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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앙 유산: 참회를 통한 인간 존엄성의 회복 - 회죄직지(悔罪直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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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6-30 ㅣ No.330

[신앙 유산] 참회를 통한 인간 존엄성의 회복 : 회죄직지

 

 

머리글

 

사람은 윤리적 존재이다. 그러기에 사람은 자신을 성찰하여 과오를 찾아내고 이를 참회한다. 사람이 참회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람과 동물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참회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은총의 선물이다. 하느님이 인간의 마음마다 부여해 준 양심을 전제로 하여야 참회가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박해 시대 우리 나라 교회에서는 신도들에게 사람이란 하느님의 모상(模像)을 따라 창조된 존귀한 존재임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로셔 대군 대부(大君大父)이신 하느님께 충(忠)과 효(孝)를 다하도록 가르쳤다. 또한 교회에서는 신도들에게 양심의 존재와 죄의식을 일깨워 주었다. 동시에 교회는 사람과 하느님 사이의 굳은 결속을 다지기 위해 사람들에게 그침 없는 참회를 요구했다.

 

박해 시대 우리 나라 사람들은 엄한 아버지[嚴父]에게 효도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뜻을 조금이라도 어겨서는 아니되는 것, 즉 법규로 생각해 왔다. 그리고 만일 아버지의 뜻을 어겼다면 아버지께 나아가 자신의 과오를 참회하며 용서를 구했다. 이것이 부모에 대한 효도를 위해 요청되던 기본적 자세였다. 이 참회를 통해서 부모와 자식간의 끈끈한 관계가 지속되는 것으로 그 당시 사람들은 생각했다.

 

박해 시대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대군 대부이신 하느님과의 일치를 지속하기 위해, 하느님의 뜻을 어긴 일들에 관해 철저히 참회하고 고해하고자 했다. 그들은 참회를 통해 자신이 하느님의 자식임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고, 자신의 존엄성을 헤아릴 수 있었다.

 

여기서 박해 시대 교회에서는 신도들의 양심 성찰을 돕기 위해 몇몇의 책자를 간행했다. 그 책들 가운데 하나로 “회죄직지”(悔罪直指)가 있다.

 

 

“회죄직지”를 지은 사람

 

“회죄직지”는 조선교구 부주교였던 다블뤼(Daveluy, 1818~1866년)가 저술한 양심 성찰서이다. 이 책은 특히 대죄(大罪) 중에 있는 신도가 고해성사를 볼 수 없을 때, 또는 임종을 맞게 되었을 때 고해성사를 대신하여 상등통회(上等痛悔)를 통해 구원에 이르도록 이끌어 주기 위해 저술 · 간행되었다. 이 책이 처음 간행된 때는 1864년이었다. 이 해에 목판본 1책(11.9×18.2cm)이 간행되어 신도들에게 읽혀지고 있었다. 그 후 이 책은 1862년부터 1900년에 이르기까지 수차에 걸쳐 중간(重刊)되었다. 이 중간본들은 활판으로 인쇄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다블뤼 안(安) 주교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에 관한 문헌 소개류의 글을 보면 이 책은 중국에서 선교하던 예수회 신부 알레니 (爻儒略, Giulio A1eni, 1582~1649년)의 저술인 “회죄요지”(悔罪要旨, 全4冊)를 다블뤼 주교가 번역한 것으로 되어 있다.

 

알레니 신부는 “서학범”(西學凡), “기하요법”(機何要法), “직방외기”(職方外記), “만물진원”(萬物眞源), “척죄정규”(滌罪正規) 등을 저술하여, 조선 후기 우리 나라 지성계에도 일정한 영향력을 주었던 사람이다. 그가 지은 “회죄요지”는 정부 기관에서 1792년에 소각한 서학(西學) 관계 도서의 목록인 “외규장각 형지안”(外奎章閣形止案)에도 들어 있다. 그렇다면 “회죄요지”는 교회 창설 이전부터 우리 나라에 수입되었으며, 궁중의 도서로까지 수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교회가 탄압받던 상황에서 이 책이 정부 기관인 규장각(奎章閣)에 의해 구입 · 소장되었을 것으로 생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듯 “회죄요지”는 일찍부터 전래되었으며, 이 책이 번역되어 “회죄직지”라는 제목으로 간행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약간의 의문이 남아 있다. 우선 “회죄요지”는 모두 4책으로 되어 있는데 한글 목판본 “회죄직지”는 1책으로 되어 있다는 데에서 문제가 제기된다. 또한 “회죄직지”의 속표지에 보면 ‘부주교 안 안토니오 저술, 감목 장 시메온 감준’으로 적혀있다. 즉 이 책의 저자를 다블뤼 주교로 밝혀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흔히 한문서(漢文書)의 번역본은 원본보다 그 부피가 늘어나는 것이 상례이다. 또한 ‘저술’이란 용어는 결코 번역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회죄직지”가 “회죄요지”의 번역본이라는 통설에는 재검토의 여지가 있다.

