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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앙 유산: 그리스도인의 뿌리 캐기 - 성교감략(聖敎鑑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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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6-30 ㅣ No.332

[신앙 유산] 그리스도인의 뿌리 캐기 : 성교 감략

 

 

머리글

 

모든 사람들에게나 집단에는 두 가지의 ‘신화’가 있다고 한다. 그 첫 번째 신화는 자신이 ‘어디로부터(from) 왔는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에 이어서 사람들은 ‘어디로(to) 갈 것인가’라는 두 번째 신화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민족이나 집안 내력을 알고자 하는 까닭은 현재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올바로 가늠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앨빈 토플러는 ‘미래에 대한 예측의 능력은 과거에 대한 지식에 비례한다.”고까지 말한 바 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이 신앙하는 천주교가 이 세상에 어떻게 세워졌으며, 그것은 또 어떤 경로를 통해 동양에까지 이르게 되었는가를 알고자 했다. 또한 그들은 왜 천주교를 믿어야 되며, 신앙인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진지한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正體性)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19세기 우리 나라의 교회는 신도들이 품고 있는 이 의문에 답해 주고자 했다. 그리고 그 해답의 방법으로서 교회는 일종의 역사책을 저술하여 제시해 주었다. 그 책에는 인류가 창조된 이후부터 당시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과정이 간략하게 정리되어 수록되었다. 이 간략한 기록들은 과거를 돌아보는 거울과 같은 것이라고 당시의 교회는 생각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성교 감략”(聖敎鑑略)이라는 제목을 얻게 되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성교회[聖敎]의 지난날을 간략하게 비춰주는 거울[鑑略]의 구실을 맡고 있다.

 

 

이 책의 간행 배경

 

“성교 감략”은 1883년 요코하마에서 순한글 활판본 상 · 하 두 권(12.1×19cm)으로 간행되었다. 상편에는 구약 성서의 내용이 50장으로 나누어져 131쪽의 지면에 수록되어 있다. 하권에는 신약 성서의 내용이 제1장부터 제26장 사이에 수록되어 있고, 제27장과 제28장은 세계 교회사, 제29장부터 제32장까지는 중국 교회사가 서술되어 있다. 하권은 모두 104쪽의 분량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의 속표지에는 책자가 간행된 연대와 감준자가 밝혀져 있다. 이 책의 감준자는 “부주교 백 요왕”으로 되어 있다. 이 간단한 간기(刊記)를 통해 우리는 이 책이 간행된 과정들을 검토해 볼 수 있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883년에 간행되었다. 이 책이 간행되기 직전인 1882년은 교회 안팎에 여러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우선 나라 안의 사정을 살펴보면 이 해에 한미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되어 개화 정책에 박차가 가해졌다. 그러나 개항으로 인한 파문의 하나로 임오 군란(壬午軍亂)이 폭발하여 나라 안은 어수선한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었다.

 

한편 1882년 조선 교회는 신앙의 자유에 대해 좀더 분명한 전망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전망은 1876년 조선의 개항으로 인해 주어지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개항 직후 조선의 선교를 위해 밀입국했던 리델(Ride1, 李福明, 1830~1884년) 주교는 1878년 조선 정부에 의해 체포, 추방되었다. 그는 그 후 주로 청(淸)에 머물며 조선에의 재입국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는 1882년 일본에 체류하던 중 중풍에 걸려 성무 집행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그는 조선에서 선교하고 있던 블랑(Blanc, 白圭三, 1884~1890년) 신부를 부주교로 임명하고 자신은 그 해 11월초 그의 고향인 프랑스 반느(Vannes)로 돌아갔다. 그 후 블랑은 1883년 7월 8일 일본 나가사키에서 주교 성성식을 가졌다.

 

 

이 책의 저술 과정

 

이 책은 바로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 아래 1883년에 간행되었다. 이 책이 간행된 시기는 블랑이 주교에 서품되기 이전이었다. 그러기에 이 책의 속표지에는 블랑이 “부주교”(副主敎)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의 간행지는 거의 틀림없이 일본의 요코하마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그 곳 요코하마에서는 “한불자전”과 “한어문전”이 1881년 및 1882년에 간행되었다. 요코하마는 당시 신식 연활자(沿活字)로 한글 책자를 간행할 수 있었던 지구상의 유일한 곳이었다. 요코하마의 레비(Levy) 인쇄소에는 순교자 최지혁(崔智爀, 1808~1878년)이 만든 글자본에 따라 주조된 한글 연활자가 있었다. 이 활자와 인쇄 시설들은 1888년 서울 명동의 ‘성서 활판소’로 옮겨져 우리 나라 근대 인쇄 문화의 초창기를 장식하게 되었다.

