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신앙 유산: 은총 속의 삶을 위해 - 천당직로(天堂直路)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6-30 ㅣ No.339

[신앙 유산] 은총 속의 삶을 위해 : 천당직로(天堂直路)

 

 

머리글

 

신앙과 신학의 관계는 무엇일까? 신학이란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이성의 빛을 통해 밝히고 체계적으로 이해해보려는 노력일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이 영글어 가는 과정에서 신학이 요구되고 발전되기 마련이다. 물론 신학적 소양이 없더라도 훌륭한 신앙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앙이 없는 신학이 성립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이러한 신학과 신앙의 관계는 신앙이 신학에 선행함을 말해준다.

 

박해 시대 우리 나라의 교회에 있어서도 신학에 선행하여 신앙이 있었다. 그러나 이 신앙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신학적 지식의 보급이 필요했다. 당시 교회의 지도자들은 일곱 가지 성사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신도들에게 전하기 위해 ‘성사론’(聖事論)의 연구 성과를 요약하여 “사본 문답”(四本問答)과 같은 교리서를 통해 영세, 견진과 고해, 성체성사 등을 설명해 주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은총론’(恩寵論)에 관한 가르침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도 별도의 책자를 간행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이 까닭에 중국 교회에서 한문으로 저술되었던 “천당직로”가 한글로 옮겨져서 발간되었다. 이 책의 보급을 통해 신도들은 신학의 한 영역인 ‘은총론’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접근할 수 있었고, 은총을 보존하고 향유하는 방법을 밝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이로써 은총 속에서의 삶을 누리며 그리운 천당을 예비할 수 있었다.

 

 

천당에의 그리움

 

“천당직로”는 ‘천당으로 가는 지름길’을 뜻한다. 이 책의 서문에서는 “천주교 도리를 믿고 따르기 위해서는 영세만으로는 부족하니, 천당에 오르려거든 마땅히 천당 길로 가야 한다.”고 말하면서 천당에의 지름길이 ‘은총’ 속에서 사는 길임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박해 시대의 신도들은 천당에서의 삶에 대한 특별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었다. 신도들은 이 세상을 잠시 거쳐 가는 귀양살이와 같이 생각했다. 그들은 세상에서 세운 공에 따라 죽은 다음에는 천당에서의 영복이 보장되어 있음을 굳게 믿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천당에 대한 그리움은 인간의 윤리성을 강화시키는 근거가 되었다. 천당은 그들에게 있어서 최종의 희망이었으며 안식처였다.

 

그러기에 그들은 천당을 지향하는 한 어떠한 고통이라도 인내할 수 있었고,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자신의 양심을 지켜 나갈 수 있었다. 그러므로 당시의 신도들이 천당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강렬한 희망은 결코 현세의 가치를 망각한 결과가 아니었다. 또한 그것은 성속(聖俗) 이원론의 잘못된 병폐에서 유래된 감정이었다고 간단히 매도해 버릴 수는 더욱 없다. 그들이 생각했던 천당은 현세에 대한 대립 개념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천당이 있기 때문에 현세에서 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천주의 무한하신 자비와 성모 마리아의 도우심으로 천당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천당 복은 “이 세상의 모든 영광과 모든 즐거움보다 천만 배나 더 큰 것”으로 이해되었다. 신도들은 이러한 천당에서 천신과 성인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은 자신들만의 특권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이 특권을 소중하게 여겼다.

 

 

“천당직로”가 번역된 경위

 

“천당직로”는 중국 사천(四川) 교구에서 선교 활동에 종사하고 있던 장 마르땡 모이(J. M. Moye, 1730~1793년)가 1780년경에 지은 책이다. 모이 신부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선교사로서, 우리 나라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던 “천주성교공과”의 기본 자료가 된 “천주경과”(天主經課)를 지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1954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서 복자 위에 올랐던 인물로서, 당시 파리외방전교회에 소속된 중국 선교사 가운데 대표적 신학자였다.