 

필자는 아직까지 한문본 “회죄요지”를 얻어 보지 못했다. 만일 이 책을 볼 수 있게 된다면 두 책의 내용을 서로 비교 검토하여 통설의 진위 여부를 가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성교예규”의 경우를 통해 살펴보았듯이 다블뤼 주교는 한문 서학서를 대본으로 삼아 한글 번역에만 그치지 않았다. 즉 그는 원본을 참작하되 그것을 그대로 번역하지는 아니했다. 그렇다면 “회죄직지”도 단순한 번역만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블뤼 주교는 자신의 협력자인 황석두(黃錫斗) 등의 도움을 받고, 중국의 “회죄요지”를 비롯한 여러 책들을 참조하여 독창적인 “회죄직지”를 저술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회죄직지”에 담긴 내용

 

“회죄직지”는 모두 4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즉 이 책의 첫째 부분에서는 사람의 죄가 천주의 전능과 인자하심, 공의(公義)로우심, 인내하심 등을 범하는 행위임을 상기시키면서 통회의 기도를 인도한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죄로 인하여 영혼이 받게 될 해(害)를 상기시킨다. 즉 사람의 영혼은 죄로 인해서 천주의 총애와 도우심, 영혼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잃게 됨을 경계한다. 그리고 세 번째 부분에서는 죽은 다음을 생각하도록 권한다. 즉 영혼이 받게 될 천당복(天堂福)이나 지옥벌(地獄罰)을 묵상하도록 권하고 있다. 네 번째 부분에서는 예수의 수난을 생각하며, 성찰하고 통회할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책의 대체적인 내용은 하느님 중심적 신앙, 엄격주의의 신앙, 영육(靈肉) 이원론적 견해, 내세(來世) 지향적 사고 방식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 가르치고 있는 내용들 가운데 상당 부분이 오늘날 이미 그 시효가 만료된 케케묵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책의 주장들이 당시 사회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는지 거듭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즉 “회죄직지”에서는 인간이 천주의 모상에 따라 창조된 존귀한 존재임을 말한다. 그리고 “천주께서 내 마음에 임하사 성총을 태우시고 벗으로 대접하시고, 자식으로 사랑하시고, 무간(無間)히 절친하심”을 확인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들의 범죄는 “본성(本性)의 생명을 끊는 것이 아니라 초성(超性)의 생명을 끊는 것임”을 밝혀 주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인간 양심의 존재를 일깨우며 “네가 양심을 속이지 못하리니 네가 너를 생각하라.”고 권고한다. 그리고 나서 이 책은 자신의 죄과에 대한 간절한 통회를 유도하고 있다.

 

 

참회의 의미

 

우리는 지난날의 역사나 특정 사상에 관해 가치 판단을 시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때 우리는 우선 그 사건이나 사상이 발생하여 성장했던 당시의 사회적 조건에 따라 그것을 평가해야 한다. 동일한 사건이나 주장이라 하더라도 그것의 의미는 그것이 주장되던 당시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박해 시대의 신학 사상에서 드러나는 엄격주의 신앙, 영육 이원론, 내세 지향성 등에 관해서도 우선 그 당시의 제반 조건들을 감안하여 가치 평가를 시도할 수 있다. 당시의 사회는 인간의 불평등성이 당연한 것으로 인지되던 때였다. 또한 인간의 영혼이나 내세의 존재는 정통 성리학의 입장에서 볼 때 허황된 논의에 지나지 아니했다.

 

그러나 박해 시대의 교회에서는 험난한 탄압 가운데서도 자신의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 신도들에게 평소에도 엄격한 기도 생활과 고신 극기를 강조했다. 신도들은 그 엄격한 기도 생활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기 존재를 그침 없이 확인해 나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엄격주의적 신앙은 박해의 과정에서 자신의 신앙에 대한 외적인 도전을 극복하는 저력을 길러주고 있었다.

 

박해 시대의 영육 이원론이나 내세 지향성에서도 오늘의 우리는 특별한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즉, 모든 인간은 고귀한 영혼을 가진 평등한 존재라는 인식과 관련하여 영육 이원론이 전개되고 있다. 영혼의 존재가 무시되던 당시의 상황에서 제기된 이 이원론은 인간 영혼의 고귀함 즉 인간의 고귀함에 대한 발견 과정에서 거쳐야 했던 한 단계였다.

 

 

맺음말

 

또한 현세를 가볍게 여기고 내세를 강력히 지향하던 당시의 견해는 현세의 모든 가치를 철저히 부정하고 새로운 가르침을 전적으로 수용 · 실천하고자 했던 결의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들의 현세에 대한 부정은 성리학적 지배 질서에 대한 부정이었고 그들의 천국 지향은 새로운 복음의 가치를 무한대로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아 가지고 있던 ‘죄의식’은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양심에 대한 확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양심을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난 자신의 존귀함에 대한 확인이었다. 바로 이러한 데에서 우리는 “회죄직지”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회죄직지”는 참회를 통해 인간 존엄성을 확인시켜 주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다.

 

[경향잡지, 1992년 12월호, 조광 이냐시오(고려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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