 

“성교 감략”의 속표지에는 이 책의 원저자가 밝혀져 있지 않고 단순히 “백 요왕 역준”(譯準)으로 되어 있다. 이는 블랑 주교가 친히 번역하고 스스로 출판 허가를 내렸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원저자는 누구인가? 우리는 이 책과 같은 제목의 책자가 목판본 2권 1책(12.7×21.6cm)으로 1866년에 북경에서 간행되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한문본 “성교 감략”(聖敎鑑略)의 역자는 당시 북경 대목구의 감목 대리였던 드라플라스((Delaplace, 田類斯)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프랑스 선교사였던 드라플라스가 “성교 감략”을 지을 때 사용했던 책자가 무엇인지는 더 소급해서 밝혀 보아야 하겠지만 이 일은 차후의 숙제로 남겨야 하겠다.

 

한편 블랑 주교가 역준한 “성교 감략”이 한문본을 번역한 것인지 아니면, 한문본을 지을 때 그 대본이 되었던 다른 책자를 블랑 주교가 직접 구하여 이를 저본으로 삼아 번역했는지 좀더 검토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한글본 “성교 요지”에 중국 교회사에 관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음을 보면 한글본은 한문본에서 번역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블랑 주교가 과연 한문 교회 서적을 직접 번역할 수 있을 정도로 동양의 문화에 정통했는지도 검토해 봐야 하겠다. 아마 블랑 주교는 조선인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아 한문본 “성교 감략”을 번역한 후 이를 감수하여 그 최종 책임을 자신이 지고 이 책을 간행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한문본 “성교 감략”은 중국에서는 그리 널리 읽히지는 못했던 듯하다. 그리고 중국 교회에서는 이 책을 별로 주목하지 않은 듯하다. 왜냐하면 한문본 “성교 감략”에 관한 정보는 중국 교회의 기존 도서에 관한 연구서나 도서 목록 안에서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피스터(Pfister) 신부의 중국 교회 서적에 관한 연구서에는 물론 이 “성교 감략”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또한 중국 교회의 대표적 도서관이었던 서가회(徐家匯)의 ‘서회서루’(徐匯書樓) 도서 목록이나, 파리 국립 도서관(Cataloque de Couraut) 및 바티칸 도서관의 목록에서도 이 “성교 감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렇듯 이 책이 중국에서는 큰 환영을 받지 못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한글로 간행된 이후 상당히 널리 읽히고 있었다. 이는 우리 나라 신도들의 왕성한 역사 의식을 나타내 주는 일일는지 모르겠다.

 

 

이 책에 담긴 내용

 

“성교 감략”의 상권에서는 구약 사기(舊約史記)를 서술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천지 창조와 원조의 범죄, 카인과 아벨, 노아의 홍수, 바벨탑 등에 관해 논하고 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계약, 요셉, 야곱, 모세의 사적, 욥, 여호수아, 사울, 다윗, 솔로몬, 다니엘 및 마카베오 등 구약 성서의 내용을 모두 50장에 걸쳐 인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상권에서 서술하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구세주의 탄생을 구약의 예언자들이 어떻게 예시해 주었나를 밝히고 있는 것들이다.

 

“성교 감략”의 하권은 성모 영보(領報)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및 어린 시절, 공생활의 준비 과정, 열두 사도의 선택과 예수의 행적, 수난과 부활승천 및 강림을 논한다. 이어서 교회의 창설과 바오로 사도의 귀화와 교회사의 전개 과정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은 이렇게 각 장마다 특정 주제에 관해 간략히 설명한 후 그 내용을 다시 간추려 3조목 내지 8조목으로 된 문답의 형식으로 정리하여 제시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문답서나 서술체 문장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동시에 살려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신구약 성서가 모두 간행되기 이전 천지 창조 이래로부터 당시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과정에 관한 지식을 신도들에게 주고자 하여 저술되었다. “성교 감략”은 그 머리말을 통해 말하기를 나라에서 역사서를 펴내는 까닭은 과거에 관한 지식을 통해 경계할 것과 본받을 것을 알게 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교회도 이와 같은 목적에서 책자가 간행되어야 함을 말하고, 이 책의 역할도 바로 이와 같음을 밝혀 주었다.

 

이 책은 “성체 문답” 혹은 “요리 문답”을 공부한 후 거기에 이은 상급 과정으로 학습해야 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리하여 “요리 문답”을 마친 어린이들에게 이 책을 다시 가르쳐,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대한 지식을 심어주고자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교회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확실히 제공하고자 했다.

 

“성교 감략”은 개항 직후 우리 나라의 교리 교육을 이해하고 당시의 신도들이 가지고 있던 역사 내지는 교회사 지식의 수준을 파악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료이다.

 

[경향잡지, 1993년 2월호, 조광 이냐시오(고려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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