며, 삶을 마감할 때에는 거룩한 죽음을 예비하기를 신도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저술된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하느님을 받들고 자기 영혼을 구하는 일’[事主救靈]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임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사주구령’을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닦고 집을 다스리며 기도를 열심히 해야 함을 우선 강조하고 있다.

 

저자가 드러내고 있는 이와 같은 입장은 유학에서 논의하는 ‘수신 제가’(修身濟家)에 관한 가르침과 그 형식에 있어서는 완전 일치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이 책에서 ‘한가함’을 경계하고 ‘근신’을 강조했다. 그리고 가부장권(家父長權)의 중요성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그의 입장을 당시 유학에서 제시하던 윤리적 덕목과도 외적인 측면에서는 합치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유교적 덕목을 서술의 주제로 삼되, 그 내용만은 그리스도교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고자 했다. 여기에서 이 책의 저자도 보유론의 입장을 이어받았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그밖에도 기구하고 묵상하는 법 및 교회 서적을 읽는 방법이나 강론을 듣는 방법도 밝혀 주고 있다. 그리고 성체성사와 이를 잘 영하기 위한 준비로써 고해성사에 관해 논하고 있으며 미사의 신비한 은혜를 밝혀 주고 있다. 또 이 책의 하권에서는 성모 공경 및 예수의 수난 공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논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복된 죽음을 맞는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이 한문본 “선생복종정로”는 상하 두 책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의 상권에서는 주로 착하게 사는 법을 다루고 있으며, 하권에 이르러서는 거룩하게 죽기 위한 준비를 촉구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한글본 “선생복종정로”도 두 책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한글본은 한문본 상권만을 번역하여 이를 상하 두 책으로 묶어 놓은 것이다.

 

“선생복종정로”의 번역자들이 이 책의 상권만을 번역한 것은 그들이 복되게 죽는 법 못지않게 착하게 사는 방법을 존중했던 결과로 생각된다. 그리고 그들은 착하게 사는 방법으로 그리스도교적 수덕(修德)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책을 통해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새롭게 접할 수 있었고 신앙인으로서의 감격을 공유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이 책에서는 인간 상호간의 관계가 수평적인 것임을 전제로 하여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고 있었다. 이는 신분제 사회의 수직적 사회 질서에 대한 이론적 도전이었다.

 

 

마무리

 

한 권의 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한 권의 책으로 사람의 생각이 바뀔 수 있고 사회의 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선 후기 내지는 개항기 우리 교회사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간행되었던 책들을 주목하게 된다. 우리는 그 책들을 통하여 당시 교회의 신학적 특성과 더불어 신앙인들이 품고 있었던 이상(理想)의 실상을 올바로 이해하게 된다. 그들의 믿음살이에서 드러나는 특징도 책을 통해서 파악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주목할 때에는 그 책의 파급 범위를 살펴야 한다. 책이 많이 보급되어 그 두드러진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한글로 간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책들은 소수인만이 읽을 수 있었던 한문본보다는 월등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렇다 하여 한문본 서적이나 미처 간행되지 못하고 필사본으로 전파되어 나갔던 책들의 가치도 과소 평가할 수 없다.

 

“선생복종정로”는 한글로 번역된 책으로서 우리 신앙의 선조들에게 일정한 영향을 준 책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개항기를 전후한 시기, 우리 교회가 드러내고 있던 신학적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경향잡지, 1993년 10월호, 조광 이냐시오(고려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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