 

이 책이 조선에 전래된 과정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일부의 사람들은 1837년에 조선에 입국한 앵베르(Imbert, 1796~1839년)가 이 책을 가져온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는 앵베르 주교도 조선에 입국하기 이전에는 중국의 사천 지방에서 선교에 종사했었다는 사실에 근거한 추정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추정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자료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이 책자를 처음으로 번역한 사람에 대해서도 확실한 정보를 우리는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1864년을 전후하여 간행된 여러 교회 서적들은 거의 모두 다블뤼(Daveluy, 1818~1866년) 신부가 황석두(黃錫斗, 1813~1866년)를 비롯한 신도들의 도움을 받아 간행한 것이다. 여기에서 이 책자의 번역자로 다블뤼가 지목되기도 한다. 그러나 1864년에 간행되었다는 목판본 “천당직로”의 실물을 검토할 수가 없었고, 또한 이 책의 한글 번역 사본이 몇 종류가 전해지고 있음을 볼 때 이 책의 번역자가 다블뤼 주교라는 통설에도 쉽게 수긍할 수 없는 면이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책은 1864년 목판본으로 찍혀 처음으로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그 후 1884년에는 일본의 요코하마에서 블랑(Blanc) 부주교의 감준으로 활판본 1책(12.5cm×19cm, 51張)으로 간행되었다. 또한 이 책은 1900년과 1915년에 뮈텔(Mutel) 주교의 감준으로 서울에서 간행되었다. 이를 볼 때 우리는 이 책의 영향력이 상당 기간 동안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시 신도들의 신앙과 영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을 주의 깊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천당직로”에 실린 말씀

 

이 책에서는 ‘은총’ 또는 ‘성총’(聖龍)이란 용어를 같이 병용하고 있다.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체계에 따라 은총의 개념을 설명하고 은총의 종류를 제시해 주었다. 여기에서 그들은 은총이 삼위 일체이신 하느님의 기묘한 은혜로서, 하느님이 인간에게 거저 주시는 것임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상존 성총[平常恩寵]과 조력 성총[格外恩寵]을 설명하면서, 성총이 공을 세우는 데에는 필수적인 요소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성총의 ‘기묘한 이익’과 성총을 얻기 위한 기도를 논하고 제시하고, 아울러 성총을 얻는 데에 방애가 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은총론 가운데 가장 특정적인 부분은 ‘성총’과 ‘본성’을 대립적으로 설명해 주는 부분일 것이다. 이 설명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특징적인 사항으로는 이 책의 인간관이 성악설(性惡說)의 입장에서 인간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는 악한 인간의 본성을 성총을 통해 순화시키고자 했다. 그리하여 여기에서는 대략 23조목에 걸쳐 성총과 본성을 대비하여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예를 들어 보기로 하면 다음과 같다. 즉, “성총은 하느님을 만유 위에 사랑하고 하느님을 위해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나, 본성은 다만 자기와 친우를 사랑할 뿐이다.” 또한 “성총은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하지만 본성은 자기의 재리(財利)만을 도모한다.” “성총은 애긍하여 공번됨을 사랑하며 남을 사랑하기를 자신과 같이 하여 자기 것을 남에게 주기를 진정으로 원하나, 본성은 인색하여 다만 자기만을 위하고 다른 사람을 돌아보지 아니한다.” 이상에서 제시된 몇 가지의 사례를 살펴볼 때 당시의 은총론 그 자체도 강력한 실천성을 촉구하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무리

 

우리 나라의 교회에서는 왜 ‘한국 천주교 영성사’ 내지 ‘한국 그리스도교 사상사’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는 것일까? 이는 아마도 우리의 신앙이 유럽이나 중국 교회의 신앙 내용을 옮겨 놓은 듯한 것으로 지레 판단한 결과는 아닐까? 신앙의 원형만 알면 되었지 그 모방된 내용은 알아 무엇하랴는 섣부른 단정의 결과로 우리의 그리스도교 영성사나 사상사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신앙의 수용과 실천이 단순한 모방에만 머물 수는 없는 것이다. 세계사를 볼 때 어느 지역에서든지 외국의 문화가 전파되어 그 민족 문화의 일부인 외래의 문화로 정착되어 나가듯이, 신앙도 또한 단순한 이식이나 흉내냄일 수만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 신앙의 특성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확인해야 한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하느님을 어떻게 생각해 왔고, 소중히 여겼던 윤리적 덕목이 무엇인지를 밝히며, 그리스도교 신앙을 이해하는 데에 드러내었던 특징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정리해야 한다. 이러한 정리 작업을 위해서는 우리 나라에서 간행되었던 각종의 교회 서적들과 신도들의 신앙 고백적 증언들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영성사를 정리할 수 있는 각종 책자와 자료들이 아쉽지 않게 남아 있다. “천당직로”도 이와 같은 연구 작업을 위해서는 반드시 참조해야 할 책이다.

 

[경향잡지, 1993년 9월호, 조광 이냐시오(고려대학교 교수)]



539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